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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노래
미야시타 나츠 지음, 최미혜 옮김 / 이덴슬리벨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기쁨의 노래
-새로운 마돈나를 꿈꾸며-
고등학교시절을 생각했었다. 나 역시 여학교 출신이다. 유독 여학교에서 진행되는 합창대회라든지, 학교 축제는 늘 남녀공학보다 더 시끄러웠던 것 같다. 이웃한 남자고등학생들이 금남의 교문을 넘어서는 순간, 선생님들은 급격하게 예민해졌고 아이들은 더 신이 났다. 그리고는 고상한 표현으로 ‘이러한 교류는 건강한 청소년기에 꼭 필요한 부분이다’라고 떠들어대곤 했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가만있자.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 중에 그 시절 나와 제일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아이는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1학년 가을축제 첫날 딱 하루, 나는 생활관으로 이어지는 골목어귀에서 사과를 팔았다. 평소에는 존재감이란 털끝만큼도 없었던 내가 유일하게 목청을 돋우며 소리를 지르던 모습을 보고, 국어를 가르치던 학생주임이 지나가면서 했던 말은 이런 말이었다. ‘그래서 사과가 팔리겠냐? 더 크게 외쳐야지’
일본작가 미야시타 나츠의 ‘기쁨의 노래’는 여섯 명의 여학생들의 이야기다. 천천히 읽다보면 오래전 나의 이야기처럼 들려왔으며, 내가 했던 고민들을 들킨 게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이밀기도 했다. 누구나 그런 시절은 있었다. 그렇기는 하다. 그런데 말이다. 누구나 아니 그 시절 혹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함께 의논하고 생각해야 할 문제인 듯하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꿈이 있었다. 음악을 하고 싶었던 친구, 피아노를 치고 싶었던 친구, 소프트 볼 에이스 주자를 했던 친구, 남과는 다른 특이한 비밀을 안고 살아온 친구, 미술을 좋아하던 친구, 공부를 잘해서 인정받고 싶었던 공부벌레 연극을 하던 친구도 있었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학교에 다니는 자신에게 실망하는 레이와, 레이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저마다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른 좌절감과 낭패감을 경험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에 깊이 숨긴 채 ‘메이센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닮은꼴의 분위기로 말하고 있었다. ‘내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내 인생은 미래를 잃었다.’ 마치 인생이 이미 끝나버린 것 같은 좌절감에서 나오는 메마른 탄식이다. 갑갑하고 무거운 감정이 아이들을 칭칭 동여매고 있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들에게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다. 아니 행운처럼 새로움이 아이들에게 찾아온다. 그리고 아이들은 처음으로 함께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며 그렇게 마음을 열어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노래를 통해서 말이다. 기쁨의 노래를 통해서.
합창대회와 마라톤 대회는 작품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한다. 처음 합창대회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연하게 마라톤 대회에서 제일 뒤로 쳐진 학생 레이를 위해 응원하면서 아이들은 마음을 모아 하나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다.
책 ‘기쁨의 노래’를 일면으로 본다면 노래가 어떤 목적이기 보다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 과정에서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기쁘다, 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확장해서 생각하다보면 소소하고 아름다운 삶의 이치와 철학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책은 그 시절 누구나 느끼는 자괴감과 불만, 짜증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긍해야하는지를,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정확하게 단답형으로 ‘그건 이것이다’, 라고 꼬집어 말해주지 않는다.
그 답은 책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행동과 대화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 소녀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과정과, 관계와 관계 속에서 문제를 극복해가며 긍정적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에 집중해보자. 그러다보면 작가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아이들 곁에서 손을 내밀어주는 존재 '빡빡이 선생님'을 다시한번 생각하며, 지나간 시절에 내가 느꼈던 <아름다운 마돈나>를 불러와본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앞으로 부르게 될 <새로운 아름다운 마돈나>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 속에 등장하는 속 깊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둔다.
-음악이란 즐거운 거잖아. 이기고 지는 건 관계없는 거 아니야?p32
-생각하고 생각해서 말해본다. 되돌리고 싶다고 계속 과거에 얽매여 있다면 여전히 난 미래를 잃은 채일 것이다.p114
-“…… 이제부터가 아닐까?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제부터가 아닐까. 우리.” p212
-“눈 안에 문이 있다고 생각해봐. 거길 활짝 연다고 상상해봐.” p214
-다음은 있다. 몇 번이라도 기회는 찾아온다. 지금 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p218
-언젠가 이 봄의 뒷모습이 보이면 따라잡아 앞지르면 돼. 두려워할 건 없어. 왜냐면 봄 끝에 있는 건 여름이거든. 우린 이제부터야. p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