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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리커버 특별판, 양장)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선택하는 삶- 같은 상처와 다른 상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지난 여름 아이들과 서점에 갔다가 집어 들었던 책이다. 특별판으로 두꺼운 합지를 덧붙인 양장의 표지에 600페이지 정도의 두께가 두툼한 책이다. 그 때 반양장의 평범한 디자인의 책이 눈에 띄었더라도 어쩌면 나는 이 양장표지의 책을 고집했을 법하다. 약간의 허황된 욕심이 작용했을 게 뻔한 일이니까.
워낙 잘 알려진? 작품이라고 하지만 나는 작가와 작품에 대해 아는 게 전무했다. 이번 작품이 이 작가의 작품으로는 처음이었다. 사실은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곤 했다. 내게 난독증이 있었던 것일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도대체가 이야기가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책의 막바지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해냈던 것이 바로 명답이었던 것 같다. 구분을 짓지 말고 그냥 보이는 그대로 읽어야 한다는 것. 그게 정답인 듯하다.
책은 모두 3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세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로 보기에 연결성에서 허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까닭을 해설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꽤 시차를 두고 발표된 이 세 작품은 구성이나 시점에서도 큰 차이가 있어서 하나의 제목으로 묶는 데에는 무리가 이다. -p607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하나의 주제를 향해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전체구성에서의 약간의 허점을 이해하면서 이제 책 속으로 더 자세히 들어가보자. 책은 1부 비밀 노트, 2부 타인의 증거, 3부 50년간의 고독, 이라는 제목으로 구성되어있다.
사실 1, 2, 3부의 구성은 시간적인 구성으로 보면 될 듯하다. 우리가 굳이 각각의 작품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작품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소설은 어린시절, 청소년기 혹은 청년시절, 그리고 중년이 넘은 노년의 시절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의 삶의 여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 인상은 강렬하다.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쌍둥이로 전쟁이 시작되자 할머니에게 맡겨지게 된다. 젊은 어머니는 아이들을 맡기고 떠나버리고 아버지는 종군기자로 먼저 가족에게서 멀어졌다. 처음 아이들과 할머니의 동거는 순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묘하게도 조화를 이루며 생활하게 된다. 1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여느 아이들의 모습과 다르다. 잔인하고 집요하며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이 강조된다. 강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정답인지, 아니면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각설하고 소설 속에 그들은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으로 행동하면서 성장해간다. 그러나 이들의 미묘하고 복잡한 심리작용에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며 배려하려는 이타심이 짙게 깔려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부에서는 홀로 남은 쌍둥이 형제 루카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근친상간으로 아이를 낳은 여인 야스민, 그녀가 낳은 아이 마티아스, 전쟁 중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여인 클라라, 부인을 잃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노인 미카엘, 담배와 알콜 중독에 누이를 살해한 서점 주인이었던 빅토르, 동성애를 보이던 페테르까지.
주목할 만한 것은 2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루카스를 비롯해서 하나같이 상처받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물론 전쟁이라는 상황이 인물들의 상처에 깊이 관여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 인물들의 공통점은 홀로 남겨졌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 작용하는 외로움과 상처에서 괴로워한다는 점이다. 이 중에서 어린 소년 마티아스의 죽음은 유독 큰 충격이고 슬픔이었다.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는 사랑받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또 다른 삶의 선택으로 자살을 선택하는데, 아이의 죽음을 자살로 그려내는 대목은 무언지 모르는 속상함 그리고 잔인함을 생각하게 했던 것 같기도 하다.
3부 50년간의 고독은 쌍둥이 또다른 형제 클라우스의 등장만으로 혼란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사실 소설을 읽는 동안 가장 머리가 아팠던 부분이 3부가 아니었을까. 작가의 이야기가 어디까지인지.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끝이 나는 것인지 도무지 명확하지가 않아 누구의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고민하지 말고 읽어야 한다는 게 정답이다. 그러면 결론에 조금씩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국경을 넘은 사람은 루카스일까, 클라우스일까.? 같이 국경을 함께 넘다가 죽게 되는 남자는 아버지일까. 아니면 전혀 알지도 못하는 타인이었을까. 사실 쌍둥이 중 한명은 완전히 허구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마지막에 독자는 자신의 형제를 외면하는 클라우스와 현실을 인정하고 되돌아서는 클라우스로 살아왔던 루카스를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왜 이들은 서로 이렇게 어긋난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일까. 그리고 왜 서로를 인정하지 못한 채 헤어져야 했던 것일까.
쌍둥이었던 두 형제의 삶은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모양으로 이어져왔다. 어느 한쪽의 삶이 좋았다고 말할 수 없이 두 사람은 다른 삶 속에서 같은 상처와 또 다른 상처를 각각 가슴에 품고 살았다. 누구의 삶이 더 좋았다고 할 수도 없는 각자의 힘든 삶이었다.
그리고 이들 형제의 고된 삶에서 작가는 한 사람의 삶에 마지막 종지부를 찍는다. 어린시절 늘 함께 했으나, 오랜기간동안 떨어져 살아왔으며 끝내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두 사람. 그들은 형제였다. 클라우스로 살아왔던 루카스. 그의 죽음과 어린 소년 마티아스의 죽음이 오버랩되는 순간은 마치 아주 깊고 오래된 까만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책은 작가의 유년시절의 이야기가 담겨진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 속 주인공 루카스는 작가 아코타 크리스토프, 클라우스는 그녀의 오빠를 상징한다고 했다. 늘 함께 했지만 둘 사이에 있었던 불안했던 감정선이 있었으며 이는 소설에서 쌍둥이 형제의 심리에 반영이 되었다는 해설이 있다.
이 소설은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반응이 나올법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해가 맞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된 것일지도 모른다.
독자에게 혼란을 주는 것과 더불어, 정해진 것이 아닌 상상의 그 너머의 어떤 것을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긍정의 효과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어렵지만 결론을 내려보자.
인간의 삶에 대한 쓸쓸한 서사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그러나 작품 속 주인공들이 그러했듯이 인간은 늘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 소설에서도 그랬지만 현실에서도 나와 우리 혹은 우리 모두를 둘러싼 환경이 우리로 하여금 선택하게끔 상황을 이끌어간다. 그리고 어찌됐든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된다. 그 안에서 인간은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이번 작품이 회자가 되고 있는 까닭은 어쩌면 인간이 선택한 삶 그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려 애쓰는,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덤덤하고 객관적인 작가의 시선으로 그려낸 점이 돋보였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보고 싶어진다.
[‘당신 남편은 무죄입니다. 우리는 그를 실수로 죽였습니다. 우리는 실수로 몇몇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지만, 이제 질서가 회복되었고, 우리는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더 이상 그런 실수가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들은 살인을 하고, 복권을 시키고, 사과를 하고 있어. 토마스는 이미 죽었는데! 그들이 되살려낼 수 있을까? 그들이 백발이 된 내 머리를 다시 까맣게 만들 수 있을까? 미쳐버릴 것 같은 불면의 밤들을 지워버릴 수 있을까? p317]
[“잊어버리게. 인생은 그런 거야. 모든 게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게 마련이지. 기억은 희미해지고, 고통은 줄어들고, 나는 사람들이 어떤 새나 꽃을 기억하듯이, 내 아내를 기억하고 있지. 그녀는 인생의 기적이었어.”(…)
불면증 환자는 눈을 뜨고 루카스를 바라본다.
“희미해지고, 줄어들고,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네.” p344-345]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p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