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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소년이 온다
오랜만에 대출한 책으로 서평을 쓴다. 꽤 많이 읽기를 주저하던 책 한 권을 대출해왔다. 시간을 오래 끌었던 만큼 책의 무게감은 자못 무거웠으며 많은 생각들을 불러왔다.
그래서이다. 오늘은 더 자유롭게 그리고 딴은 더 솔직하게 써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의식의 흐름으로 말이다. 이제 시작해보자.
대학 동기는 작가 한강을 좋아했다. 그녀의 문체를 좋아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녀만의 분위기를 좋아했던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한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아는 한강은 작가 한승원의 딸이라는 것. 처음에 시를 썼었다는 것. 그러다 소설로 등단을 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녀 한강의 소설은 잘 읽게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작가의 작품에 호불호가 선명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애써 귀담아듣지 않았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언급하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었고, 세간에 많은 이야기에 가볍게 편승해 합류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한강은 그렇게 먼 사람이었고 그렇게 내겐 먼 작가였던가 보다. 더구나 이 소설 ‘소년이 온다’는 더더욱 피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작품은 5.18 광주 사태를 이야기한다. 15살 중학생인 동호. 그의 친구 정대. 상무관과 도청을 지켰던 이들. 슬픔과 두려움과 고통. 그 고통을 이야기하는 남겨진 이들의 목소리가 깊은 상처와 울림으로 작품을 가득 채워간다.
그렇게 산 자와 죽은 자. 가해자와 피해자. 잔인한 살상과 처절한 죽음. 서로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가득하다.
소설은 남겨진 이들 모두가 힘들게 대면해 읽게 되는 책이지 않을까. 벌써 40여 년이 지났다. 오래도록 기억의 자리마저 잃어갔던 이야기가, 한강의 소설 속에서 오롯이 생명력을 부여받았기에 어떤 면에서는 이제라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p117
아주아주 오래전에 그곳에 갔었다. 학교에서 경상도와 전라도 인근을 둘러보고 오는 계획으로 여행의 일정을 잡았을 때, 아버지는 짧게 지나가는 당신만의 성토를 조금은 요란스레 내려놓으셨었다. 이십 대의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면서도 안쓰러워했었다.
대학에 전공교과 은사들 몇몇이 공교롭게도 모두 같은 타지방을 고향으로 둔 고향지기였다. 비전공과 교수들도 상황은 다들 조금씩 비슷했다. 그러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로 ‘라테는 말이야’를 언급하며 서둘러 정리를 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다. 물론 그들의 고향은 누구는 바닷가 근처의 어디, 누구는 도심 속 어디처럼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다 달랐다.
그런데 뭐랄까. 그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이 함께 공유하는 생각들. 사유의 힘이라고 해야할지. 무언가 모를 단단한 결속 같은 게 느껴지곤 했었다. 왜였을까. 단순한 향우회에서 느껴지는 그런 친근함을 훌쩍 뛰어넘는 단단한 그 무언가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하동을 거쳐 귀경하는 마지막 날 우리의 여정은 망월동 묘지를 향했다. 그날 그들 중 한 교수가 버스의 일행을 남겨두고 도심 어딘가에서 홀로 내렸다. 어머니를 뵈러 집에 다녀오겠다는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그는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이 낯선 곳 어딘가에 그의 집이 있었구나. 그를 기다리는 노모가 있었던 거였구나. 성큼 걸음으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익숙함으로 무척이나 자연스워보였다. 그. 아니 그들에게는 익숙한 거리. 익숙한 냄새. 익숙한 공기였겠다 싶었다. 그들에게는 그곳 망월동도 그렇게 익숙한 곳이지 않았을까.
비석마다 사연이 새겨져 있는, 흑백사진이 동그랗게 박혀있던, 누군가가 곱게 내려놓고 갔을 하얀 국화꽃들, 그리고 끊임없이 들려오던 잔잔한 음악소리.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뭉클하고, 여전히 따숩고, 여전히 아리다. 분노로 치밀어오르는 화보다는 애잔함과 슬픔이 더 크게 다가왔던 그때의 기억은, 묘하게도 한강의 작품을 접하면서 느낀 감정과 함께 계속 오버랩 되곤 했다. 中이라는 글자가 박힌 학생모를 쓴 앳된 학생. 유난히 진지하고도 맑게 빛나는 눈동자를 지녔던 단발머리의 어느 여학생. 생각해보면 이들 모두는 작가의 소설에 나오는 이들이 아니었을까.
영혼과 영혼이 교감하고 의지하며 생각하는 순간의 작가적 상상력과 표현력을 조금은 더 느리게 그리고 세심히 들여다보던 순간도 있었다. 육체가 썩어들어가고, 불기운에 휘감기고, 재가 되어가는 순간을 바라보는 연약한 한 영혼의 존재를 마치 곁에서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우리가 진정 바라봐야 할 방향은 어디로 향해 있는 것일까.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이다.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새가 운다. 참새도 일반적인 까치도 까마귀도 아닌, 저 새의 이름은 물까치라고 했다. 꽁지와 배부분이 하늘색을 띄고 있어 더 순해 보인다. 알 수 없는 무게감으로 힘겨웠던 책을 나는 이제서야 내려놓는다. 언젠가 어느날 즈음에 잊지 않으려 결국 다시 읽게 될 것을 예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