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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박수용 지음 / 김영사 / 2011년 9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서적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예순 일곱 번째 서평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박수용
진정한 달인에게, 박수를....
글에 있어 많은 수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치스런 수식어가 꼭 필요로 하는 책도 있는가 보다. 책 뒷 표지에 실린 표현 “놀랍다!, 재미있다!, 압도적이다!”는 정말이지 시각과 촉각을 곤두서게 하는 자극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좋은 수식의 지루한 나열은 어딘지 모르게 가벼움을 가져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을 위한 수식은 한가지만으로도 족하지 않을까. 책을 대변할 수 있는 단 한가지의 수식을 나는 ‘괜찮은 책!’이라고 정하려한다.
괜찮은 책.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은 정말 괜찮은 책이었다. 영상으로 보는 다큐를 직접 활자화된 책으로 접한다는 것 역시 선선한 경험이겠지만, 그 내용에 있어 비단 영상으로 순간 스쳐지나갈 가치 있는 것들이 지면을 빌려오면서 기억의 자리에 오래도록 남을 수 있다는 데 그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책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한 사람 ‘박수용’에 의해 기록된 관찰일지의 모음이다. 그는 분명 진정한 다큐멘터리스트다. 중국과 러시아의 인접지역인 연해주(우수리 지역)에 살고 있는 ‘시베리아 호랑이의 삶을’ 카메라 필름에 담기를 20년. 길고 긴 시간과의 싸움이었고, 보이지 않는 호랑이와의 관계에서 팽팽한 기다림의 싸움이었고, 그 자신과의 치열한 내적 싸움의 기록을 남기며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인간으로서의 지니는 진정성과 깊이감으로 무장해제를 한 듯 보인다.
물론 전체적은 내용은 우수리에 사는 시베리아 호랑이(이하, 우수리 호랑이라고 명함)가족에 대한 이야기의 기록이다. 그러나 책 속에서는 호랑이와 더불어 공존하는 인간의 이야기도 함께 싣고 있음에 주목해야 할 듯하다.
책은 우수리 족과 그 이웃의 원시부족들의 삶과 애환을 현실적으로 드러낸다. 호랑이를 단순한 짐승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연의 정령으로 신격화해 존경하고 보호하며 살아가는 이들 부족의 물들지 않은 청정함. 그러나 그들의 자연친화적인 삶속에서, 러시아의 사회적 개혁개방을 선두로 자연이 파괴되고, 정령이 사람들의 인식에서 사라지는 변화를 거치며 그들이 믿어왔고 신념으로 지켜왔던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현실적 고통을, 저자는 비교적 차분하게 서술한다
또 한가지 책이 지니는 가치는 저자 박수용 자신의 이야기일 것이다. 10월부터 이듬해 4-5월까지 땅을 파고 인의적인 반지하 은신처(비트)에서의 외롭고 지루한 싸움을 견뎌내는 그의 모습이 애잔함을 불러들인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질문 사이에서도 그는 견고하게 자신을 지켜내려 노력한다. 호랑이를 관찰하는 다큐멘터리스트라는 명찰위에, 사색가라는 명찰을 하나 더 얹고, 다시 그 위에 철학자, 라는 명칭을 얹어 수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만큼 그의 상념은 진중하며 심오하다.
[비트 안에서 나를 얼어붙게 만드는 것은 맹수나 절대온도 같은 물리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홀로 있다는 고독감이었다. ....... 이 고독이 누구를 위한 고독이며 무엇을 위한 고독인지, 비트를 뛰쳐나가 세상으로 나가면 그 세상의 고독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나는 생각하고 달래며 나 자신을 추슬렀다] p240-1
[비트는 호랑이를 보기 위한 곳이지만 자신을 보는 곳이기도 하다...]p241
책의 전반부의 주된 내용은 우수리 안에서 여왕처럼 굴림하며 생존해가는 암컷 호랑이 블러디 메리에 대한 관찰일지다. 블러디 메리를 통해 우수리호랑이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습성과 사냥법, 모성애 등 다양한 모습을 전달하며 후반부에는 블러디의 3마리 세끼들의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방식이 보여진다.
블러디의 세끼인 설백, 월백, 천지백이라는 이름 역시 저자가 지어준 이름이다. 각각의 객체마다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생존의 법칙은 냉정하면서도 안타까움의 연속이다. 인간과 결코 다르지 않는 모성애와 측은함을 표현 할 줄 아는 이들 우수리의 정령 시베리아 호랑이들의 이야기는, 유려하기까지 한 저자의 섬세한 문체 안에서 때로는 감성적으로, 때로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살아 꿈틀댄다. 계절의 순환에 따라 이어지는 자연의 섭리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그저 미천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낯설고 서툰 자괴감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이 길고 긴 생존의 기록을 위해 악조건 속에서도 고군분투했던 이도 역시 사람이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겸손함 안에 비루한 나만의 안도감을 갖는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자연(자연이 품고 있는 야생의 모든 환경)의 조화가 아닐까.
누구나 섣불리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한다고 손들었다가도 슬며시 손 내리고 도망가기 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어붙은 손과 발을 녹여가며, 오로지 믿음과 강한 의지로 장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한 사람, 박. 수. 용.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진정한 달인에게 보내는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