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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이름, 조선의용군
류종훈 지음 / 가나출판사 / 2018년 12월
평점 :
우리가 잃어버린 이름 조선의용군
역사. 그 책임과 당위성
책의 저자 류종훈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피디라고 했다. 그가 중국에 체류하면서 직접 두발로 뛰어다니며 기록한 증거물들이 오롯하게 책으로 나와 세간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 책이 잊혀진 역사의 기록이며 증거라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말처럼 잊혀진 역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알아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값지고 좋은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무거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던 것 같다.
상고시대부터 이어져오던 시간들이 모여 조선의 역사와 해방의 역사. 한국전쟁의 역사. 근현대사까지 한국사는 늘 살아있는 생동감과 더불어 아련함과 씁쓸함으로 다가온다. 특히나 500여년이 넘도록 지켜왔던 조선의 역사가 사실은 반목과 반역 그리고 개인의 시기와 각처의 세력들이 만들어놓은 아귀다툼의 시간으로 이어져왔던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역사라는 이름의 흐름이 견디어낸 이 지난한 시간만큼이나, 그 안에서 살다간 이들의 격정과 신산함으로 물들었던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때때로 매우 무거운 중압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고개를 들고 주의를 기울이며 바라보는 일조차 숙연함으로 물드는 것을 느낀다.
조선 의용군의 이야기도 결코 가볍게 읽어낼 책은 아니다. 책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조선 청년들의 투쟁과 실질적인 애환(정치적, 사상적, 현실적인)을 담아내고 있다. 그들이 어떤 생각, 즉 어떤 사상을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어디에서 모여서 단체를 이루게 되었으며 체계적인 지식교육과 사상교육을 받고, 실전에서 활용가능한 실질적인 군사훈련을 받아 어떤 루트를 통해 이동했으며, 어떤 전투에 참전했던 것인지 상세하게 저술하고 있다. 실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그들이 걸었던 그 길을 순서에 맞게 따라가며 설명한다. 책을 읽는 이들은 저자의 시선을 따라 먼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조선의 젊은이들이 걸어가는 대열 맨 끝에 서서 그들을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저자 류종훈은 조선 의용군을 이야기하면서 먼저 필요한 사전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조선 의용군이 생겨나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을까. 의용군의 시작은 의열단에서 출발한다. 단재 신채호가 주축이 되었고,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다’, 라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다. 그리고 저자 류종훈이 주목한 인물 김원봉이 이 책의 중심에 서 있다. 김원봉을 주축으로 각각의 독립을 위한 단체들이 규합하게 되고, 비로소 조선의용대가 만들어지지만 중국의 영향(압력?)으로 최종 조선의용군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진다.
그들은 중국의 변두리 시골 첩첩산중의 오지에서부터 번화가의 대도시를 망라해 이동했다. 낯설고 물선 타지에서 중국 현지인들과의 어려움과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해가면서도, 일본에 대한 혁명과 투쟁을 끊임없이 이어갔던 조선 의용군의 이야기는 중국 전역의 크고 작은 역사의 흔적과 기록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사상의 대립은 가혹한 것이다. 조선의용군 그들의 존재가 대한민국에서 사라진 것은 그들의 대부분이 해방이후 북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에 한국전쟁으로 그들이 대거 남쪽으로 내려온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왜 그들의 대부분이 북쪽을 선택했는가, 라는 의문점이 들기 시작한다. 처음 조선의용군은 중국의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과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당의 전쟁에 대한 미온적인 처세와 당시 함께 전장을 휩쓸던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 사이에서 조선의용군은 보다 적극적인 횡보를 선택했고, 그 결과 팔로군을 따라가 공산당과 손을 잡게 된다. 이때 조선의용군 안에는 중국공산당원이 함께 하기도 했다는 저자의 기록이 있다.
조선의용군의 역사는 중국 공산당의 역사와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 한 것은 하나의 목표 즉,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그들이 이념의 차이로 서로 갈라져야 했던 사실. 그 안에 중국 공산당의 이념과 세력이 막강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후광을 입고 정치일선에 나온 김일성에 의해 조선의용군 출신으로 북을 선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숙청을 당하고 추방되었던 사실이다. 절절한 희생과 헌신의 역사였지만 그 결과는 얄궂기 한이 없다.
북을 선택한 이유로 남에서 외면 받고 사라져야 했던 그들 조선의용군은, 사실 내 나라에 살았던, 내 이웃에 살았던, 그래서 오가며 만났을 법했던 오로지 국운을 걱정했던 어리고 여렸던 또 뜨거웠던 젊은 청춘들이었다. 이제 늦게나마 그들의 진실을 알고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며 새로운 책임감을 갖게 된다.
다음 세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하나도 버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산 역사를 말해줘야 하는 당위성이 생겼다.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민족은 다시금 슬픈 역사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반짝 유행하고 사라지는 문구가 아니다.
책은 조선의용군을 통해 본 독립운동과 더불어 해방 전후와 한국전쟁의 배경을 확인시켜주는 연결고리의 성격을 갖는다. 한국사 파트에서 독립운동 부분이 제일 어렵다는 말을 듣는다. 비슷비슷한 단체가 너무 많아 외우기도 힘들다고 하더라. 토막토막 외워할 것이 있고 큰 흐름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 있는 법이다. 류종호의 책 조선의용군을 읽어보면 흐름을 이해하는데 일정부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