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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이에게 배운다 -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엄마 성장 에세이
김혜형 글 그림 / 걷는나무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서적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일흔 여섯 번째 서평
엄마는 아이에게 배운다-김혜형
아이는 작은 선생님
우리 집에는 연년생 남매가 산다. 돌림자로 효(孝)자를 쓰기 때문에 엄마인 나는 효남매라고 부른다. 효남매가 사는 집은 늘 시끄럽다. 하이톤을 자랑하는 딸아이의 비명소리는 짧고 분명하다. 두 녀석이 엉켜 뒹굴고 싸우면서 조용하기만을 바라는 건 터무니없는 엄마 욕심이라는 사실을 올해 들어 절실하게 실감하게 된다. 여기저기서 장난감이 시체처럼 굴러다니고, 가끔은 장난감이 숨긴 날카로운 무기에 발끝이 찔리기도 하는 부상을 입는다.
쇼파 위나 아래에도 늘 장난감이 펼쳐져 있다. 그때마다 늘 하는 말은 크게 다르지 않고 반복성을 띈다. 딱히 말(언어)과 고성의 중간쯤 위치하는 큰소리 정도쯤이라고 하면 좋을 듯하다.
목소리가 작아서 곁에 앉은 사람 빼고는 늘 이야기 전달이 되지 않아 마이크를 갖고 다니고 싶어했던 내가, 연년생 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만화영화 성우처럼은 아니지만 조금은 과장해서 표현해 일정부분 무시무시한 괴물의 목소리를 자유자제로 표현하게 되는 변화를 가져왔다.
이것 또한 서글픈 현실이리라.
양육관련 서적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보편적으로 아는 이야기를 활자화해 눈으로 확인하는 행위에서 늘 안주하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늘 그렇듯 육아의 과정에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갖는 이중적인 요소 때문에 회피하려는 의도가 더 큰 까닭인지도 모른다.
여느 책에서도 보았던 것은 이론보다는 실천의 중요성이었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였지만, 그렇게 실행으로 옮기는 일 자체가 어려웠던 부분이지 않을까.
“엄마는 아이에게 배운다”는 이를테면 내가 아이에게 덜 미안한 감정을 유지한 채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마음의 부담을 갖고 시작부터 부모의 역할과 아이의 심리상태를 논하는 책들을 접했을 때보다 훨씬 마음이 가벼웠던 것을 느낀다.
책의 주인공은 저자의 아들 ‘지수’다. 지수는 어려서 어린이집에 온종일 반에서 늦게 귀가하는 엄마를 기다려야 했고, 일하는 엄마를 둔 까닭에 이리저리 안정되지 못한 유아기 시절 경험을 갖고 있는 아이다. 엄마 아빠는 출판사에서 일을 한다. 일은 많고 일에 대한 책임감은 늘 가정과 엄마의 자리보다 먼저였다고 고백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지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여전히 일과 가정이라는 두 가지 무거운 고충 사이에서 번민하는 지극히 평범한 엄마, 그녀가 바로 저자 김혜형이다.
형식적인 면을 보면, 지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아이의 이야기 끝에는 엄마인 김혜형이 가슴에 품고 있었던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여러 가지 일상과 깊이 있는 상념들이 실렸다. 그녀는 직장을 퇴사하면서까지 지난 시절에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한 부분을 위로하고 채워주려 노력한다.
아이를 위해 대안학교를 선택하고, 시골로 이사를 하며, 시골 정규학교에서 대면하게 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 안에서도 현명하게 잘 대응해 간다. 엄마인 그녀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분명 지수의 몫이 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책을 접하는 독자는 누구나 기저귀를 찬 지수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한 해 두 해 자라나는 지수를 만난다. 어린 아이에서 소년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지수의 입을 통해 세상에 번져드는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명언이요, 시요, 수정처럼 맑은 보석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의 깊이가 깊어져가는 이 아이에게 홀딱, 정말이지 말 그대로 홀딱 반하지 않을 어른이 어디 있을까.
아이는 본인의 의지로 중학교 입학에 대해 ‘포기가 아닌 선택을’ 결정하고 홈스쿨링을 시작한다. 책은 갓난쟁이 아이가 중학생의 나이가 되고,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말미로 지수의 마지막 소식을 전한다.
엄밀히 따져서 일반적인 양육과 관련된 서적이었다면 큰 공감대 형성은 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번 책의 힘은 독특하면서도 보통의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친밀감 내지는 편안함을 함께 지닌 매력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거인 골리앗도 뒤로 나자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아이의 말이 다 옳아서가 아니다. 다만 가식과 굳어진 사유에서 접하지 못할 순수함과 진실성을 문득문득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져 나오는 아이의 말에서 건져 올릴 수 있다는 사실에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두고 싶어진다.
분명 아이는 어른의 참 스승이다. 우리 집에는 두 명의 스승이 함께 동거중인가보다. 효남매가 갑자기 무서워지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