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8
헨릭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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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선택과 행동

 

희곡집을 읽어본지는 꽤 오래된 것 같다.

135라는 숫자를 적어보려 한다. 이 숫자는 2018년 올해를 기준으로 해서 이 작품이 초연됐던 1879년을 계산해본 결과이다. 백년이 넘은 세월이 흘렀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쩜 이다지도 달라진 게 없는 것일까. 작가가 작품에서 그려낸 남성의 모습은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비슷하다. 그게 참 묘하게도 모순이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상한 일이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습득하는 사회적으로 고착화된 의식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이다지도 어려운 일인가.

 

주인공 노라는 남편 헬메르에게 곱게 길러지는 어린아이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극중에 등장하는 남편과 아내는 동등한 관계가 아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소속되어 관리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극 초반에 노라는 이러한 예속된 관계에 부정하거나 불평하는 식의 딴지를 걸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 그대로 수긍하고 남편이 원하는 종달새, 다람쥐가 되어 그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그 앞에서 춤을 추는 귀엽고 사랑스럽게 남편에게 복종하며 순종적인 여인의 삶을 만족하는 듯하다. 그러나 극은 중요한 사건의 전개에 의해 주인공 특히, 여주인공 노라의 의식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자. 그러면 우리의 주인공 노라는 어떤 계기로 의식의 변화를 가져온 것일까. 조금씩 따져보자. 무슨 일로 그녀가 여행가방을 든 채 문을 열고 남편을 떠나간 것일까.

 

노라는 남편 헬메르가 변호사시절 건강이 악화된 그를 위해 문서를 조작하고 돈을 빌리게 된다. 그리고 그런 과거가 그녀의 현재의 삶에 파문을 일으키게 된다. 노라 주변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사실 그녀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녀의 행동에 확실한 불씨를 당기게 되는 사람은 바로 남편이었다. 모든 사실을 알고 난 이후 남편 헬메르가 아내 노라를 대하는 태도는 매우 부정적이며 감정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는 인간으로서 지나치게 계산적이고 타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의 이러한 남편의 모습이 당대 사회에 만연했던 모습이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게도 그러나 서글프게도 너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실 근원적인 이유를 따지고 보면 노라의 행동과 선택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라는 동정과 측은함이 먼저 꿈틀거리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속 좁은 남편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답답함이 몰려온다. 그리고 남편으로서 감정조절의 실패한 결과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단순히 외적으로 보이기 위한 가정만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압력을 가했던 것이 소멸되었을 때 바로 직변하고 있는 헬메스의 노라에 대한 태도는, 분명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무조건적으로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그의 행동은 매우 어리석었다, 라고밖에는 달리 표현이 어려워 보인다.

동기야 어찌되었든간에 결과적으로 아내는 남편에게 한순간에 거짓말쟁이로 낙인이 찍힌다. 남편은 부인인 노라가 사려깊지 못하고 무분별하기 짝이 없는 여인이기에, 더 이상 아내로서 더욱이 어머니로서는 더더욱 자격이 없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그녀는 남편이 쏟아부어내는 비난과 매정하기 짝이 없는 분노를 다 받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끝내 그녀 노라는 자아를 찾아 떠나게 된다. 그동안에 새장에 갇혀 노래를 불러왔던 자신의 인위적인 삶에서, 스스로의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방을 들고 남편의 곁을 떠난다.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되는 작품 82년생, 김지영을 지난달 책모임에서 같이 읽었을 때 우리는 이 작품의 한계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작품은 무언가 긍정적이면서도 중요한 메타포를 잊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어린아이가 늘어놓는 투정과도 같은 느낌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페미니즘과 이를 표현하는 문학은 투정에만 그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때문에 위의 작품은 호불호가 갈리고 남자들에게는 비판의 시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반면에 입센의 작품 인형의 집은 달랐다. 푸념과 비난, 좌절이 아닌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여주인공의 과감한 결정과 선택이 과연 옳았던 것일까. 라는 논란을 차치하고서라도 궁색하게 날개를 활짝 펼쳐내지 못한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어느 소수의 페미니즘의 문학과는 큰 대비를 이룬다는 점에서는 분명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때마다 그 순간마다 모든 여성들이 노라와 같은 선택을 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자아를 찾고 자신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작가 입센의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힘을 전달하고 있지 않은가. 문제의 핵심은 투쟁이 아닌 진정한 평등과 동등함에서 유지되는 공존이다.

 

노라....

-토르발, 나는 당신에게 재주를 부리는 것으로 먹고살았던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원했던 거죠. 당신과 아버지는 내게 큰 잘못을 했어요. 당신들은 내가 아무것도 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이 있어요.

 

헬메르...

노라, 말도 안 돼. 당신은 감사할 줄도 모르는군. 당신은 이곳에서 행복하지 않았나?

 

노라...

아니요. 행복한 적은 없었어요. 행복한 줄 알았죠. 하지만 한 번도 행복한 적은 없었어요.

p116

 

노라...

그 말은 더 이상 믿지 않아요. 나는 내가 우선적으로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고 믿어요. 최소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p118

 

누구나 현실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 현실이 자신에게 거대한 압박감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면 더욱 힘들어지는 게 모든 인간이 지니는 당연한 심리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페미니즘 문학으로만 들어다볼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이 변화하면서 갖는 내적성장이라는 측면으로 들여다보아도 괜찮을 듯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겨울 방학이 되기 전까지 이번년도의 마지막으로 작품으로 책모임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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