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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하는 데 남은 시간 - 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엄마가 딸에게 전하는 편지
테레닌 아키코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일흔 세 번째 서평
너를 사랑하는 데-테레닌 아키코 지음
신의 약속 엄마 그리고 사랑.
“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엄마가 딸에게 전하는 편지”
인용구는 책 띠지에 실린 글이다. 여기 멀고도 긴 이별을 준비하는 엄마와 그녀의 딸이 있다. 엄마가 떠난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했었고, 사랑하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사랑할 것이라 속삭이며 약속해주는 강건한 의지의 엄마가 남겨준 편지다.
저자 테레닌 아키코는 임신기간 중에 척수암이 발병하여 딸 유리치카를 출산한 후 암과 치열하게 싸우는 혹독한 전쟁의 시간을 버텨냈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처럼, 모든 엄마들처럼 아이를 낳아 기르며 함께 하고 싶었던 소박한 의지는 결국 병마에 무릎을 꿇었지만, 사진으로 그리고 그녀가 남긴 순간순간의 간절한 메시지로 오래도록 회자되는가보다.
책은 참 소박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열정적이다. 가냘픈 외모와는 달리 똑소리가 들릴 듯한 야무진 이미지에서 여느 어머니의 보편적 모성애를 뛰어넘는 강한 자의식이 보이는 듯하다.
임신 기간 동안 계속되는 수술과 출산 후 이어지는 방사선 치료, 단계적으로 마비되는 신체적 악조건 속에서도 테레닌 아키코는 늘 자신의 분신 딸 유리치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책의 출간 의도 역시 자신이 떠난 공백을 대신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선물로 주고 싶어하는 엄마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됐다. 첫 파트 “사랑하는 유리치카에게”에서는 직접 곁에서 대화하듯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서술한다. 이를테면 친구, 어린시절, 여자아이, 사랑 이야기처럼 엄마와 딸이라는 끈끈한 관계에서 오고가는 평범하지만 애정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병원에서 투병 중에 원고를 준비했기에 사실 아키코가 딸 유리치카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그 분량이 많지 않다. 책은 엄마가 딸에게 하는 이야기, 투병일기 그리고 이번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하는 부분으로 크게 나뉜다.
이 책의 출간을 맡은 ‘타지마 야스에’의 기록을 통해 독자는 조금 더 친밀하게 테레닌 아키코와 그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
책을 쓴 아키코와 편집과 출간을 진행했던 타지마 야스에가 생각했듯이, 이번 책이 죽음을 앞둔 한 어머니의 애달픈 사연으로만 치우쳐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지만, 초반에 실린 아키고가 딸에게 전하는 메시지에서 풍겨지는 분위기에서 그 우려감을 깨끗하게 지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는 아팠지만, 아프다고 그저 슬퍼하지 않았다. 자신의 딸이 항상 밝고 건강한 엄마의 모습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씩씩한 그녀였다. 객관적이면서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분별력으로 자신의 빈자리를 허전해 할 아이에게 부드럽게 그러나 이지적으로 말을 이어간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므로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보거나 사고방식을 바꾸기가 어려워. 그러니 그렇게 되기 전에 가끔씩 기분 전환을 해서 세상을 넓게 보는 태도를 가지렴] p34
[실수하는 것을 겁낼지도 몰라. 하지만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어린이인데 그까짓 실수 좀 하면 어때?’라고 말이다. 그냥 친구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고 달리 생각하면 금방 두려움이 사라질 거야] p35
세상이 넓어서 천사를 곳곳마다 내려 보내기 어려워 엄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생각한다. 신은 무슨 까닭에 그 고귀한 존재인 엄마라는 존재를 다시 하늘로 부르셨을까.
몇해전 모 지상파 방송에서 보았던 ‘안소봉’씨의 사연이 오버랩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딸아이의 이름을 부르다가 먼 길을 떠난 그녀 역시 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지상의 천사였으며, 신의 부름을 받아 우리 곁을 너무 일찍 떠난 평범한 여자인동시에 한 아이의 엄마였다.
엄마라는 자리는 분명 신이 허락하신 큰 자리다. 쉽지 않은 일이며 하루하루 시험에 드는 일이다. 매순간 내가 과연 올곧은 엄마의 자리에 설수 있는가, 회의와 자책에 빠지면서도 감사하는 까닭은 생명의 존엄성과 인연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순간....문득 나는 괜찮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욕심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