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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데이먼 갤것 지음, 이소영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4월
평점 :
약속
데이먼 갤것의 소설이다. 작품을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할지. 어떤 관점으로 감상을 써야 할지 잠시 생각에 잠겨야 할 듯하다. 한 개인의 성장을 담아낸 가족 소설로 보기에는 시대를 둘러싼 시대적 정치적 요인을 무시할 수도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작품 전체를 그저 사회적 정치적 시선으로만 끌어안기에는 뭔가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듯한 기분이다.
먼저 형식의 관점에서 생각해볼까 싶다. 적어도 이 작품에 대해서 우리는 소설의 형식에 관대한 입장을 표명해야 할 듯하다. 소설의 서사는 흐름을 이어가는 듯하면서도 중간중간 엉뚱한 방향과 시선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연상케 한다고 해야 할까. 산만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소설이면서 희곡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하고, 상징적 비유와 마치 부조리극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들이는 순간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작가는 작품 안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실제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언급하기도 한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말이다. 어쩌면 작가의 의도된 시선에 깔린 정서는 차가운 비판의식 내지는 씁쓸한 인간애일지도 모른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등장인물이 점점 늘어가는데, 인물마다 작가적 시점을 서로 달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뭐랄까. 이를 두고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그 이상의 새로운 시점이라고 해야할지. 잠시 혼란스럽기까지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고충을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어쩌면 필수적인 과정일지도 모른다. 사견이겠으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소설은 독자에게 보다 더 가까이 친근하게 그리고 매우 솔직하게 다가서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가 싶다.
소설은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가족 구성원의 죽음과 살아남은 단 한 사람 ‘아모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회 혹은 정치적 관점으로 분석했을 때,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처했던 당대 시대 정치적 부조리와 한 가족사와의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다.
어머니의 죽음과 약속. 소설의 전체적인 뼈대가 되는 스토리는 ‘약속’이었다. 흑인이었으며 노예처럼 백인 밑에서 굴욕당하며 평생을 살아가야 했던 살로메와 그의 아들 루카스는 작가가 의도한 대로 당대 인종차별의 상징적 요소로 작품에서도 부각되는 인물들이다. 가난하고 천대받던 이들 흑인 가족에게 그들만의 집을 남겨주려 했던 어느 백인 여인의 의지. 그 의지를 받아 지켜내려 애쓰는 여인과, 이를 간과하고 무심히 자신의 것만을 지켜내려는 다른 가족간의 공방은 마치 세력과 세력의 다툼처럼 비추어지곤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어딘지 불안정한 면모가 남아있을지언정, 삐거덕거리면서도 약속이 이행되어가는 것을 독자가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할까. 아니면 마지막까지 해결되지 못할 원죄 의식 같은 상처만은 다시 확인하게 됨으로써, 여전히 암울함의 진행형이라고 정리해야 하는 걸까. 자못 고민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작품이 열린 결말이지 않겠는가, 라는 사견을 가져와 보고 싶다.
한가지 사견을 적는다. 이를테면 작품이 정치적 사회적 해석에만 국한되어 작품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작가의 또다른 시선을 놓칠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어떤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는가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겠지만 그래도 뭐랄까 가능하면 폭넓게 읽어가면 좋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이 잔을 제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며 짐을 거절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 잔이 당신의 것이라면, 당신은 그것을 마셔야 한다. 그 찌꺼기가 아무리 쓰더라도 신과 절대로 논쟁하지 말아야 한다. p116
-진정한 문제는, 아모르는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내가 제대로 사는 법을 한 번도 배워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상황은 언제나 너무 하찮거나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버거웠다. 이 세상이 내 위에서 무겁게 짓누른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잘 해낼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상기시킨다. p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