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라나시의 새벽
김미형 지음 / 예서 / 2023년 4월
평점 :
바라나시의 새벽
시집이다. 간만에 시집을 읽는가 싶다. 학교 다닐 때는 시집을 꽤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시집을 읽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뭐랄까. 시집을 읽어내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한 까닭이다.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이라고 할까.
누군가 내게 시집을 왜 보는가, 라고 질문을 했었나. 그때 내가 어떤 대답을 했었는지 기억이 없다. 다른 산문 문학에 비해 상징과 압축의 묘미를 이야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시 읽기는 보물찾기 같은 의미이다. 사람마다 다양하게 받아들이는 수많은 상징적 의미, 함축되어 드러나는 시인의 고백들. 그 안에서 아프게 박제된 듯한 아픔과 고통. 극복의 의지. 혹은 직간접으로 보여주는 희망까지도 함께 공유하는 일은 힘들면서도 행복한 일이다.
딴은 시든, 소설이든, 희곡이든 독자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작품을 바라보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안에서 나 조차도 자유롭지 못하다.
김미형의 시집 ‘바라나시의 새벽’은 불교적 사상이 짙게 배어나는 시집이다. 화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의 근원적인 화두는 결국 회환을 끌어안은 성찰. 마지막에 가 닿고자 하는 곳은 성불의 한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품에서 종종 시인의 시린 가슴을 보는 듯했다. 찰랑거리듯 조심스럽게 담겨진 아쉬움과 씁쓸함 그리고 모두가 공감하게 되는 지난한 삶의 무게감도 다가온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김미형의 시는 삶의 이름으로 지워진 것들로부터 가볍게 해주는 힘을 지녔다. 그런까닭에 따스하다.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차분하면서도 따스한 위로를 숨은 그림 찾듯 찾아 위로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 개인적으로 울림으로 다가왔던 많은 작품 중에서 몇 편을 소개해보자.
시인에게 낭독해보고 싶은 시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해서 한번 더 각인된 작품인가 싶다.
‘무탈’이라는 제목의 시 전문이다.
무탈無頉
바람 불지 않은 한 해 없었다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진 한 해도 없었다
무슴슴한 한 해도 없었다
입안에 혀 같은 인연은 더더욱 없었다
내 마음도 나에게 그랬다
숨이 차면 느리게 걷고
말言이 말馬이 되어 달리면
말言을 쉬게 하고
슬픔이나
아픔이나
외로움이 손을 내밀면
낯설지 않은 숨처럼 보듬고
더 슬프고 아프지 않아
고맙다고 다독인다
거친 바람 앞에서는 몸을 낮추고
흔들리면서도
길을 잃지 않고 걷는다
느리게
-p13. 무탈, 전문 인용-
사는 데는 정답이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라는 소리도 들어왔다. 나이가 들면서 치열함은 조금씩 옅어지고, 세상과 친해지기 위해 나는 점점 두리뭉실해지기로 했었다. 그래도 아픈 건 아프고 힘든 건 여전히 힘들다. 투정이고 고백이다. 이제 이만큼 견디어낸 나는, 아니 지금의 내가 시인처럼 손을 내밀 용기가 있는가. 생각에 잠긴다.
기분이 조금 더 가라앉기 전에 짧은 시 두 편을 소개하고 후다닥 도망가야겠다.
염주.
모난 생각을 둥글게 빚는다
그 둥근 생각조차 닳아서 없어지도록
마음맷돌을 돌린다
-p54. 염주, 전문 인용-
쇠백로.
오래도록 꿈쩍 않고 서 있다
울통불퉁한 개울 가운데서
모래 위에 서 있는 듯 부드럽다
한 끼를 위해
깃털 하나 흩트리지 않고
간절하다
마음을 함부로 쏟아버리지 않아서다
삶이 정성스럽게 흐르고 있다
-p58. 쇠백로, 전문 인용-
추신의 자리다. 모두의 삶도 정성스럽게 흐르고 있는 이 순간이다. 힘내고 또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