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자다 - 왕멍, 장자와 즐기다
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 / 들녘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일흔 일곱 번 째 서평

나는 장자다-왕멍




장자를 사랑한 왕멍




장자를 읽는 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책을 붙들고 있는 까닭은 오기도 아니고 고집도 아닌 다른 감정이 개입한 까닭인데,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순수한 감정이라고 믿고 싶어지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책 “나는 장자다” 번역물이다. 중국의 학자이며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는 ‘왕멍’ 에 의해 저술됐다 한다. 왕멍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듣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인물이다. 그가 중국에서 어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또 그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린다는 이를테면 사회적 지위에 대해 호감이 갔던 것도 아니었다. 책은 오로지 책만으로 마주해야 하지 않은가.

다만 나의 관심사는 장자뿐이었다. 그러나 장자는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은 장자의 이론(제자들과의 대화, 또는 직접 쓴 이야기, 인용 등)들을 일정한 주제에 맞게 선별하고, 왕멍의 해설이 덧붙여지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 책은 장자가 쓴 책이라기 보다는 왕멍이 장자의 것을 가져다 재해석하고 살을 붙여 풀이해놓은 책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장단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장점이라 한다면, 원문을 접할 때 마주하는 이해와 해석의 어려움을 어느정도 해결해준다는 데 있을 법하다. 반면 왕멍이라는 학자 개인의 사유와 역사관에 의해 일정부분 걸러진 까닭에, 장자의 학문과 정신적인 체계가 처음의 순수성을 지닌 날것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약간의 반감이 생기려든다. 욕심이라 해야할지, 아니면 필연적인 수순이라고 해도 상관은 없지만 반드시 장자의 원문이 실린 글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장자를 사랑한 왕멍




그렇다고 왕멍의 장자사랑에 대한 예찬론을 가볍게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고 무시해서도 안 될 노릇이다. 사실 “나는 장자다”를 읽고 기록으로 남기려 할 때, 어디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를 생각했던 것 같다. 장자냐, 아니면 왕멍이냐... 하는 부분에서 말이다.

그만큼 장자를 풀어가는 왕멍의 이야기는 책 한권을 통틀어 시종일관 조용하면서도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의 글은 안정적이고, 생각에 있어 깊이감과 설득력을 지녔다. 또한 정치 경제 문화를 한번에 아우르는 폭넓은 시각의 방향성을 함유한다. 무엇보다도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것인 양 시대의 흐름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말 그대로 좌지우지 하면서, 장자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과거, 현재의 순간순간을 오버랩하는 식의 언변이 가져다주는 재미는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마오쩌둥과, 미국의 부시, 지금의 대통령인 오바마까지 왕멍의 전문적 고견이 묻어나는 이야기는 시대, 역사, 국가를 초월한다. 그리고 냉정한 비교분석이 이어진다. 그것은 어쩌면 책의 주인공인 장자의 이론과 맞물리는 것이 아닐까.

 

-대도

장자라고 하면 호접몽만이 기억에 들어차있다.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학교 때 배웠던 부분에서 유독 기억나는 것이 그 나비인 것을 어쩌랴.

왕멍의 소개로 만난 장자는 감추고 있는 것이 아주 많은 신비주의자라는 생각을 한다. 하나씩 하나씩 그가 감추고 있는(기실은 내가 모르고 있었던)것을 열어보면서 들여다보는 일은 약간의 끈기를 요구하면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이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는 비단 장자의 이야기만 나오지 않는다. 당대의 이름을 알리고 이었던 맹자나 공자, 노자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부분 공유한다.

책의 전반부는 인생으로 치자면 태어나서 유아기를 거치고 청년기에 들어서 스스로의 행실에 대한 어떤 지론의 핵심을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자아를 어떤 방식으로 단련시키며 주변과의 융화를 이뤄나갈지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후반부에 가서는 청년시기를 거쳐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을 한다거나, 어떠한 일을 시작함에 있어 중도를 지켜가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실예를 들어 설명한다. 이를테면 물러날 때와 나아갈 때를 구분하는 일도 이에 속한다.

책속에 들어차 있는 무수히 많은 예시와 상징들 속에서 분명 이것이 옳다, 이것이 진실이다, 라는 작은 선물을 찾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장자의 말을 빌리면, 내가 찾은 선물조차 종단에는 무의미하며 무가치 하다는 말이 된다.

대도와 중용은 함께 간다. 갑자기 선물 이야기를 하다가 대도와 중용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나 또한 장자의 이야기 흐름의 맥을 닮아 가는가 싶다.

4부 인간세에서(人間世-세상에 쓰이는 현묘함과 허물이 없는 신명神明)에서) ‘악화의 법칙’이 등장한다. 인간관계와 인간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많은 일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빠지고 약해진다는 사실이다, 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것을 대도와 중용의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맞게 이해한 것일까. “사실은 처음에 보여주었던 모습이 가장 훌륭한 모습인 것이다” 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저자 ‘왕멍’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기에서 ‘악화의 법칙’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중함을 유지하고 물극필반(物極必反)의 도리를 이해하며 너무 지나치게 추두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급류에 휘말렸을 때 용감하게 물러나고, 관직에 연연하지 않으며, 올라가야 할 때는 올라가고, 내려와야 할 때는 과감하게 내려와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   p286
 

책은 쉽게 접근해서 읽어나갈 수 있는 보편성(일반인을 향한 대중성)보다는 전문성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어 보인다. 그나마 기존에 출간된 책의 성격과는 달리 지식인의 사유가 가미된 차별성을 갖고 있다는 데서 신선함을 갖는다는데 의의를 두고자 한다. 그러나 각설할 일이다. 장자가 그리 쉬운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에 전문성과 보편화된 대중성의 양대 물꼬를 동시에 틀어쥐고 있는 책이 또한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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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이에게 배운다 -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엄마 성장 에세이
김혜형 글 그림 / 걷는나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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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서적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일흔 여섯 번째 서평

엄마는 아이에게 배운다-김혜형




아이는 작은 선생님




 우리 집에는 연년생 남매가 산다. 돌림자로 효(孝)자를 쓰기 때문에 엄마인 나는 효남매라고 부른다. 효남매가 사는 집은 늘 시끄럽다. 하이톤을 자랑하는 딸아이의 비명소리는 짧고 분명하다. 두 녀석이 엉켜 뒹굴고 싸우면서 조용하기만을 바라는 건 터무니없는 엄마 욕심이라는 사실을 올해 들어 절실하게 실감하게 된다. 여기저기서 장난감이 시체처럼 굴러다니고, 가끔은 장난감이 숨긴 날카로운 무기에 발끝이 찔리기도 하는 부상을 입는다.

 쇼파 위나 아래에도 늘 장난감이 펼쳐져 있다. 그때마다 늘 하는 말은 크게 다르지 않고 반복성을 띈다. 딱히 말(언어)과 고성의 중간쯤 위치하는 큰소리 정도쯤이라고 하면 좋을 듯하다.

목소리가 작아서 곁에 앉은 사람 빼고는 늘 이야기 전달이 되지 않아 마이크를 갖고 다니고 싶어했던 내가, 연년생 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만화영화 성우처럼은 아니지만 조금은 과장해서 표현해 일정부분 무시무시한 괴물의 목소리를 자유자제로 표현하게 되는 변화를 가져왔다.

 이것 또한 서글픈 현실이리라.




 양육관련 서적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보편적으로 아는 이야기를 활자화해 눈으로 확인하는 행위에서 늘 안주하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늘 그렇듯 육아의 과정에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갖는 이중적인 요소 때문에 회피하려는 의도가 더 큰 까닭인지도 모른다.

여느 책에서도 보았던 것은 이론보다는 실천의 중요성이었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였지만, 그렇게 실행으로 옮기는 일 자체가 어려웠던 부분이지 않을까.




“엄마는 아이에게 배운다”는 이를테면 내가 아이에게 덜 미안한 감정을 유지한 채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마음의 부담을 갖고 시작부터 부모의 역할과 아이의 심리상태를 논하는 책들을 접했을 때보다 훨씬 마음이 가벼웠던 것을 느낀다.

 책의 주인공은 저자의 아들 ‘지수’다. 지수는 어려서 어린이집에 온종일 반에서 늦게 귀가하는 엄마를 기다려야 했고, 일하는 엄마를 둔 까닭에 이리저리 안정되지 못한 유아기 시절 경험을 갖고 있는 아이다. 엄마 아빠는 출판사에서 일을 한다. 일은 많고 일에 대한 책임감은 늘 가정과 엄마의 자리보다 먼저였다고 고백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지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여전히 일과 가정이라는 두 가지 무거운 고충 사이에서 번민하는 지극히 평범한 엄마, 그녀가 바로 저자 김혜형이다.




 형식적인 면을 보면, 지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아이의 이야기 끝에는 엄마인 김혜형이 가슴에 품고 있었던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여러 가지 일상과 깊이 있는 상념들이 실렸다. 그녀는 직장을 퇴사하면서까지 지난 시절에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한 부분을 위로하고 채워주려 노력한다.

 아이를 위해 대안학교를 선택하고, 시골로 이사를 하며, 시골 정규학교에서 대면하게 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 안에서도 현명하게 잘 대응해 간다. 엄마인 그녀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분명 지수의 몫이 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책을 접하는 독자는 누구나 기저귀를 찬 지수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한 해 두 해 자라나는 지수를 만난다. 어린 아이에서 소년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지수의 입을 통해 세상에 번져드는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명언이요, 시요, 수정처럼 맑은 보석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의 깊이가 깊어져가는 이 아이에게 홀딱, 정말이지 말 그대로 홀딱 반하지 않을 어른이 어디 있을까.

 아이는 본인의 의지로 중학교 입학에 대해 ‘포기가 아닌 선택을’ 결정하고 홈스쿨링을 시작한다. 책은 갓난쟁이 아이가 중학생의 나이가 되고,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말미로 지수의 마지막 소식을 전한다.

 

 엄밀히 따져서 일반적인 양육과 관련된 서적이었다면 큰 공감대 형성은 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번 책의 힘은 독특하면서도 보통의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친밀감 내지는 편안함을 함께 지닌 매력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거인 골리앗도 뒤로 나자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아이의 말이 다 옳아서가 아니다. 다만 가식과 굳어진 사유에서 접하지 못할 순수함과 진실성을 문득문득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져 나오는 아이의 말에서 건져 올릴 수 있다는 사실에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두고 싶어진다.

 

분명 아이는 어른의 참 스승이다. 우리 집에는 두 명의 스승이 함께 동거중인가보다. 효남매가 갑자기 무서워지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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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 그 창조적인 역사
피터 투이 지음, 이은경 옮김 / 미다스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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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일흔 다섯 번째 서평

권태- 피터 투이




권태, 유쾌한 접근




흥미로운 책이다. 제목이 권태인 만큼 책 속에는 수많은 권태 이야기가 등장한다. 권태란 무엇일까. 익히 잘 들어왔음직한 표현이긴 한데, 딱 꼬집어서 말하기는 좀 어려워 보인다. 권태의 양상을 가끔 문학작품에서 엿보기는 하지만, 그것을 주제로 삼아 펴낸 책은 좀 생경스럽다고 해야 할까.

낯선만큼 신선한 의도가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자칫 제목이 가져오는 분위기에 압도당하지 않는다면 끝까지 권태가 풀어내는 어떠한 마력에 의해 잘 끌려가리라 믿는다.




권태는 지루함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늘 비슷한 주제와 소재를 가지고 창작되는 현대소설 내지는 문학작품을 대하면서, 고리타분한 틀에서 벗어나는 획기적인 무언가를 찾고 싶은 감정이 늘어나는 것과 권태를 연결 지을 수 있을까.

책은 권태를 소재로 하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를테면, 다양한 학자와 철학자들의 이론들을 소개하고 또는 예술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권태의 예를 들어 설명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권태의 베일을 한 꺼풀 한 꺼풀 친절하게 벗겨내는 시도를 하는 중이다.




일절하고 이제 책으로 들어가보자. 흔히 따분하고 지루하게만 느꼈을 권태에 대해서 속속들이 밝혀내는 일종의 ‘권태 해부’학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하다. 더더군다나 권태를 구분하여 종류별로 정리하고, 각각의 권태 즉 ‘일반적인 권태’와 ‘실존적 권태’에 따라 각각의 특징들이 인간과 현대사회 및 예술 작품 속에서 어떻게 잔존하고 표출되는가를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감정 따위를 논함에 있어 그것이 심리학 관련 서적이 아닌 이상,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책은 많이 접하지 못한 듯하다. 이 책이 주는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접근 말이다. 기실 어쩌면 우리는 권태에 의해 수동적으로 따라오는 부수적 감정에 더 많은 가치를 두었는지도 모른다. 혐오감이나, 불만, 분노, 내지는 졸음과 지루함 따위의 부정적 요소에 대해서 조금은 더 수다스러웠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러나 각설하고 책은 권태가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권태는 특정 상황이 우리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조기 신호를 보낸다. 혐오감처럼, 권태도 적응적 정서로서 건강한 삶을 사는데 도움을 준다”    p237




권태에 빠진다는 표현을 한다. 저자 피터투이의 이야기를 들으면 권태에 빠지는 일은 어쩐지 꼭 필요한 일상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앞으로 벌어질 알 수 없는 일상에 대한 일종의 경고 내지는 의식이 담긴 중요한 메시지라고 한다면 오히려 가까이 할수록 좋은 것이 바로 권태가 아닌가.

물론 저자 역시 지나친 권태에 몰입하는 것을 염려하기도 한다. 또한 만약 우리 중 어느 한 사람이 지나친 권태의 늪에 빠져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치료제는 분명 존재한다는 말로 분위기를 유하게 바꿔나간다. 그렇다면 그 치료제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개인의 또는 자기 자신의 감정의 흐름을 잘 파악하는 데서부터 플라시보 효과를 떠나 분명한 치료제로 확인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쉽게 말하면 감정을 바꾸면 지독한 권태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현대 의학에서 보는 권태란 정신질환에 지나지 않는다는 편파적인 속설 앞에서, 권태란 아예 그 존재감을 무시하기 보다는 어느정도 즐기면서 각자가 이롭게 수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번 책 “권태”를 대하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총체적으로 볼 때 그 내용에 있어서 인간의 감정인 ‘권태’에 관해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저술된 신선미가 돋보였다는 점과 반면에 어휘 자체가 주는 위압감으로 인해 책을 읽는 일 자체가 권태로워질 수도 있겠는 생각을 불러들이는 책이기도 하다.

제목이 너무 무거워 보인다. 제목에 날개를 좀 바꿔주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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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 상처투성이 부부 관계를 되돌리는 감정테라피
박성덕 지음 / 지식채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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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일흔 네 번째 서평

우리,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박성덕지음




세상의 모든 남편과 아내를 위한 책.




책이 주는 긍정적 효과는 배구에서의 시간차 공격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읽는 순간 아, 그렇구나! 정말이지 전혀 새로운 그 어떤 것이든, 익숙했으나 아련하게 멀어졌던 무엇이든 간에 현재 내 곁에 없는 것을 알아 가는 과정만큼은 무엇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감사와 행복감을 주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위험요소는 늘 잔존하는가보다. 이를테면 지속성에서의 문제가 그렇지 않을까. 물론 불행하게도 이런 이야기는 단순한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대중의 그것으로 옮겨가려드는, 이기적 욕심에서 발한 어설픈 오류 말이다.




책 “우리,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를 읽는 동안 나 역시 달라지는 것들을 느꼈던 것 같다. 무덤덤하고 애교 없는 곰 같은 마누라에서 딴은 애교도 부리며, 없던 눈웃음도 만들어가면서 어설픈 그러나 사실은 노력하는 여우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전화를 받는 목소리도 달라져간다. 

그가 알아주기를 바랐던가. 아니다. 그저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변화였고, 이 변화의 결과에서 어떤 반응을 바랐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평온했던 감정을 스스로 즐겼던 것 같다.




부부 또는 가족의 갈등과 심리에 관한 책은 수없이 많다. 올해 들어 이런 내용의 책만 한달에 한번 꼴씩 접했던 것 같다. 부부싸움을 하고 난후에 밀려오는 낭패감과 회의감에서 어떻게 벌떡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칼로 물 베기라고 했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 앙앙 거렸는가 하면서 좋아 죽을 지경인 남편과 내게 있어서도 외부의 자극과 도움은 필요했던 요소였는지 모른다.

책상 위에 올려진 책을 보고 남편은 말이 없다. 일부러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아니다. 늘 책상 위에 책이 올려져 있으니까. 하지만 문득 나는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 같이 읽어보지 않겠어요?’




정신과 전문의 박성덕의 책 “우리,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가 지니는 가치는 자못 크다는 생각을 한다. 기존에 나왔던 비슷한 책과의 차별성을 찾아볼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은 기우가 되면서 슬쩍 뒤로 밀려난다. 물론 읽는 이가 어떤 마음자세로 읽고 있는가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문제임에는 분명하다.

구태의연하게 저명한 학자와 이론들을 소개하면서 부부간의 실질적인 예를 들면서도 기실 자신이 주장하는 이론의 논리와 명확성을 증명하기 위해 틀에 맞게 짜 맞추는 듯한, 부부 혹은 가족의 심리를 다룬 책이 주변에 넘쳐나는 현실이 문제라면 문제이다. 무엇인가 얻고 싶은 것이 있어 책을 들었다가도, 겉과는 달리 속이 알치지 못한 뒷맛에 허탈해하던 적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반면 박성덕의 책은 거리감을 좁혀가면서 조금은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체적인 구성과 큰 틀에서 보는 내용은 기타 앞서 나온 심리관련 책과 비슷한 양태를 갖고 출발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획일적이며 이론만으로 모든 개개의 사연과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얕은 위로로 채워진 것과는 다르다.

어느 부부에게나 일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데 친근함이 묻어난다. 우리 집에서만 곪아 터져 냄새나는 줄 알았던 문제들이 이웃집에서도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모르긴 몰라도 묘한 안도감 내지는 연대감을 느끼지 않을까. 그것이 사람의 복잡한 심리인가보다.




어딜 가든지 사람 사는 모습은 다 같다, 는 말이 생각난다. 부부가 티격태격하는 원인도 집집마다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저자 박성덕은 겸손한 의사다. 그는 직업적으로 의사이기 이전에 스스로가 한 가정의 가장인동시에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임을 이야기하며 우리 곁에 다가온다.

책 속에서 그가 풀어가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어느새 노여움이 풀려간다. 상처로 인해 이기적 발상에서 시작된 ‘내만 바라보기’가 아닌, 부부가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감정의 흐름에 의한 ‘배우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꼼꼼하게 다시 배워가는 과정을 접하게 된다.

저자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한다.




무엇보다 그의 이야기 중에서 결혼의 시작과 동시에 부부는 불행(투쟁)을 짊어지고 간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결혼과 동시에 불행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신혼의 단꿈에 빠져있는 이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말이지만 저자 박성덕은 부부가 처음 맞닥뜨리는 현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부부간의 갈등은 일반적인 일이며, 두 사람이 함께 풀어나갈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런 문제라고 보는 인식이다. 때문에 불행하다고 슬퍼할 일도, 우울해할 일도 아니라는 박성덕의 위로는 나름 따뜻하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서 소리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침묵하는 것이 병이라고 했던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서로에게 상처받아 등을 돌려버린 부부에게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라 말한다. 서로의 마음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귀를 기울이라 한다. 그리고 주저하지 말고 무엇이든 표현할 것을 부탁한다.




살아가는 동안 언제고 그와 나는 다시 앙앙거릴 꺼리를 찾을게 분명하다. 주변에 작은 꺼리조차 없다면 어쩌면 없는 것을 만들어서 ‘땡’ 소리와 함께 권투 글러브라도 끼고 달려들어 보이지 않는 링에서 서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부부가 큰 소리를 내고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면서 공격을 하는 것의 이면에는 자신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는 인간 심리의 반응이 담겨져 있다는 저자의 말을 기억한다면, 그다지 링 위에서의 살벌한 시간을 오래 끌지는 않을 듯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이들에게, 특히 사랑으로 하나가 된 수많은 부부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회가 되면 남편에게도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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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하는 데 남은 시간 - 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엄마가 딸에게 전하는 편지
테레닌 아키코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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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일흔 세 번째 서평

너를 사랑하는 데-테레닌 아키코 지음




신의 약속 엄마 그리고 사랑.




“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엄마가 딸에게 전하는 편지”




인용구는 책 띠지에 실린 글이다. 여기 멀고도 긴 이별을 준비하는 엄마와 그녀의 딸이 있다. 엄마가 떠난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했었고, 사랑하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사랑할 것이라 속삭이며 약속해주는 강건한 의지의 엄마가 남겨준 편지다.

저자 테레닌 아키코는 임신기간 중에 척수암이 발병하여 딸 유리치카를 출산한 후 암과 치열하게 싸우는 혹독한 전쟁의 시간을 버텨냈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처럼, 모든 엄마들처럼 아이를 낳아 기르며 함께 하고 싶었던 소박한 의지는 결국 병마에 무릎을 꿇었지만, 사진으로 그리고 그녀가 남긴 순간순간의 간절한 메시지로 오래도록 회자되는가보다.




책은 참 소박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열정적이다. 가냘픈 외모와는 달리 똑소리가 들릴 듯한 야무진 이미지에서 여느 어머니의 보편적 모성애를 뛰어넘는 강한 자의식이 보이는 듯하다.

임신 기간 동안 계속되는 수술과 출산 후 이어지는 방사선 치료, 단계적으로 마비되는 신체적 악조건 속에서도 테레닌 아키코는 늘 자신의 분신 딸 유리치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책의 출간 의도 역시 자신이 떠난 공백을 대신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선물로 주고 싶어하는 엄마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됐다. 첫 파트 “사랑하는 유리치카에게”에서는 직접 곁에서 대화하듯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서술한다. 이를테면 친구, 어린시절, 여자아이, 사랑 이야기처럼 엄마와 딸이라는 끈끈한 관계에서 오고가는 평범하지만 애정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병원에서 투병 중에 원고를 준비했기에 사실 아키코가 딸 유리치카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그 분량이 많지 않다. 책은 엄마가 딸에게 하는 이야기, 투병일기 그리고 이번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하는 부분으로 크게 나뉜다.

이 책의 출간을 맡은 ‘타지마 야스에’의 기록을 통해 독자는 조금 더 친밀하게 테레닌 아키코와 그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




책을 쓴 아키코와 편집과 출간을 진행했던 타지마 야스에가 생각했듯이, 이번 책이 죽음을 앞둔 한 어머니의 애달픈 사연으로만 치우쳐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지만, 초반에 실린 아키고가 딸에게 전하는 메시지에서 풍겨지는 분위기에서 그 우려감을 깨끗하게 지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는 아팠지만, 아프다고 그저 슬퍼하지 않았다. 자신의 딸이 항상 밝고 건강한 엄마의 모습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씩씩한 그녀였다. 객관적이면서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분별력으로 자신의 빈자리를 허전해 할 아이에게 부드럽게 그러나 이지적으로 말을 이어간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므로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보거나 사고방식을 바꾸기가 어려워. 그러니 그렇게 되기 전에 가끔씩 기분 전환을 해서 세상을 넓게 보는 태도를 가지렴]      p34




[실수하는 것을 겁낼지도 몰라. 하지만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어린이인데 그까짓 실수 좀 하면 어때?’라고 말이다. 그냥 친구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고 달리 생각하면 금방 두려움이 사라질 거야]   p35




세상이 넓어서 천사를 곳곳마다 내려 보내기 어려워 엄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생각한다. 신은 무슨 까닭에 그 고귀한 존재인 엄마라는 존재를 다시 하늘로 부르셨을까.

몇해전 모 지상파 방송에서 보았던 ‘안소봉’씨의 사연이 오버랩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딸아이의 이름을 부르다가 먼 길을 떠난 그녀 역시 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지상의 천사였으며, 신의 부름을 받아 우리 곁을 너무 일찍 떠난 평범한 여자인동시에 한 아이의 엄마였다.




엄마라는 자리는 분명 신이 허락하신 큰 자리다. 쉽지 않은 일이며 하루하루 시험에 드는 일이다. 매순간 내가 과연 올곧은 엄마의 자리에 설수 있는가, 회의와 자책에 빠지면서도 감사하는 까닭은 생명의 존엄성과 인연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순간....문득 나는 괜찮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욕심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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