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걸스 1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3
마샤 홀 켈리 지음, 진선미 옮김 / 걷는사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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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걸스 1.2
-전쟁과 여인들. 그리고 어머니
     
전쟁을 소재로 다룬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전쟁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을 불행으로 몰아넣는다고 했지만, 특히나 어린아이와 여성들에게는 더없이 견디기 힘든 혹독한 시간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전쟁은 어떤 이유로든 무력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환경? 불안한 이 기간 동안 인간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으로 지녀야 하는, 신이 허락한 인간성,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상실해버린다는 것이다.
 옛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희망이라고 했던가. 그 마지막 선물을 얻기까지 인간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려야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과정인 전쟁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또다른 번영을 이룩해왔고, 아직도 그 과정은 진행형에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소설은 전쟁 한 가운데 삶을 살아갔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 캐롤라인, 카샤, 헤르타가 그 주인공들이다. 캐롤라인은 전직 유명배우로 미국에서 프랑스를 지원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고, 카샤는 지하활동(레지스탕스, 저항운동)을 하다 정치범으로 잡혀 수용소로 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헤르타는 독일인 의사로 수용소에서 근무하는 여의사로 등장한다.
각각의 인물은 당시 시대상황과 각 나라를 대변하는 인물로 상징화된다. 캐롤라인은 전쟁에 소극적이었으나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적극 참여하게 되는 미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카샤는 독일계 폴란드 인으로 폴란드를 비롯한 학대받는 유대인을 상징화하고 있으며 독일인 의사는 가해자, 가해국가인 독일을 상징한다. 
책은 년도별로 각각의 인물을 중심으로 시점이 변화면서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테면 캐롤라인1941년, 카샤 1943년 크리스마스, 헤르타 1947, 캐롤라인1959과 같은 형식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캐롤라인 1939년 9월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카샤 1959년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무려 20여년간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셈이다.
     
소설에서 상당부분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은 나치정권하에 있었던 여성수용소에 대한 이야기였다. 실제 존재했다는 이 수용소는 라벤스브뤼크,라고 했다. 우리가 많이 접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는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 시설이고, 잊혀졌던 역사적 사실이다. 
작품 속 카샤는 래빗이었다. 래빗은 수용소 내에서 분류되는 생체실험을 위한 그룹이었다. 일본이 생화학무기와 관련해서 생체실험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 역시 생체 실험을 했으며, 일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소설은 이야기한다.
     
세 명의 여인 중에 사실 제일 고생을 많이 한 인물은 카샤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았고, 생체실험으로 인해 전쟁의 흔적에서 벗어나오기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유독 독일을 대표하는 인물인 여의사 헤르타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녀가 가해자인 동시에 같은 여성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 유독 내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헤르타는 분명 처음에 비인간적인 실험에 대해 갈등을 겪었지만, 이내 자신의 일상에 적응하고 침묵하게 된다. 사실 헤르타라는 인물은 실존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그녀의 관한 부분 즉, 내적 갈등은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장에서 카샤가 찾아갔을 때 헤르타의 내면이 조금 등장하지만 작품 전체로 볼 때 미비한 분량이다.
     
개인적인 욕심과는 달리 작가는 헤르타,보다는 두 여인 즉 캐롤라인과 카샤에 더 비중을 두고 작품을 구상했던 것 같다. 생에 마지막까지 전쟁 중 래빗으로 피해를 받고 박해를 받은 폴란드 여인들을 위해 헌신한 캐롤라인의 이야기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품어줄 수 있는 따뜻한 박애정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번 소설은 감성적인 요소로 접근하면 암울하면서도 무겁다. 또한 진한 모성애까지 생각하자면 쓰라린 울림이 있는 스토리다. 그러나 정치적, 혹은 사회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범국으로 같은 입장에 서있는 일본과의 비교 역시 간과하기 어려운 부분일 듯하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의사로 살아가는 헤르타를 찾아가 의사면허를 영구히 박탈했다는 이야기가 작가의 말에 실렸다. 이 부분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가해자로서 아무런 인간적인 반성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전쟁과 상처, 사과 그리고 용서가 모두에게 잊혀지지 않도록 단호한 행동으로 옮겼다는 이야기는 일본이,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고, 어떤 방향으로 행동해야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각설하고 이 소설의 끝은 해피엔딩이다. 긴 터널을 빠져나와 따뜻함과 강렬함으로 우뚝 솟은 태양과 조우하듯, 지난한 삶을 뒤로 보내고 마주하게 된 희망을 보듯 카샤는 자신의 상처와 진정으로 마주하게 되고 극복하는 힘을 얻는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기록으로 남기는 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다행이다, 라고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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