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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오경아 지음 / 샘터사 / 2012년 1월
평점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아흔 여섯번째 서평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오경아
변함없이 든든한 것과의 만남
표지가 이쁘다. 여인의 치마자락을 연상케 하는 그림은 온통 그린의 향기로 가득하다. A라인으로 펼쳐져 내리는 주름진 치맛단처럼 푸르름의 정원은 잔디의 골마다 생기가 느껴진다. 고흐의 그림처럼 색체에서 강렬하지는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멀리 보이는 바다위에 둥실 떠있는 돛단배의 모습은 한가로이 여유마저 느껴진다.
처음 책의 느낌은 표지에서부터 이국적이다, 는 표현이 떠올랐을 정도로 표지그림을 보고 많은 것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 아기자기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어쩐지 끌림이 있는 책 표지가 마음에 든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펼쳐진 그린의 향연이 천천히 물꼬를 새롭게 정비해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만 같은 그림이다.
정원이다. 책 표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정원의 향취일까. '정원'이라는 한국어식 표현이 왜그런지 익숙하지가 않은 듯하다. 아주 어려서 살던 옛집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지었다는 오래된 집이었다. 대문을 겅중 뛰어 넘어 들어가면 한쪽으로 일자형의 작은 꽃밭이 있었다. 꽃밭과 정원의 차이는 무엇일까. 대략적으로 규모의 차이일까. 아니면 그것들을 수용하고 걸러내는 이의 인식의 차이일까.
저자 오경아가 소개하는 책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는 소소하게 몇가지 생각들을 불러들인다. 그 중 하나는 추억과의 대면이다. 지나간 과거로부터 소급하게 되는 그 어떤 것들. 한때 내가 속했던 시간과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사건들과 현재의 내가 조우하는 순간이다.
책 속에는 참 이쁘고 포근하며 순박한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숨을 고른다. 오경아 그녀의 글이 풍기는 분위기 역시 책이 전달해주는 느낌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솔직하고 담백하다고 할까. 방송작가의 분주한 일상을 버리고 돌연 영국으로 떠났던 오경아의 이야기는 비단 그녀가 왜 그래야했는지 그녀만의 이유있는 항변 내지는 변명으로 시종일관 늘어지지 않는다.
그녀 오경아는 문득 반복되는 일상에서 혹 잊고 있었던 것에 대한 의구심 같은 것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틀에 박힌 일상에서 놓치고 있었던 것에 대한 의문들과 잊고 살아야 했던 것들에 대한 씁쓸한 애착이 그녀를 현재의 것들에서부터 훌쩍 떠날수 있게 해준 원동력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꼭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잊고 살았던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한 여정이 그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세간의 만류를 뒤로하고 멀리 영국으로 떠났던 오경아의 기록은 작가의 사색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이번 책의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시간이 멈추어버린 세계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보낸 휴가기간동안 오경아는 내면에 내재하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고, 자연이 선사하는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에 긍정적 에너지를, 삶에 거친 숨결위로 옮겨와 가득 채워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었다.
사유의 흐름은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호흡에 맞춰 흘러간다.
이른 새벽 정원에 날아든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길가에 무심하게 피어난 수선화의 향취와 그 정서. 길고 긴 세월의 장막을 기꺼이 이고 버텨온 이 작은 소도시가 던져주는 평온과 충만함. 그 모두가 천천히 품어내는 애틋한 그리움이라는 정서는 읽는 이에게 묘한 행복감을 선사하고 있다. 그렇긴 한데 직접 가보지 못한 이에게 간접적으로 그곳의 정서를 만끽해주는 점에서 그 몫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미묘한 감정(나는 이 감정을 약간의 유치함이 작용하는 부러움이라 생각한다)이 끊임없이 내 모든 감각을 자극했던 것도 사실이다.
긴말이 필요한 문제일까. 저자 오경아의 책은 에세이에서 그 성격을 구분하고 있지만 분명 잔잔한 파장은 넓게 퍼저나갈 것을 생각한다. 문득 용기있고 패기넘치는 누.군.가는 그녀 오경아의 책 한권 옆구리에 끼고 비행기에 몸을 실을지도 모르겠다.
책은 에세이인 동시에 현명한 지도가 되어주지 않을까. 사유와 느낌이 살아있는 똑똑한 네비게이션의 몫을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제목이 주는 상징성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기록한다. 저자는 왜 정원에서 엄마를 만난다고 했을까? 에필로그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인간에게 자연은 부모님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고 그 자리에 있을, 아무리 떼를 쓰고 말썽을 부리다 돌아와도 받아줄 것 같은 부모님의 맘, 그게 자연 안에 있는 듯하다."
P 289-290
저자는 자연에서... 자연이 품어주는 정원에서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아낌없이 격려해주는 대자연과 함께 가족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문득 개인적인 해석으로 토를 달아보는 것이다.
각설하고, 부담없이 마음 내려놓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