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신 - 죽음도 불사했던 강직한 선비들
고제건 지음 / 리드잇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아흔 일곱 번째 서평

직신-고제건 지음

 

직신(直臣)이란

 

 번데기 앞에서야 주름잡기는 뭐한 일이다. 역사를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야 할 말이 없어지겠지만 개인적으로 역사물을 좋아하기는 하나보다. 역사를 다루는 책을 보고 있으면 일정부분 복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역사가 주는 이미지가 어느정도 고정되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며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흐르든 간에 현대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고제건이 쓴 직신은 역사물이다. 강직하게도 곧은 말을 하는 신하라는 뜻이라고 해설할 수 있을까. 저자에 대한 이력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다. 그가 역사를 전공했는가의 여부를 따져서 가치를 결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책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들여다볼 일이다.

 

 역사가 현대사회에서의 크고 작은 쟁점을 교류한다는 차원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말을 가져온다고 한다면, 고제건의 직신은 현 정치적인 시류와 분위기가 잘 맞아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보는 관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존재하기 마련이 아닐까.

 

직신을 읽는 동안 나는 몇 권의 책을 더 가져다 놓았다. 김태완의 ‘책문’, 신봉승의 ‘문묘 18현’과 신동준의 ‘臣의 한수’ 그리고 안대회의 ‘고전산문산책’등과 퇴계 관련 책들이 책상 한 쪽에 쌓여갔다. 더 많은 조선의 역사물을 읽었다면 아마도 그 책들을 전부 꺼내놓고 들여다보고 비교하면서 책을 읽어내지 않았을까 싶다. 직신은 역대 조선의 왕조시대를 통해 불의에 대응하면서 그들만의 뜻을 굽히지 않고 신하로서, 유학을 신봉하는 선비로서의 절의를 지켜냈던 이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책은 비교적 간단명료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간단명료하다는 표현이 이 책의 상반된 느낌을 극명하게 대변하게 해주는 듯하다.

 

 직신의 기획 의도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책과 일정부분 닮아있다. 내용면에서 중복되는 내용은 한 두 건이긴 했지만, 비슷한 주제로 출간되는 책의 중복된 내용에 비하면 그나마 양호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각설하고, ‘1장, 직언(直言), 선비 목숨을 걸다. 2장, 직신(直臣), 강직하고 올곧은 신하, 3장, 직설(直說), 조선을 조롱하다’.의 세부분으로 나눠 이야기를 끌어가는 책에서는 각각의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정치적 행보와 전반적인 개인사적 이야기로 내용을 끌어가고 있었다.

 보다 직설적이면서 정치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러나는 글을 만나고 싶었다고 한다면, 이번 책은 다소 미지근한 감각으로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다만 책은 일종의 조선의 역사라는 시대적 배경 중심에서, 다방면의 정보제공을 통한 역사와 충신의 이해도라는 측면에서는 다양한 연령층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게 비교적 핵심을 요약해 저술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세세하게는 고제건이 소개하는 허균의 이야기에서 약간의 생경스러움을 접했던 것 같다. 이것을 역사를 보는 관점의 차이이고, 무엇에 중심을 잡고 썼는가 하는 문제 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세도를 만회하는 일은 나의 책임이다. 이제 죽을 자리에 왔다’(사암 박순/직신)의 이야기라든지, ‘도끼를 들고 상소문을 읽는다’ (문열공 조헌/문묘 18현)과 같은 표현들과 내용들이 더 설득력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까닭은, 고제건이 선정한 인물 중에 특히 김시습과 혀균이 갖는 이미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미비한 차이로 직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것을 직접적인 행동과 간적접인 행동방식의 차이일 뿐이라고 한다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겠지만, 직신이라는 어휘가 품어내는 강직한 분위기에서 그 어떤 변명도 도끼를 들고 목숨을 내놓으면서 상소를 올리는 이미지와 대견할 수는 없어보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고제건의 문체는 어렵지 않아 좋았다. 겉멋을 생각하지 않고 비교적 냉정함을 유지한 채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으면서 써내려간 그의 글 자체는 좋았던 것 같다. 다만 역사를 다루는 책에서 접하게 되는 문제점을 생각할 때, 최근에 일정부분 회의감을 받아 스스로 걸러내야 했던 것들을 감안하다면 고제건의 역사물 또한 그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껴안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사견이다. 분명한 사견이다. 그런데 왜 내가 책의 객관적 시선을 유보한 채 사견을 운운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괜찮은, 정말이지 정말 괜찮은 책들을 더 많이 봐야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라는 혼자만의 치료책을 간구하고 있는 모습이 어딘지 어설프게 보이기까지 하다. 역사는 매료될수록, 치명적인 무언가와 대면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역사를 해석하는 시각의 다양성이 가져오는 위험성(위험성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다)과 이도저도 편중되지 않기 위해 딴은 너무 가볍게 역사를 끄집어내는 시류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구절 하나 기록한다.

 

“번거로움을 바로잡는 데에는 고요만한 것이 없고, 졸렬한 것을 바로잡는 데에는

부지런만한 것이 없다.”

(p92 직신-고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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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오경아 지음 / 샘터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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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아흔 여섯번째 서평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오경아

 

변함없이 든든한 것과의 만남

 

 표지가 이쁘다. 여인의 치마자락을 연상케 하는 그림은 온통 그린의 향기로 가득하다. A라인으로 펼쳐져 내리는 주름진 치맛단처럼 푸르름의 정원은 잔디의 골마다 생기가 느껴진다. 고흐의 그림처럼 색체에서 강렬하지는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멀리 보이는 바다위에 둥실 떠있는 돛단배의 모습은 한가로이 여유마저 느껴진다.
 처음 책의 느낌은 표지에서부터 이국적이다, 는 표현이 떠올랐을 정도로 표지그림을 보고 많은 것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 아기자기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어쩐지 끌림이 있는 책 표지가 마음에 든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펼쳐진 그린의 향연이 천천히 물꼬를 새롭게 정비해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만 같은 그림이다.

 정원이다. 책 표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정원의 향취일까. '정원'이라는 한국어식 표현이 왜그런지 익숙하지가 않은 듯하다. 아주 어려서 살던 옛집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지었다는 오래된 집이었다. 대문을 겅중 뛰어 넘어 들어가면 한쪽으로 일자형의 작은 꽃밭이 있었다. 꽃밭과 정원의 차이는 무엇일까. 대략적으로 규모의 차이일까. 아니면 그것들을 수용하고 걸러내는 이의 인식의 차이일까.

 저자 오경아가 소개하는 책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는 소소하게 몇가지 생각들을 불러들인다. 그 중 하나는 추억과의 대면이다. 지나간 과거로부터 소급하게 되는 그 어떤 것들. 한때 내가 속했던 시간과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사건들과 현재의 내가 조우하는 순간이다.

 

 책 속에는 참 이쁘고 포근하며 순박한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숨을 고른다. 오경아 그녀의 글이 풍기는 분위기 역시 책이 전달해주는 느낌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솔직하고 담백하다고 할까. 방송작가의 분주한 일상을 버리고 돌연 영국으로 떠났던 오경아의 이야기는 비단 그녀가 왜 그래야했는지 그녀만의 이유있는 항변 내지는 변명으로 시종일관 늘어지지 않는다.

  그녀 오경아는 문득 반복되는 일상에서 혹 잊고 있었던 것에 대한 의구심 같은 것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틀에 박힌 일상에서 놓치고 있었던 것에 대한 의문들과 잊고 살아야 했던 것들에 대한 씁쓸한 애착이 그녀를 현재의 것들에서부터 훌쩍 떠날수 있게 해준 원동력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꼭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잊고 살았던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한 여정이 그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세간의 만류를 뒤로하고 멀리 영국으로 떠났던 오경아의 기록은 작가의 사색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이번 책의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시간이 멈추어버린 세계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보낸 휴가기간동안  오경아는 내면에 내재하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고, 자연이 선사하는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에 긍정적 에너지를, 삶에 거친 숨결위로 옮겨와 가득 채워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었다.

 

 사유의 흐름은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호흡에 맞춰 흘러간다.
이른 새벽 정원에 날아든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길가에 무심하게 피어난 수선화의 향취와 그 정서. 길고 긴 세월의 장막을 기꺼이 이고 버텨온 이 작은 소도시가 던져주는 평온과 충만함. 그 모두가 천천히 품어내는 애틋한 그리움이라는 정서는 읽는 이에게 묘한 행복감을 선사하고 있다. 그렇긴 한데 직접 가보지 못한 이에게 간접적으로 그곳의 정서를 만끽해주는 점에서 그 몫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미묘한 감정(나는 이 감정을 약간의 유치함이 작용하는 부러움이라 생각한다)이 끊임없이 내 모든 감각을 자극했던 것도 사실이다.

 

긴말이 필요한 문제일까. 저자 오경아의 책은 에세이에서 그 성격을 구분하고 있지만 분명 잔잔한 파장은 넓게 퍼저나갈 것을 생각한다. 문득 용기있고 패기넘치는 누.군.가는 그녀 오경아의 책 한권 옆구리에 끼고 비행기에 몸을 실을지도 모르겠다.
 책은 에세이인 동시에 현명한 지도가 되어주지 않을까. 사유와 느낌이 살아있는 똑똑한 네비게이션의 몫을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제목이 주는 상징성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기록한다. 저자는 왜 정원에서 엄마를 만난다고 했을까? 에필로그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인간에게 자연은 부모님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고 그 자리에 있을, 아무리 떼를 쓰고 말썽을 부리다 돌아와도 받아줄 것 같은 부모님의 맘, 그게 자연 안에 있는 듯하다."

                                                                                                           P 289-290

 

 저자는 자연에서... 자연이 품어주는 정원에서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아낌없이 격려해주는 대자연과 함께 가족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문득 개인적인 해석으로 토를 달아보는 것이다.

각설하고, 부담없이 마음 내려놓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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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계승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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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서적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아흔 다섯 번째 서평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계승범


선비의 부끄러움을 엿보다.


참 오래 가지고 다녔던 책인가 보다. 명절에도 가지고 갔지만 그다지 많이 보지는 못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다녔지만 대부분 생각할 것들이 많아 책이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짧은 찰나의 시간 집중하기 좋은 책이었음에는 분명하다.

계승범의 선비 이야기는 두 가지 상반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나는 늘 좋아하는 역사물이기에 역사 이야기를 다시 만난다는 긍정적 설레임이 작용한다는 점이겠지. 그러나 다른 하나는 조금은 부정적이다. 여기서 부정이라 명명함은 단순하게 긍정의 반대의 의미일 뿐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어쩐지 개인적으로 살짝 뒤로 한걸음 물러나는 듯한 분위기가 짙다.


각설하고 책의 총체적인 느낌은 비틀어보기, 또는 거꾸로 세워 털어보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도 아니면 하나씩 껍질을 벗겨 본연의 것을 여실하게 그것도 알토랑 같은 알맹이만 속속 골라서 살펴보는 식의 방법이라고 말해야 할 듯하다. 지은이 계승범 그 스스로가 이야기했듯이 책은 기존의 인식이 가져다 준 질서에 안주하지 않는, 반항적인 내용의 전개로 이어지고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선비의 이미지를 모조리 그보다 더 격하게 표현하자면 깡그리 깔아뭉개는데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저자 계승범의 비판이 단순히 감정에 의해서 또는 개인적인 역사적 사관에 의한 것이 아닌 논리적 근거에 의한 비판과 지적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이다.


책은 비단 선비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당대 조선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정치,경제, 사회 그리고 인권과 주변 환경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로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의 흐름이 이어진다. 개인적으로는 2장 ‘선비의 덕목과 조선 선비의 실상’과 3장 ‘검증된 바 없는 유고 이론’, 그리고 4장 ‘선비가 꿈꾼 나라, 그들이 만든 나라’를 쉽게 집중해서 읽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보면 위에 언급한 내용이 이 책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갖는 다양한 패러독스의 매력은, 짐짓 일절부분 과장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과히 인식의 쓰나미처럼 다가왔었는지도 모른다.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참 선비들의 모습은 오간데 없고, 학문의 진정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정치와 사람과의 타협에 사활을 거는 다소 비천하기까지 한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말뿐인 선비들의 냉혹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저자는 계승범은 왜 이다지도 솔직한가. 아니다. 그는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선비님들의 용안에 찬물을 끼얹는단 말인가. 물론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책은 옳지 않은 잘못된 인식의 모든 것들에 대해 이를테면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자, 일종의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 위한 통합된 목적을 갖는다. 때문에 책을 읽는 이는 항상 저자의 말에 귀를 열어두어야 할 것이며 가장 중요한 조건을 충당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그동안 알고 왔던 진실을 뒤집어 바라볼 수 있는 시선과 그렇게 할 수 있는 나름의 용기를 품어내야 한다는 점이지 않을까. 


비장하게도 또는 조금은 서글프게도 계승범의 책은 올곧고, 점잖고, 기품 있는 선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러니하면서도 씁쓰름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가 이 책의 큰 메리트가 아닌가 싶다. 평소 좋아하는 퇴계에 관한 계승범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나는 생각이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원인이 간사해서일지, 아니면 영악해서일지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한 쯕으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습성을 갖는 듯하다. 아니 습성의 차원이 아니라 본능일지도 모른다. 계승범이 침을 튀기며 풀어놓은 글을 접하면서도 나는 어딘지 모르게 그래도.. 퇴계인데..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듯하다.


책은 다양한 설득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관계를 동시에 짊어져야하는 약간의 위험성도 동시에 지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는 이의 관점마저 저자 것으로 바꿔 흡수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어쨌거나 관점은 다양  할수록 좋은 것일 테니까. 계승범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얼치기 독자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냐고 짐짓 너스레를 떠는 모양새가 좋아보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책은 겉과 안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생각하자면 저자 계승범의 의도는 그만의 독특한 온고지신인 셈이다. 원뜻에서 살짝 의미를 비틀어 새롭게 만든 계승범식의 온고지신은 옛것이 지닌 모순과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부조리를 정확하게 알고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 단계는 저자의 이야기를 떠나서 일정부분 독자가 판단할 몫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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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콩 밥상
여익현 지음 / 미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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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아흔 네번째 서평

두부콩 밥상-여익현 지음


두부의 변신은 무죄


두부 값도 많이 올랐다. 국산 콩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모 회사의 두부 값은 그중 제일 비싼듯 하다. 그러면 다른 두부는 국산 콩이 아니란 말인가. 집 앞에 있는 소규모 마트를 이용하면서 갖게 되는 불만사항은 아마도 가격표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제일 비싼 두부라고 해놓고서 어째서 일일이 가격표시를 해놓지 않은 건지.

어쨌든 이번 주제는 두부. 그것도 명실상부 영양가 만점의 착하기로 소문난 두부다.


여익현의 ‘두부 콩 밥상’이라는 책이 기존에 출간된 음식 관련된 책과의 차별성을 갖는 것은 재료와 주제 선정의 밀접한 연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한식의 특징은 여러 가지 재료를 한데 모아 만들어내는 묘미가 있다. 음식 이름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는 비슷하기도 하고 또 딴은 아주 다르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비스무리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렇게 치자면 여익현의 책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글은 살짝 내친 발걸음이 조금 앞서 나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양한 주재료 중에 두부를 선정하여 두부와 관련된 재료와 조리할 수 있는 다양한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는 까닭이다. 요리와 관련해서 일종의 반보 내지는 일보 진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도 아니면 기획의 신선함일까.

무엇보다도 저자 여익현의 책은 구성면에서 알차고 짜임새가 돋보인다. 빨리 가려하지 않고 천천히 꼼꼼하게 다양한 정보를 되짚어주고 있어 초보 주부에게도 친절한 안내서가 되어줄 듯하다. 그가 특별히 두부와 콩을 내새웠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책 전반부에는 두부와 콩에 관련한 영양성분을 함께 싣고 있다.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두부가 이렇게 착한 녀석이었던가 싶다.

두부, 두유, 콩나물, 콩이 들어간 된장과 고추장에 이르기까지 종류별로 특징과 성분을 구별하며 설명하고 있는 것은 그만의 배려이긴 하지만 어쩐지 간접 광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대목이다. 물론 이 대목은 여담일 뿐이다.


책은 1인분을 기준으로 한 영양성분표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요리의 총열량을 소개하고 있어 맛있는 요리의 큰 부담이 되는 칼로리 걱정을 덜어주는 센스를 덤으로 얹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정확한 계량을 위해 저자 스스로가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책을 썼다는 점에서 보통의 독자로서 기분이 좋아진다. 집에 주방저울이 없어서 늘 (g)으로 표기되는 용량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가 싶다.


“가장 정확한 계량을 위해 각각의 재료를 저울에 달아 그 양을 그램(g)으로 표시했습니다. 저울이 없는 분들이 좀 더 간편하게 계량할 수 있도록 괄호 속에서는 계량스푼, 계량컵 분량과 눈대중 계량을 따로 적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참 고마운 배려가 아닐 수 없다. 후반부에 나오는 간단한 베이킹과 관련해서 저자는 베이킹의 특징상 정확한 용량에 맞추기 위해 (g) 위주의 용량을 계산했다는 글을 싣기도 한다.

요리는 손맛이다. 그리고 정성이다. 하지만 너무 간이 세면 짜고 약하면 싱거운 건 매한가지 아닌가. 맛있는 요리를 위해서 일정부분 집중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너무 고직식한 발상일까. 책은 밑반찬과 탕국 찌개. 아이들을 위한 간식과 엄마들을 위한 다이어트 음식, 전문점 못지않게 맛있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음식 중에는 ‘두부 카프레제’ ‘나또 김치 무말이’ ‘고소아게 두부 카나페’와 같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새로운 요리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이 요리들의 맛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음식의 맛을 활자화된 책에서 백프로 느끼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각각의 다양한 요리가 갖는 대표적인 맛에 대한 설명이 곁들어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개인적으로 나또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까닭에 나또 관련 음식에 호기심이 가는가 싶다. 그중에서도 ‘나또 버섯볶음’의 맛이 정말 궁금해진다. ‘두부 버거 스테이크’는 아이들이 참 좋아할만한 요리인 듯하다. 책 한권 속에는 신선하고 정겨운 두부의 다양한 모습이 가득 담겨져 있다. 각설하고 두부의 변신은 진정 무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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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상처를 말하다 -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뒷모습
심상용 지음 / 시공아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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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아흔 세 번째 서평


예술, 상처를 말하다-심상용


가려진 실존과 부조리


책 표지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영원의 문에서>라는 그림이 실렸다. 한 노인이 고개를 숙인 채, 주먹 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다. 눈에 확 드러날 다른 정물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노인이 앉아있는 목재 의자와 동일한 목재로 된 마룻바닥 그리고 한 곁에서 타오르는 벽난로가 보인다. 이 그림을 두고 세간의 시선과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심상용의 시선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서로 엇갈린다.

이번 책은 어렵다.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깊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다만 보통의 독자가 인내심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책을 붙잡고 있을까, 라는 지극한 소심한 걱정을 하게 된다.

책을 읽고 기록으로 남길 때 나는 늘 내가 읽은 책을 완전히 소화해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 동시에 힘든 일이다.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알지 못하는 무지함에서 오는 가벼운 말놀음은 책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솔직히 내가 읽었던 책 모두들 진정 백프로 이해하고 수용했다고는 말할 수가 없을 듯하다.

심상용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 덫에 걸려들었음을 알았다. 저자의 이야기가 실린 ‘들어가며’ 부분을 읽는 순간 이번 책이 어떤 성격으로 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작가의 문체 그리고 풍기는 분위기에서 대번 책의 느낌을 찾는 일은 그닥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고통의 시대, 상처의 예술’, ‘이방인’, ‘혼돈의 시대가 남긴 상흔들’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획을 그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에 실린 글들은 같은 다소 시간의 흐름을 갖고 작성된 듯한 인상을 받는다. 초반의 심상용의 글과 후반부에 들어가는 그의 글이 주는 느낌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달랐기 때문이었을까. 물론 그가 설명하고자 하는 현실적인 주제와 대상이 다르고, 그것을 중점으로 풀어내야 할 이야기의 성격이 다른 까닭이기도 한 이유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보다도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그만의 글을 읽어내는데 그만큼 익숙해진 까닭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 그의 글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토로하는 듯 보였으며, 다소 격양되어 보이기도 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는 말처럼 그가 적어나간 문장과 단락 안에는 비판과 회의가 확연하게 드러나 있어서 일정부분 개인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1961년생인 저자가 쉰을 넘긴 나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표현은 어쩌면 다분히 전문가만의 현학적 냄새를 지나치게 많이 풍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문장 안에 다소 많은 한자어를 가져오기도 했고, 지나친 비유를 쓰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 표현이 적절한 비유인가, 라는 낙서를 참 많이도 적어놓았던 것 같다.

그러나 각설하고 그가 처음 이야기했듯이 이 글은 현실비판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현실 비판이란 그동안 우리가 안일하게 수용하고 인지했던 보편화된 상식의 틀을 깨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을까.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새롭게 접해봐야 한다는 내용 속에는, 속 쓰린 이야기지만 현실에서 예술이 존립하기 위해 부득불 공유할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실존의 부조리들을 들춰낸다. 동시에 저자 심상용은 그것들을 주르르 펼쳐놓고 조목조목 따져 비판하고 있었다.


심상용은 예술가의 실존에 시선을 고정한다. 무엇보다도 현실에서의 예술과 인간본연의 실존이 문제인 듯하다. 이렇게 끄적이고 보니 어쩌면 내가 심상용의 이야기를 잘 이해했는지 잘못 이해했는지 의문이 든다. 


그가 소개하고 있는 다양한 예술가의 초상 앞에서 나는 잠시 머뭇거린다. 그것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세계와의 관계를 잠시 단절하고 저자가 이끌어가는 길로 걸어가기 위한 준비운동일지도 모른다. 고통의 시대, 상처의 예술 편에 소개된 빈센트 ‘반 고흐’, 그리고 한때 심취해있었던 ‘프리다 칼로’를 심상용의 시선으로 다시 새롭게 만날 수 있어 신선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방인 편에서 만난 ‘권진규와 이성자’에 대한 이야기 역시 기억에 남을 듯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책은 저자가 선별한 예술가의 일생과 업적을 통해, 독자에게 진정한 예술의 가려진 측면을 보여주기 위한 일련의 기회로 작용 하지 않을까싶다. 쉽게 쓴 문장에 익숙해진 책 읽기에 딴은 아주 천천히 되짚어가며 정독해서 읽어야 했던 할 말이 많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는 저자가 소개하는 다양한 명언을 비롯해 심상용 그 자신이 남긴 내실 있고 속 깊은 그런 까닭에 튼튼한 뼈대가 서있는 글들이 실렸다. 하나하나 찾아보면 좋은 공부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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