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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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삶. 이야기의 힘

 

소설 ‘그 남자네 집’을 구입한 시기는 내가 갓 결혼을 하고 2여년이 지난 시기였던 것 같다. 날짜와 관련한 기록이 없다. 왜 날찌를 적어두지 않았을까. 대신 병원에 다니던 기록물이 책갈피처럼 끼워져있다. 그렇지만 책을 읽지는 않았다. 이 책에 대한 기억이 없다. 아마도 그 시절에는 다른 작가의 다른 책이 더 위로가 되었던가 싶다. 아니면 나중을 위해 아껴두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더 나이가 들기를 기다렸던 것일까. 작가의 작품에서 풍겨져오는 분위기를 완전히 이해하고 맞장구를 칠만한 삶의 여유가 있을 때를 나는 기다렸던 것이었을까. 어쩌면 더 잘 된 일이 아닌가. 이십대에는 모르고 지나쳤을 책에 대한 감흥이, 나이 마흔 중반께 이르러 낯선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그건 아마도 내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 때문이겠지.

 

이제 혼자만의 치열함으로 씩씩거리던 우습지 않았던 열정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다시 작가의 소설과 마주 앉았다. 그리고 말한다. 어쩜 그리 재미나게 이야기를 잘 할 수가 있을까요?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기까지 작가는 직접이든 간접이든 혹은 상상이든 글을 살찌우고 키우기 위한 바탕이 되는 이야기거리를 모으기 마련이다. 바탕이 되는 이야기는 이를테면 경험이다. 삶의 경험 같은 거 말이다. ‘그 남자네 집’을 읽다보면 삶의 경험이 얼마나 큰 힘으로, 강력한 지지대가 되어 작품을 받쳐주고 있는가를 알 수가 있다.

 

주인공 나의 이야기는 실제 작가의 이야기처럼 들려오기도 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이념의 갈등으로 가족은 부서지고 갈라진다.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삶은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그 신산한 삶들을 이어갈 수 있도록 신께서 허락하신 이들이 있으니, 남편을 잃고 아버지를 잃고 아들과 오라비를 잃어버린 우리들의 어머니, 우리들의 누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소설 속 나는 어머니와 혼자가 된 올케를 도와 동생들을 챙겨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느끼며 미군부대 직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먼 친척뻘 되는 그 남자와 만남을 이어간다. 상이군인으로 제대하고 이북으로 떠난 형제와 아버지 대신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살던 그 남자는 나를 누이, 라며 함께 청춘시절 남녀의 이성적인 관계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의 기대감을 외면하고 안정된 직업이 가져오는 안정된 미래를 생각하며 은행직원과 결혼을 한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가 반복되어 진행된다. 현재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다시 회상부분인 과거의 이야기가 나오는 형식이다. 과거 속에 그 남자는 반복적이고 편안한 나의 일상에서 일탈을 꿈꾸게 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제목처럼 소설에서 그 남자네 집은 그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데, 집은 바로 집에서 살던 사람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주인공 나는 많은 것들이 변해버린 현재에서 과거의 옛 집을 찾아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추억을 불러낸다.

소설은 어떤 거대한 클라이막스 없이 잔잔한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작가의 필력이 엿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하고 강하지만 반면 한없이 부드러운 작가만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혹 하고 들어오는 특별하게 탐이 나는 비유나 은유적 표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한시도 여유를 주지 않는다. 책을 읽는 이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소설 ‘그 남자네 집’은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같다. 마치 인간극장의 한 스토리를 보는 듯하다고 할까. 그래서 인간의 삶은 크게 특별나거나 거하게 웅장하거나 한없이 궁상이라 할지라도, 이 모든 걸 떠나서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갓 미물인 벌레 때문에 시력을 잃어버리고 마는 그 남자의 인생도, 홀어머니와 7남매의 장려라는 책임감으로 미군부대에 들어간 순진하기만 했던 춘희의 서글픈 인생도, 전쟁통에 아버지와 오라비를 잃은 상처와 이상과 현실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선택해 살아가는 주인공 나의 삶도 다 같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측은한 면모를 숨기고 있다. 그러나 숨은 상처의 크기를 떠나 이들 모두의 삶은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가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잠자리에 들면서 끝없이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 같다. 동화책 이야기도 하고, 내 어린시절 이야기도 해주고, 더 오래된 내 집안 어른들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었다. 작가의 이야기처럼 나도 한국전쟁을 끼고 아이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참 많았던 것 같다. 광복이 공식적으로 공표되기도 전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다 일본군한테 쫒기다 뒤란에 사람만큼 큰 항아리에 숨어서 목숨을 건졌다던 내 외조부 이야기부터, 한국전쟁때 지붕을 뚫고 들어온 미사일에 눈앞에서 아들의 죽음을 보며 눈이 멀었다던 외조모의 한서린 이야기까지. 그래서 외할머니는 그때부터 아들 절망구에 들렸다고 했었다.

어린시절 제일 먼저 외갓집 대문을 넘어 들어설 때마다 들여오던 소리..

‘막둥이 완!’. 내 아이들도 이제는 하도 들어서 그 막둥이 소리가 나올라치면 같이 따라 중얼거리는 것이다. 막둥이 완.... 구수한 이북 사투리를.

 

이야기는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만의 힘을 지녔다고 믿고 살아왔고 아직도 변함이 없다.

소설 ‘그 남자네 집’은 이야기의 힘을 넘치도록 배불리 느껴볼 수 있었던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만큼 살아온 삶에 대한 애정과, 우둔하게도 잘 버티고 잘 참아왔다,라는 다독거림을 스스로에게, 혹은 나를 둘러싼 타인에게 조용히 말해주고도 싶은 욕심을 불러오는 글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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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걸스 1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3
마샤 홀 켈리 지음, 진선미 옮김 / 걷는사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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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걸스 1.2
-전쟁과 여인들. 그리고 어머니
     
전쟁을 소재로 다룬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전쟁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을 불행으로 몰아넣는다고 했지만, 특히나 어린아이와 여성들에게는 더없이 견디기 힘든 혹독한 시간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전쟁은 어떤 이유로든 무력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환경? 불안한 이 기간 동안 인간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으로 지녀야 하는, 신이 허락한 인간성,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상실해버린다는 것이다.
 옛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희망이라고 했던가. 그 마지막 선물을 얻기까지 인간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려야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과정인 전쟁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또다른 번영을 이룩해왔고, 아직도 그 과정은 진행형에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소설은 전쟁 한 가운데 삶을 살아갔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 캐롤라인, 카샤, 헤르타가 그 주인공들이다. 캐롤라인은 전직 유명배우로 미국에서 프랑스를 지원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고, 카샤는 지하활동(레지스탕스, 저항운동)을 하다 정치범으로 잡혀 수용소로 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헤르타는 독일인 의사로 수용소에서 근무하는 여의사로 등장한다.
각각의 인물은 당시 시대상황과 각 나라를 대변하는 인물로 상징화된다. 캐롤라인은 전쟁에 소극적이었으나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적극 참여하게 되는 미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카샤는 독일계 폴란드 인으로 폴란드를 비롯한 학대받는 유대인을 상징화하고 있으며 독일인 의사는 가해자, 가해국가인 독일을 상징한다. 
책은 년도별로 각각의 인물을 중심으로 시점이 변화면서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테면 캐롤라인1941년, 카샤 1943년 크리스마스, 헤르타 1947, 캐롤라인1959과 같은 형식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캐롤라인 1939년 9월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카샤 1959년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무려 20여년간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셈이다.
     
소설에서 상당부분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은 나치정권하에 있었던 여성수용소에 대한 이야기였다. 실제 존재했다는 이 수용소는 라벤스브뤼크,라고 했다. 우리가 많이 접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는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 시설이고, 잊혀졌던 역사적 사실이다. 
작품 속 카샤는 래빗이었다. 래빗은 수용소 내에서 분류되는 생체실험을 위한 그룹이었다. 일본이 생화학무기와 관련해서 생체실험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 역시 생체 실험을 했으며, 일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소설은 이야기한다.
     
세 명의 여인 중에 사실 제일 고생을 많이 한 인물은 카샤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았고, 생체실험으로 인해 전쟁의 흔적에서 벗어나오기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유독 독일을 대표하는 인물인 여의사 헤르타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녀가 가해자인 동시에 같은 여성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 유독 내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헤르타는 분명 처음에 비인간적인 실험에 대해 갈등을 겪었지만, 이내 자신의 일상에 적응하고 침묵하게 된다. 사실 헤르타라는 인물은 실존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그녀의 관한 부분 즉, 내적 갈등은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장에서 카샤가 찾아갔을 때 헤르타의 내면이 조금 등장하지만 작품 전체로 볼 때 미비한 분량이다.
     
개인적인 욕심과는 달리 작가는 헤르타,보다는 두 여인 즉 캐롤라인과 카샤에 더 비중을 두고 작품을 구상했던 것 같다. 생에 마지막까지 전쟁 중 래빗으로 피해를 받고 박해를 받은 폴란드 여인들을 위해 헌신한 캐롤라인의 이야기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품어줄 수 있는 따뜻한 박애정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번 소설은 감성적인 요소로 접근하면 암울하면서도 무겁다. 또한 진한 모성애까지 생각하자면 쓰라린 울림이 있는 스토리다. 그러나 정치적, 혹은 사회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범국으로 같은 입장에 서있는 일본과의 비교 역시 간과하기 어려운 부분일 듯하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의사로 살아가는 헤르타를 찾아가 의사면허를 영구히 박탈했다는 이야기가 작가의 말에 실렸다. 이 부분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가해자로서 아무런 인간적인 반성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전쟁과 상처, 사과 그리고 용서가 모두에게 잊혀지지 않도록 단호한 행동으로 옮겼다는 이야기는 일본이,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고, 어떤 방향으로 행동해야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각설하고 이 소설의 끝은 해피엔딩이다. 긴 터널을 빠져나와 따뜻함과 강렬함으로 우뚝 솟은 태양과 조우하듯, 지난한 삶을 뒤로 보내고 마주하게 된 희망을 보듯 카샤는 자신의 상처와 진정으로 마주하게 되고 극복하는 힘을 얻는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기록으로 남기는 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다행이다, 라고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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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살림)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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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before you

미 비포 유

 

사랑스러운 여인 루이자 클라크는 꿀벌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여자였다. 때로는 청순하고 때로는 눈치가 없을 정도로 말이 많지만 인위적이거나 가식적이지 않은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다니던 카페가 갑자기 문을 닫게 되면서 그녀는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다. 그러나 다시 직업센터를 찾아가 직업을 찾는 과정에서 사지마비 환자의 간병인으로 그 남자 윌 트레이너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윌 트레이너 곁을 지킨다. 수다쟁이 아가씨의 모습과 진지한 여인의 모습으로 윌의 곁에 머물게 된다.

 

소설은 여느 연애소설과 비슷하다. 다만 뭐라고 할까. 단순한 연애소설은 아니다. 주제가 묵직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존엄사 이야기는 너무 무겁다. 어쩌면 존엄사라는 묵직한 주제를 뛰어넘는 내밀한 주제가 있지는 않을까. 한번 더 고민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의든, 타의든간에 자기 안에서 머물러 있는 자아를 깨워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인물에 집중해보면 좋을 듯했다. 그리고 그 곁에서 끊임없는 자극과 조언을 아끼지 않은 인물로 등장하는 윌을 생각해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어쩐지 윌은 키다리 아저씨의 번외편?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미 비포 유. 사실 이 작품을 나는 책이 아닌 영화로 먼저 접했다. 그런 까닭에 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상상이 아닌, 영화에 등장하는 한 장, 한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묘한 고통 아닌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루이자의 양 갈래로 땋아내린 머리하며, 서커스 무대에나 등장할 것 같은 컬러풀한 옷을 입고, 늘 윌의 곁에서 머무는 그 여자. 엉뚱하면서도 상냥하기까지 한 루이자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런가하면 지나치게 날카롭던 얼굴이 조금씩 온화한 인상으로 변화해가는 윌의 섬세한 표정이 자꾸만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나는 어떤 상상을 하면서 책을 읽어갔을까.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고 6개월의 유예기간을 가족에게 선물처럼 안겨주는 윌은 스스로의 죽음을 위해 직접 계획하고 실행으로 옮기는 인물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고 마지막 결정만큼은 자기 자신이 직접 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가족들에게는 그의 결정이 상처로 다가온다. 그가 마음을 바꿔주기를 원하는 가족들의 절망적인 희망, 그리고 루이자의 간절함이 책에 여러 가지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두 사람은 경마장에 가서 많은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온몸으로 체험하기도 하고, 클래식 공연장에서 새로움에 눈을 뜨기도 하며, 윌의 전 여자친구의 결혼식에서 함께 춤을 추면서 설레는 감정에 취하기도 한다. 해피앤딩으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은 빗나간다.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지에서 그녀 루이자는 윌의 의지를 꺾지 못한 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그를 붙잡으려 노력하지만 결국 윌의 가족들과 루이자는 그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소설은 귀여우면서도 애틋하다. 그 와중에 존엄사는 무거운 주제다. 내가 아직 존엄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까닭인지도 모른다. 조금은 외면하고 싶은 존재다. 두렵기 때문에 외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하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나 역시 윌의 선택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랜만에 부담없이 마음을 가볍게 내려놓고 읽어본 책인 듯싶다. 가끔은 무거운 마음일랑 내려놓고 그저 편하게 읽을 책도 필요하다. 그게 바로 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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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ek Seok: Poems of the North (Hardcover)
Baek Seok / EXILE Press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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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북에서 온 시들..

백석 시 모음집.

   

 

백석의 시들을 한데 모아 읽어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이 책이 다른 시집과 차별성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도 각 작품마다 영문 번역이 같이 실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오래전에 보았던 민음사 세계시인선 시집을 보는 듯했다.

무엇보다 집중해서 살펴보고 싶었던 것은 백석, 즉 원 작가의 작품이 풍기고 있는 심상을 얼마나 잘 외국어로 이미지화하는데 성공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백석의 시는 토속어와 방언 등 익숙하지 않은 표현으로 인해 작품에 따라서는 한글로 읽어보아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작품도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들 즉 토속어와 사투리 등의 의미를 알아가는 문제를 떠안고, 한국적인 정서를 해석해 영어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번역의 어려움은 다른 언어가 갖는 언어적인 구조의 풀이보다는, 다른 언어가 그려내는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다른 문화에서 나오는 그들만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다. 문학작품을 번역하는 일이 종종 그 정서를 표현하는 순간,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물며 이번 텍스트는 바로 언어의 유희가로 알려진 백석의 시가 아닌가.

   

 

-역자와 표기에 대하여

역자는 Peter Nicholas Liptak이다. 情石(정석)이라는 이름도 같이 실렸다. 그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995년 한국에 왔다고 소개되고 있다. 이 책에서 백석의 시만큼이나 시선을 붙잡았던 이가 바로 역자였다. 외국인의 신분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학과 한국시를 접하면서 그는 한국의 근대 모더니즘 시의 흐름에서 백석을 만났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백석의 시 세계다. 우리의 정서와는 다른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았던 시들은 어떤 모습으로 그에게 비추어졌던 것일까.

   

 

 

 

시를 읽으면서 영어로 번역된 글들을 같이 읽어보았다. 나는 이 눈매가 깊은 서양사내가 번역한 영문 글에서, 그가 충분히 백석의 시들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가 한국인의 정서까지 이해하고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까지 느낄 수가 있었다. 그의 작업은 우선적으로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를 완전히 번역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일일이 단어의 의미를 해석하고 이해하며 그것을 다시 영어로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해 쏟았을 그의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고 할까.

   

 

 

 

영문 표기에 있어서 고유명사라든지, 일정 부분은 소리나는 발음 그대로 표기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영어로 풀어서 쓰기도 한다.

Jung (情)에 대한 설명과 표기는 다음과 같다.

-is an affection, closeness or bond that builds between people over time

   

 

 

 

시. 가즈랑 집에서 가즈랑 집을 the Jib으로 표기한다. 그리고 부연 설명으로 in the Gajeurang Jib. can also mean house. 로 적어두었다. 집을 단순히 영어로 home 이나 house로 표기하지 않고 먼저 소리나는 대로 집 (Jib)으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 여우난족골에서 보면 인절미를 (Injeolmi)is a glutinous rice cake, a chewy mugwort ddeok coated with soybean powder. 식으로 길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같은 떡 종류라고 하더라도 송구떡이나 콩가루차떡 같은 경우는 소리나는 대로 쓰는 표기 없이 바로 영어로 풀어쓰고 있다.

소주의 표기도 인절미의 표기와 같다. (Soju)is a clear Korean alcohol made from rice, whear oe barley.

그런가 하면 정문촌 (旌門村)에 등장하는 한자어는 한자음 그대로 영어로 표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효자노적지지정문(孝子盧迪之之旌門)을 'Hyo Ja No Jok Ji Ji Jong Moon'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각주를 달아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영어 혹은 한자어의 표기는 거의 이러하다.

   

 

 

-백석의 시에 대하여

백석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이다. 전쟁이 끝나고도 그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고향집에 안겼다. 때문에 우리는 한시절 그를 잊었고, 그의 시를 잃어버렸다. 우리가 백석의 이름을 다시 마른 입술위에 올릴 수 있게 된지가 얼마나 됐을까 생각한다. 책 표지에 실린 백석의 사진이 익숙하다. 잘생긴 외모에 심지가 깊어보이는 깊은 눈매, 다부지게 다문 입술이 그가 얼마나 강직한 청년이자 시인이었는지 애써 짐작하지 않는다해도 다 알 듯한 분위기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의 시는 나타샤가 등장하는 시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일부-p161)

   

 

이었다. 특별히 이 부분을 좋아한다고 해서 소극적 염세주의를 운운할 필요는 없다.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시인이 얼마나 여리고 순수한지, 맑은 것과 순한 것,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외로움을 견디며 수많은 연민 속에서도 진정으로 삶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백석의 시를 읽으면서 김소월을, 그리고 윤동주를 이상을 소환하게 된다. 그런가하면 소설가로 활동했던 김동인에게까지 시선이 가 멈추곤 한다.

어수선한 시대, 뜨거웠던 열정과 순수한 심상,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언어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로 소설을 표현했던 까닭에, 더욱 애잔하게 다가오는 그의 또 그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오래된 자리에, 지금 여기 백석의 시집을 번역한 이 한권의 책을 슬며시 놓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글로 삶을 노래하던 우리 선배들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함께 귀담아 들으며,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슬며시 작은 자리라도 마련해주면 더 없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백석의 묵직하면서 애잔함과 서정성이 듬뿍 담긴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바다-

바닷가에 왔드니/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는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이 개지 아니 나오고/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p159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밖은 봄철날 따다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 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위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그렇게라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즐거이 술을 먹으려 다닐것과/내 손에는 신간서(新刊書) 하나도 없는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世上事)’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p167

 

 

 

 

 

-가무래기의 악(樂)-

  ……

이 추운 세상의 한 구석에/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얼마나 기뻐하며 낙단하고/

그즈런히 손깍지베개하고 누워서/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할 것이다/p171

 

 

 

  -흰 바람 벽이 있어-

  ………………

………………

………………

(뒷부분만 인용)

내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 하는 듯이 나를 울럭 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 하듯이/ p247

 

 

  -‘나 취했노라’(노리다께 가스오에게)-

나 취했노라/나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술에 취했노라/

나 슬픔에 취했노라/

나 행복해진다는 생각에 또한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취했노라/

나 이 밤의 허무한 인생에 취했노라/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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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노래
미야시타 나츠 지음, 최미혜 옮김 / 이덴슬리벨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기쁨의 노래

 

-새로운 마돈나를 꿈꾸며-

 

고등학교시절을 생각했었다. 나 역시 여학교 출신이다. 유독 여학교에서 진행되는 합창대회라든지, 학교 축제는 늘 남녀공학보다 더 시끄러웠던 것 같다. 이웃한 남자고등학생들이 금남의 교문을 넘어서는 순간, 선생님들은 급격하게 예민해졌고 아이들은 더 신이 났다. 그리고는 고상한 표현으로 ‘이러한 교류는 건강한 청소년기에 꼭 필요한 부분이다’라고 떠들어대곤 했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가만있자.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 중에 그 시절 나와 제일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아이는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1학년 가을축제 첫날 딱 하루, 나는 생활관으로 이어지는 골목어귀에서 사과를 팔았다. 평소에는 존재감이란 털끝만큼도 없었던 내가 유일하게 목청을 돋우며 소리를 지르던 모습을 보고, 국어를 가르치던 학생주임이 지나가면서 했던 말은 이런 말이었다. ‘그래서 사과가 팔리겠냐? 더 크게 외쳐야지’

 

일본작가 미야시타 나츠의 ‘기쁨의 노래’는 여섯 명의 여학생들의 이야기다. 천천히 읽다보면 오래전 나의 이야기처럼 들려왔으며, 내가 했던 고민들을 들킨 게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이밀기도 했다. 누구나 그런 시절은 있었다. 그렇기는 하다. 그런데 말이다. 누구나 아니 그 시절 혹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함께 의논하고 생각해야 할 문제인 듯하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꿈이 있었다. 음악을 하고 싶었던 친구, 피아노를 치고 싶었던 친구, 소프트 볼 에이스 주자를 했던 친구, 남과는 다른 특이한 비밀을 안고 살아온 친구, 미술을 좋아하던 친구, 공부를 잘해서 인정받고 싶었던 공부벌레 연극을 하던 친구도 있었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학교에 다니는 자신에게 실망하는 레이와, 레이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저마다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른 좌절감과 낭패감을 경험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에 깊이 숨긴 채 ‘메이센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닮은꼴의 분위기로 말하고 있었다. ‘내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내 인생은 미래를 잃었다.’ 마치 인생이 이미 끝나버린 것 같은 좌절감에서 나오는 메마른 탄식이다. 갑갑하고 무거운 감정이 아이들을 칭칭 동여매고 있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들에게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다. 아니 행운처럼 새로움이 아이들에게 찾아온다. 그리고 아이들은 처음으로 함께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며 그렇게 마음을 열어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노래를 통해서 말이다. 기쁨의 노래를 통해서.

 

합창대회와 마라톤 대회는 작품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한다. 처음 합창대회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연하게 마라톤 대회에서 제일 뒤로 쳐진 학생 레이를 위해 응원하면서 아이들은 마음을 모아 하나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다.

 

책 ‘기쁨의 노래’를 일면으로 본다면 노래가 어떤 목적이기 보다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 과정에서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기쁘다, 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확장해서 생각하다보면 소소하고 아름다운 삶의 이치와 철학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책은 그 시절 누구나 느끼는 자괴감과 불만, 짜증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긍해야하는지를,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정확하게 단답형으로 ‘그건 이것이다’, 라고 꼬집어 말해주지 않는다.

그 답은 책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행동과 대화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 소녀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과정과, 관계와 관계 속에서 문제를 극복해가며 긍정적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에 집중해보자. 그러다보면 작가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아이들 곁에서 손을 내밀어주는 존재 '빡빡이 선생님'을 다시한번 생각하며, 지나간 시절에 내가 느꼈던 <아름다운 마돈나>를 불러와본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앞으로 부르게 될 <새로운 아름다운 마돈나>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 속에 등장하는 속 깊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둔다.

 

-음악이란 즐거운 거잖아. 이기고 지는 건 관계없는 거 아니야?p32

 

-생각하고 생각해서 말해본다. 되돌리고 싶다고 계속 과거에 얽매여 있다면 여전히 난 미래를 잃은 채일 것이다.p114

 

-“…… 이제부터가 아닐까?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제부터가 아닐까. 우리.” p212

 

-“눈 안에 문이 있다고 생각해봐. 거길 활짝 연다고 상상해봐.” p214

-다음은 있다. 몇 번이라도 기회는 찾아온다. 지금 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p218

 

-언젠가 이 봄의 뒷모습이 보이면 따라잡아 앞지르면 돼. 두려워할 건 없어. 왜냐면 봄 끝에 있는 건 여름이거든. 우린 이제부터야.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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