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갱년기다
박수현 지음 / 바람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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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갱년기다

-모두의 갱년기를 위하여!

 

 

표지가 강렬하다. 핑크핑크 컬러가 유난히 눈에 띈다. 그런가하면 당당하게도 ‘나는 갱년기다’, 라는 활자가 굵고 진하게 박힌 글자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보았을 법한 여왕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손에는 여왕을 상징하는 지휘봉을 들고 있는 당당한 이 여성은 누구인가. 어쩌면 내 모습이 아닌가.

 

책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갱년기를 이야기한다. 저자 박수현은 본인이 직접 경험한 갱년기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에세이 한권에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실제로 책 속에는 갱년기란 무엇인지, 어떤 증상을 경험하게 되는지, 어떻게 극복해 가는 게 좋을지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때로는 의학적 전문지식을 소개하기도 하고, 저자를 포함해 개개인이 경험한 예를 바탕으로 실생활에 적용해볼 수 있는 다양한 제안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남아있는 난자가 하나도 없다, 는 의사에 말을 듣고 받은 충격은 어땠을까. 저자는 그때부터 할매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할매 축하 보쌈 파티를 했다고 한다. 초경을 시작한 아이에게 축하파티를 해주는 것처럼, 갱년기에 접어든 저자도, 혹은 비슷한 시기를 지내고 있는 우리도 같이 갱년기를 위한 파티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문득 생각한다. 나는 갱년기인가? 아니 나도 갱년기인가? 나는 왜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걸까. 책을 읽고 싶은 관심이 있다는 것은 어느정도 그 쪽에 관련성이 있어서라는 생각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갱년기를 위한 파티’에 나는 나도 모르게 다리 한쪽을 슬며시 얹어놓으려 하는 중인가보다. 갱년기라는 개념이 여성의 몸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던 호르몬들의 변화에 의해 생겨나는 증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들의 총체적 개념이라고 할 때, 어쩌면 나는 이미 저자가 말하는 갱년기의 시작을 알리는 스타트라인을 끊고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말하는 다양한 증상이 다 내게 발현되고 있는 건 아니지만 특히나 기복이 심한 감정선들과, 툭하면 밤잠을 설치게 되는 불면에 이미 친숙해져있는 내 상태를 생각하면 아, 이런. 나도 그 파티를 준비했어야 했나, 라는 혼자만의 의구심을 갖는다.

 

우리가 지금 갱년기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어떤 낡은 선입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도 있겠지만 사실은 분명한 또 하나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다. 우리가 여자들만의 이야기를 대놓고 요란할 정도는 아니지만 소곤거리지 않고 그저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까닭은, 이 모든 과정이 여성이라는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한 과정이며 그 인생에 있어 이 또한 소중한 순간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때문에 저항하지 말고 외면하지도 말고 그저 이해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서로에게 말해주기 위함이다. 그렇게 힘을 주기 위함이다.

책은 갱년기가 특별히 큰 문제를 일으키는 중한 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일부라는 이야기였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새벽에 땀으로 온몸이 젖어들어 한기에 잠을 설치고, 그렇게 불면으로 새벽녘 거실에서 혼자 고독을 견디고 우울감이 친하게 지내자고 자꾸 말을 걸어오더라도 책은 누구나 다 이 시기를 극복하고 견뎌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또한 두려움에 갇혀있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가 만든 동굴에서 걸어 나올 것, 견과류를 챙겨 먹을 것, 또 운동을 하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글쓰기를 권하기도 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것은 이야기한다.

실제로 책의 마지막은 갱년기를 경험한 선배들과의 대화를 싣고 있다. 인생의 선배이자 갱년기를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이들의 이야기는 조용히 귀 기울여 생각해볼 부분이기도 하다.

딴은 무엇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고 원하는 그 무엇을 찾아가는 일이 바로 갱년기와 함께 같이 꼭 경험해봐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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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역사여행
유정호 지음 / 믹스커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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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역사여행

-역사, 숨을 쉬다

 

간접체험의 진수는 바로 여행과 관련된 책을 읽는 일이 아닐까싶다.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사진과 함께 저자가 풀어놓는 솔직 담백한 이야기들은 책을 읽는 이에게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번 책은 방구석 역사여행이다. 지은이 유정호는 중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동시에 역사와 관련해 이미 몇 권의 책을 출간한 저력이 있는 작가다. 역사와 함께 호흡을 같이해온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면 으레 어떤 정해진 분위기를 일정부분 짐작할 수 있을 법도 하지만 이 책의 느낌은 좀 달랐다. 그의 책은 노련한 여느 역사가의 족집게 과외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그럴 것이다, 라고 예상했던 것들이 아니었기에 더욱 반가웠다고 해야할까.

 

유정호의 이야기는 역사에 대한 애틋함과 순수함이 진득하게 베어든 저자만의 시선이 찾아낸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번 책 ‘방구석 역사여행’은 7개의 지역으로 구분하여 지역마다 가보면 좋을, 혹은 꼭 가봐야 할 곳 등을 역사가의 시선에서 잔잔하게 이어나가고 있다. 서울을 시작으로 경기도 그리고 강원도와 충청도, 전라도와 경상도 마지막에는 특이하게 제주도를 포함시켰다. 그의 책은 이미 잘 알려진 역사적 의의와 가치가 있는 곳들을 포함해 잘 알려지지 않는 숨겨진 비경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곳곳에 자리한 역사를 찾아내고 있었다.

 

예전에 역사를 소재로 한 여행기 몇 권을 접해본 기억을 소급해 다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사람의 기억력이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는지라, 견고하지 못한 기억력이 나이가 들수록 자신감 내지는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하는 불안한 요소로 자리하게 되는가보다. 그 간당간당하는 기억력을 붙잡는 방법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학습과 수행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나는 이번 유정호의 책도 역시 멀어져간 기억을 되새기는 데 도움을 구하는 요긴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익숙하지 않았기에 새롭고 더 깊이 와 닿았던 내용 몇 가지를 이곳에 소개해보면 어떨까. 왜 백정 교회가 불렸을까? 라는 타이틀로 소개되고 있는 ‘승동교회’의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제일 먼저 이곳 지면에 소개하고자 한다. 승동교회의 역사적 배경과 3.1 운동을 비롯해 독립운동과 살아있는 교회의 역사를 소개하는 이 장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유튜브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제 1호 서양의사로 알려진 박봉출이다.( 그는 이후 박서양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물과의 깊은 인연으로 소개하는 ‘수종사’ 역사 내게는 낯설지만 가보고 싶은 곳으로 각인된 곳이기도 하다. 상사병에 걸려 죽어 뱀이 되어서까지 공주에게 집착했다는 당나라 공주의 설화 이야기를 소개하는 ‘청평사’는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도 같으면서도 여전히 새롭게 다가온다.

더욱이 충청도 편에서 언급하고 있는 백제 역사에 대한 기록과 관련된 이야기들에 대한 소개는 유독 백제와 같이 한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 좋은 인상을 준 부분이기도 하다.

 

책은 삼국시대에서부터 시작해 통일신라, 고려, 조선, 그리고 시대와 세대를 훌쩍 건너뛰어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기쁨과 환희, 슬픔과 고통을 끌어안은 회환으로,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우리의 역사를 담백하게 그려낸다.

역사를 제일 어려운 과목으로 치부해버리는 요즘 학생들에게 역사란, 딱딱한 암기과목이 아닌 살아있는 이야기라는 어떤 관점의 변화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역사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과거로 회귀하여 돌아가지 못하기에, 오래전 어느 시기를 현재의 남아있는 유적과 유물 가까이로 감히 소환하는 것에서부터 역사는 다시 시작되고 그렇게 또 이어진다. 그리고 그 지나간 시간 안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들여다보고 의미를 생각하며 태어나 살아가며 사라져갔을 모든 삶의 이야기를 논하는 게 바로 역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때문에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것이 아닌 살아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책 ‘방구석 역사여행’은 어렵지 않게 편안하게 읽어갈 수 있는 책이다. 중학생 아들놈이 좀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시종 부모로서 갖는 사욕이지만 잠시라도 언급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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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2020-07-03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대 유종호 교수가 쓴 글인줄 알고 들어가봤더니, 저자는 유정호씨로 학교 선생님이시네요 ^^ 예진님 제가 일부러 목적을 갖고 쓴 댓글은 아니에요 ^^;; 쓰신 글은 두번이나 정독하고 갑니다~~ 미워하지 마세요!

월천예진 2020-07-04 16:54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수정하였습니다.
 
나를 찾는 하루 10분 글쓰기
조이 캔워드 지음, 최정희 옮김 / 그린페이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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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하루 10분 글쓰기

-내면의 목소리에 몰입하기를...

 

 

장마다. 곧 후드득 빗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데 아직은 잔뜩 찌푸린 채 조용하기만 하다. 아이를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에어컨 대신 히터를 켰다. 장마가 시작된 이후 이상하게 한기로 추위를 타고 있어서 가을에 입는 카디건을 걸치고 앉아 생각한다. 차라리 비가 퍼부으면 따뜻해지려나?

 

책은 170페이지 정도의 얇은 두께로 가볍고 뻣뻣하지 않아 부드럽다. 어디든 부담 없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정도의 적당한 크기다. 무엇보다 무겁지 않아서 좋은 책이다.

집중하고 몰입하기. 사실 모든 집중을 위한 몰입이 있기 전에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관찰하는 행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라고 했다. ‘나를 찾는 하루 10분 글쓰기’의 조이 캔워드는 자신의 책에서 집중과 몰입, 그리고 내면의 소리를 들어볼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면의 목소리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어쩌면 글쓰기란 내 안에 숨어있는 진정한 나를 찾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작가에게는 내면에 숨은 자신만의 목소리가 있다”p10

 

캔워드의 ‘나를 찾는 하루10분 글쓰기’는 형식적이지 않으며,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해져버린 지루한 이론을 거창하게 들먹이지도 않는다. 답답할 정도로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진지하다. 그런 까닭에 딱 그만큼 넉넉하면서도 사색적이라는 매력을 품고 있다. 작가는 우리가 아주 조금씩 천천히 내면으로의 여행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 안내를 도와준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내면으로 침잠하며 글쓰기를 몸에 익힐 것을 이야기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내면의 ‘생각 전환’과 같은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의 전환)내용과 함께 ‘내게 영감을 준 사람들’이나 ‘감정 기억하기’, ‘나만의 책갈피’ 등을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외적인 것들 즉 구성과 형식적인 측면으로도 볼 수 있는 시(운문과 산문)와 소설(시점과 시제, 분위기) 쓰기를 소개하기도 한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일기를 쓸 수 있고, 여든이 넘은 어르신들도 한글을 배우셨다면, 시장에서 구입할 목록정도는 받침이 몇 개 빠진 글자라 한들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가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매일같이 쓰고 있지만 여전히 뭔가 모를 거대한 벽에 매일같이 머리를 들이박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어쩌면 이번 책을 통해 나름대로 해답을 찾아낸 듯싶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가 글쓰기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이유가, 타인을 의식하고 그들에게 보이기 위한 글을 쓰기 때문이며, 평가만을 위한 글을 쓰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말을 넌지시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작가의 말에 마음 한 끝자락이 지잉 울리며 허탈감으로 돌돌 말려가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언제나 내 안으로의 몰입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것들과의 비교와 비판이라는 어설픈 무대에 먼저 올라섰던 것은 아니었을까.

 

책은 꼭 작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노력에 대한, 진지한 사색이 담긴 책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단 쓰는 일이 먼저다. 그리고 난 이후에 다듬고 고치는 과정(퇴고)을 통해 글쓰기를 이어간다면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분명 좋은 글을 쓰고 있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를 언급하고 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부분을 기록으로 남긴다. 가장 좋았던 까닭은 아마도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던 내 신념과 엇비슷하게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감각으로 느끼기’ 라는 대목에 대한 이야기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기’ 는 독자에게 어떠한 장면을 설명하는 대신, 독자가 그 장면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이 기법을 구사하려면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을 늘 열어두어야 한다.-p28

 

캔워드는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들지 말고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 것을 주문한다. 그의 이야기처럼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고 몰입해 구체적으로 표현해내는 연습을 반복하게 된다면, 언젠가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무늬(내용과 형식)를 갖춘 나름대로 의미 있는 글을 쓰게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아끼는 책으로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책이다. 여백과 사색이 오롯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그런 책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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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월천예진 >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칼 포퍼)

십년 전에 썼던 글
여전히 좋아하는 칼 포퍼
이제 다시 보고 싶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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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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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사소한 아름다움

 

책장 파먹기 시리즈4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책은 오가와 이토의 ‘츠바키 문구점’이다. 마지막이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이 순간을 아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책이 주는 이미지라든지 느낌을 벌써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츠바키 문구점을 가장 뒤로, 가장 나중에 함께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던가보다.

 

책의 대한 첫 느낌은 부드러움이다. 덧붙이자면 소란스럽지 않은 차분함이라도 적고 싶다. 츠바키라는 작은 문구점을 운영하면서 주인공 포포(아메미야 하토코)는 선대의 뒤를 이어 대필 업을 이어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자신의 할머니를 선대, 라는 조금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어휘로 표현한다. 그녀는 왜 유독 선대라는 단어에 집착하는가. 이번 책에서 선대, 라는 단어가 지니는 의미는 아마도 그녀가 자신의 할머니에게서부터 느꼈던 일종의 건조하고 불편했던 감정들, 또는 어떤 막연하게 자리했던 ‘관계속의 거리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이들의 관계란 아주 끈끈할 정도로 돈독하거나 친근함이 넘치는 듯한 정감어린 그런 이상적인 관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포포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양육을 받고 성장한다. 그녀는 가업으로 이어져오는 대필가에 대해 회의와 함께, 전통만을 고수하며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하는 노모에게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치기도 했지만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과거의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이 작품은 사실상 인간과 인간의 다양한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조금 다른 데에 있다. 어떤 스토리를 이어가는 맥락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주변의 것들을 차분한 시선으로 작품 안에 담아내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츠바키 문구점에 대필을 의뢰하러 오는 인물들과 그들의 사연은 소설의 구성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받쳐가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안에 이들 의뢰인들의 사연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어 돌출되거나 어색한 기운 없이 적절하게 녹아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곤노스케라 불리던 원숭이의 죽음마저 소중하게 생각해 애도의 편지를 부탁하는 이의 마음은, 사실 원숭이의 죽음보다 원숭이를 기르던 이의 상실감을 위로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다. 그게 이상하게 책을 읽어가면서 더 잘 느끼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돌아가신 부친을 대신해 와병으로 누운 어머니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하는 어느 아들의 이야기, 관계를 끊고 싶어 찾아와 절연편지를 부탁하는 어느 누군가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모아 하나의 온전한 결정체를 만들어내듯 필기구를 고르고 종이와 우표를 세심하게 선정하며 고심과 고뇌의 시간을 통해 신중하게 글을 쓰는 주인공 포포의 모습은, 사소할지 모르나 그 자체만으로 삶을 대하는 인간의 진정성과 순수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불어 책을 통해 읽는 이는 화해와 용서를 통한 어우러짐을 느낄 수가 있다. 각각의 작은 이야기도 그렇고 주인공 자신의 이야기 안에서도 그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화해를 하게 된다. 그녀의 선택은 편지를 통해서 고인이 된 선대와 만나는 일이었다. 이 만남은 두 여성 할머니와 손녀 그들만의 화해다. 동시에 주인공이 자기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자신과의 화해라는 과정을 통해,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장이라는 진정한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가마쿠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기에 읽다보면 유명한 관광지와 이름 있는 가게들이 소개되어 있는 부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컴퓨터를 두드려 자주 등장하는 장소를 검색해가며 책을 읽었다. 포포가 되어, 포포와 함께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냈던 친구들이 되어 가마쿠라의 거리를 걷는 듯한 상상을 해본다. 계절마다 다시 만나는 벚꽃의 향연과 같은 자연이 주는 변화와 함께 일본의 전통 문화를 넌지시 경험해볼 수 있는 부분 또한 사소한 메리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을 이 말을 ‘삶’이라 지칭하더라. 사는 동안 누구나 상처를 받는다. 상처 앞에서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살라고 했던 말은 넌센스다. 그건 비겁하고 형식적인 위로의 한 자락일 뿐이다. 다만 상처를 받은 나를 위해 침잠하기를. 그리고 그렇게 다시 일어날 수 있을 때까지 내 자신을 기다려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 시간동안 딴은 이 책 ‘츠바키 문구점’을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완만하게 다가오는 부드러움이 지친 누군가의 일상을 살포시 건져 올려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니까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죠. 나도 줄곧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어느 날 깨달았답니다. 깨달았다고 할까, 딸이 가르쳐주었어요.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하기보다 지금 손에 남은 것을 소중히 하는 게 좋다는 걸요. 그리고....”p305

 

“누군가가 어부바를 해주었으면 다음에는 누군가를 어부바해해주면 되는 겁니다. 나도 아내가 많이 업어주었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당신을 업고 있는 거랍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해요.”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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