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계승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서적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아흔 다섯 번째 서평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계승범


선비의 부끄러움을 엿보다.


참 오래 가지고 다녔던 책인가 보다. 명절에도 가지고 갔지만 그다지 많이 보지는 못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다녔지만 대부분 생각할 것들이 많아 책이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짧은 찰나의 시간 집중하기 좋은 책이었음에는 분명하다.

계승범의 선비 이야기는 두 가지 상반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나는 늘 좋아하는 역사물이기에 역사 이야기를 다시 만난다는 긍정적 설레임이 작용한다는 점이겠지. 그러나 다른 하나는 조금은 부정적이다. 여기서 부정이라 명명함은 단순하게 긍정의 반대의 의미일 뿐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어쩐지 개인적으로 살짝 뒤로 한걸음 물러나는 듯한 분위기가 짙다.


각설하고 책의 총체적인 느낌은 비틀어보기, 또는 거꾸로 세워 털어보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도 아니면 하나씩 껍질을 벗겨 본연의 것을 여실하게 그것도 알토랑 같은 알맹이만 속속 골라서 살펴보는 식의 방법이라고 말해야 할 듯하다. 지은이 계승범 그 스스로가 이야기했듯이 책은 기존의 인식이 가져다 준 질서에 안주하지 않는, 반항적인 내용의 전개로 이어지고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선비의 이미지를 모조리 그보다 더 격하게 표현하자면 깡그리 깔아뭉개는데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저자 계승범의 비판이 단순히 감정에 의해서 또는 개인적인 역사적 사관에 의한 것이 아닌 논리적 근거에 의한 비판과 지적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이다.


책은 비단 선비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당대 조선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정치,경제, 사회 그리고 인권과 주변 환경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로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의 흐름이 이어진다. 개인적으로는 2장 ‘선비의 덕목과 조선 선비의 실상’과 3장 ‘검증된 바 없는 유고 이론’, 그리고 4장 ‘선비가 꿈꾼 나라, 그들이 만든 나라’를 쉽게 집중해서 읽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보면 위에 언급한 내용이 이 책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갖는 다양한 패러독스의 매력은, 짐짓 일절부분 과장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과히 인식의 쓰나미처럼 다가왔었는지도 모른다.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참 선비들의 모습은 오간데 없고, 학문의 진정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정치와 사람과의 타협에 사활을 거는 다소 비천하기까지 한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말뿐인 선비들의 냉혹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저자는 계승범은 왜 이다지도 솔직한가. 아니다. 그는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선비님들의 용안에 찬물을 끼얹는단 말인가. 물론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책은 옳지 않은 잘못된 인식의 모든 것들에 대해 이를테면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자, 일종의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 위한 통합된 목적을 갖는다. 때문에 책을 읽는 이는 항상 저자의 말에 귀를 열어두어야 할 것이며 가장 중요한 조건을 충당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그동안 알고 왔던 진실을 뒤집어 바라볼 수 있는 시선과 그렇게 할 수 있는 나름의 용기를 품어내야 한다는 점이지 않을까. 


비장하게도 또는 조금은 서글프게도 계승범의 책은 올곧고, 점잖고, 기품 있는 선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러니하면서도 씁쓰름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가 이 책의 큰 메리트가 아닌가 싶다. 평소 좋아하는 퇴계에 관한 계승범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나는 생각이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원인이 간사해서일지, 아니면 영악해서일지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한 쯕으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습성을 갖는 듯하다. 아니 습성의 차원이 아니라 본능일지도 모른다. 계승범이 침을 튀기며 풀어놓은 글을 접하면서도 나는 어딘지 모르게 그래도.. 퇴계인데..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듯하다.


책은 다양한 설득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관계를 동시에 짊어져야하는 약간의 위험성도 동시에 지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는 이의 관점마저 저자 것으로 바꿔 흡수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어쨌거나 관점은 다양  할수록 좋은 것일 테니까. 계승범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얼치기 독자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냐고 짐짓 너스레를 떠는 모양새가 좋아보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책은 겉과 안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생각하자면 저자 계승범의 의도는 그만의 독특한 온고지신인 셈이다. 원뜻에서 살짝 의미를 비틀어 새롭게 만든 계승범식의 온고지신은 옛것이 지닌 모순과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부조리를 정확하게 알고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 단계는 저자의 이야기를 떠나서 일정부분 독자가 판단할 몫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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