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북에서 온 시들..
백석 시 모음집.
백석의 시들을 한데 모아 읽어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이 책이 다른 시집과 차별성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도 각 작품마다 영문 번역이 같이 실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오래전에 보았던 민음사 세계시인선 시집을 보는 듯했다.
무엇보다 집중해서 살펴보고 싶었던 것은 백석, 즉 원 작가의 작품이 풍기고 있는 심상을 얼마나 잘 외국어로 이미지화하는데 성공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백석의 시는 토속어와 방언 등 익숙하지 않은 표현으로 인해 작품에 따라서는 한글로 읽어보아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작품도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들 즉 토속어와 사투리 등의 의미를 알아가는 문제를 떠안고, 한국적인 정서를 해석해 영어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번역의 어려움은 다른 언어가 갖는 언어적인 구조의 풀이보다는, 다른 언어가 그려내는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다른 문화에서 나오는 그들만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다. 문학작품을 번역하는 일이 종종 그 정서를 표현하는 순간,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물며 이번 텍스트는 바로 언어의 유희가로 알려진 백석의 시가 아닌가.
-역자와 표기에 대하여
역자는 Peter Nicholas Liptak이다. 情石(정석)이라는 이름도 같이 실렸다. 그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995년 한국에 왔다고 소개되고 있다. 이 책에서 백석의 시만큼이나 시선을 붙잡았던 이가 바로 역자였다. 외국인의 신분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학과 한국시를 접하면서 그는 한국의 근대 모더니즘 시의 흐름에서 백석을 만났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백석의 시 세계다. 우리의 정서와는 다른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았던 시들은 어떤 모습으로 그에게 비추어졌던 것일까.
시를 읽으면서 영어로 번역된 글들을 같이 읽어보았다. 나는 이 눈매가 깊은 서양사내가 번역한 영문 글에서, 그가 충분히 백석의 시들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가 한국인의 정서까지 이해하고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까지 느낄 수가 있었다. 그의 작업은 우선적으로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를 완전히 번역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일일이 단어의 의미를 해석하고 이해하며 그것을 다시 영어로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해 쏟았을 그의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고 할까.
영문 표기에 있어서 고유명사라든지, 일정 부분은 소리나는 발음 그대로 표기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영어로 풀어서 쓰기도 한다.
Jung (情)에 대한 설명과 표기는 다음과 같다.
-is an affection, closeness or bond that builds between people over time
시. 가즈랑 집에서 가즈랑 집을 the Jib으로 표기한다. 그리고 부연 설명으로 in the Gajeurang Jib. can also mean house. 로 적어두었다. 집을 단순히 영어로 home 이나 house로 표기하지 않고 먼저 소리나는 대로 집 (Jib)으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 여우난족골에서 보면 인절미를 (Injeolmi)is a glutinous rice cake, a chewy mugwort ddeok coated with soybean powder. 식으로 길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같은 떡 종류라고 하더라도 송구떡이나 콩가루차떡 같은 경우는 소리나는 대로 쓰는 표기 없이 바로 영어로 풀어쓰고 있다.
소주의 표기도 인절미의 표기와 같다. (Soju)is a clear Korean alcohol made from rice, whear oe barley.
그런가 하면 정문촌 (旌門村)에 등장하는 한자어는 한자음 그대로 영어로 표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효자노적지지정문(孝子盧迪之之旌門)을 'Hyo Ja No Jok Ji Ji Jong Moon'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각주를 달아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영어 혹은 한자어의 표기는 거의 이러하다.
-백석의 시에 대하여
백석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이다. 전쟁이 끝나고도 그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고향집에 안겼다. 때문에 우리는 한시절 그를 잊었고, 그의 시를 잃어버렸다. 우리가 백석의 이름을 다시 마른 입술위에 올릴 수 있게 된지가 얼마나 됐을까 생각한다. 책 표지에 실린 백석의 사진이 익숙하다. 잘생긴 외모에 심지가 깊어보이는 깊은 눈매, 다부지게 다문 입술이 그가 얼마나 강직한 청년이자 시인이었는지 애써 짐작하지 않는다해도 다 알 듯한 분위기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의 시는 나타샤가 등장하는 시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일부-p161)
이었다. 특별히 이 부분을 좋아한다고 해서 소극적 염세주의를 운운할 필요는 없다.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시인이 얼마나 여리고 순수한지, 맑은 것과 순한 것,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외로움을 견디며 수많은 연민 속에서도 진정으로 삶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백석의 시를 읽으면서 김소월을, 그리고 윤동주를 이상을 소환하게 된다. 그런가하면 소설가로 활동했던 김동인에게까지 시선이 가 멈추곤 한다.
어수선한 시대, 뜨거웠던 열정과 순수한 심상,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언어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로 소설을 표현했던 까닭에, 더욱 애잔하게 다가오는 그의 또 그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오래된 자리에, 지금 여기 백석의 시집을 번역한 이 한권의 책을 슬며시 놓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글로 삶을 노래하던 우리 선배들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함께 귀담아 들으며,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슬며시 작은 자리라도 마련해주면 더 없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백석의 묵직하면서 애잔함과 서정성이 듬뿍 담긴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바다-
바닷가에 왔드니/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는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이 개지 아니 나오고/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p159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밖은 봄철날 따다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 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위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그렇게라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즐거이 술을 먹으려 다닐것과/내 손에는 신간서(新刊書) 하나도 없는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世上事)’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p167
-가무래기의 악(樂)-
……
이 추운 세상의 한 구석에/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얼마나 기뻐하며 낙단하고/
그즈런히 손깍지베개하고 누워서/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할 것이다/p171
-흰 바람 벽이 있어-
………………
………………
………………
(뒷부분만 인용)
내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 하는 듯이 나를 울럭 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 하듯이/ p247
-‘나 취했노라’(노리다께 가스오에게)-
나 취했노라/나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술에 취했노라/
나 슬픔에 취했노라/
나 행복해진다는 생각에 또한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취했노라/
나 이 밤의 허무한 인생에 취했노라/ p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