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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2 : 사랑 편 -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하지만 늘 외롭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주고 싶은 시 90편 ㅣ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2
신현림 엮음 / 걷는나무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순 세 번째 서평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2. 사랑편
의연함과 유연함을 배우다
오래전 어느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만일 너희가 사랑을 시작했다면, 이번 과제는 하지 않아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 고. 이 무슨 생뚱맞은 말인가.
강의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분필을 잡고 칠판에 글씨를 휘갈겨 쓰는 교수가 지금도 있다면 어쩌면 뉴스에 나올만한 일이지 싶다. 때로는 앞뒤 꽉 막힌 답답한 인상을 주면서도, 글쓰기에 있어 언제나 새로운 발상과 도전을 중요시했던 그는 강의실에서도 남들보다 조금은 더 다른 모습을 자주 보이곤 했었다. 깐깐했던 그가 사랑을 할 때는 과감하게 책임을 묻지 않겠노라고 했던 까닭을 이해하게 된 건 졸업을 하고도 많은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을 법하다.
내게도 사랑이란 감정이 다가왔던가.
사랑처럼 흔한 것이 없으면서, 사랑처럼 고귀하고 간절한 것도 두 번 다시 존재하지 않을 듯하다. 그런 까닭에 사랑이란 참 오묘하면서도 애매모호 한 감정이라는 혼자만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이제 책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지구상에서 그나마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가장 순결한 인간본성의 한가지인 이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조용하게 건네주었다고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이들이 찬미를 보내고 믿음으로 지켜온 사랑의 의미를 다시 수줍게 느껴볼만한 책은, 시인인 동시에 사진작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신현림의 책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이란 제목으로 다가왔다. 책에 대한 의미를 걸고 들어가자면 기존의 익숙했거나, 혹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았던 시들을 ‘사랑’이란 테마로 한데 모아 편집했다고 보면 좋겠다.
다만 이 ‘사랑’이라는 테마의 범주가, 흔히들 염두에 두고 있는 그 한정성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넓은 의미의 사랑으로 뻗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책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확장시킬 필요성을 느낀다. 예를 들면 남녀간의 사랑만을 다루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즉 ‘자기애’를 다룬 점과 가족애 또는 보편적 인간애를 다룬다거나, 더 나아가 인생과 삶의 진정한 가치와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까지 폭 넑게 다루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까닭에 서로 다른 이성이 만들어내는 애정이 담긴 사랑만을 상기했다면 약간의 수정과 더불어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감성의 보따리를 덤으로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한 때 내가 보았고 만났던 시인의 시가 실렸다. 겨울이 시작되는 시간인지라 먼지처럼 싸라기눈이 내리던 날, 눈을 맞는 일이 행복하다며 말문을 열었던 그의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시가 구태의연한 내게 찬물을 끼얹는다.
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많은 작품 중에 왜 하필이면 ‘강’이란 시를 골랐을까. 인생에 있어 사랑이란 푸른빛을 내는 보석처럼 이쁘고 단아하지만, 그 사랑을 지켜내고 간직하고 성숙시켜 가는 시간이란 결코 부드럽지만은 않아 보인다. 어차피 사랑이란 인간이 한 평생 살아가는데 주고받는 감정의 한 골인 것을.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내적인 갈등과 성숙의 길을 미리 견뎌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내가 이 시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로서 타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각설하고 어찌보면 냉혹하게도 들릴 것 같은 황인숙의 시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신현림의 작품 선별에 있어 또 다른 진정성의 한 표를 건네주고 싶어진다.
늘 익숙했으나, 직접 입술을 움직여 내 뱉기에는 어딘지 좀 어색했을 이야기. “내가 당신을 사랑하오!” 그 말 한마디에 참으로 잘 어울릴 듯한 시는 시인 유치환의 찬란하면서도 여유롭고 순박한 시 ‘행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행복.
유치환
(앞문 생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시는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가슴으로 마음으로 읽어내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는데 생각을 이어간다. 버릴 것은 버리고, 한끝으로 밀것은 밀어두고 마음의 준비를 해 둘 것. 그것이 시를 읽는 예의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