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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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사소한 아름다움

 

책장 파먹기 시리즈4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책은 오가와 이토의 ‘츠바키 문구점’이다. 마지막이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이 순간을 아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책이 주는 이미지라든지 느낌을 벌써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츠바키 문구점을 가장 뒤로, 가장 나중에 함께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던가보다.

 

책의 대한 첫 느낌은 부드러움이다. 덧붙이자면 소란스럽지 않은 차분함이라도 적고 싶다. 츠바키라는 작은 문구점을 운영하면서 주인공 포포(아메미야 하토코)는 선대의 뒤를 이어 대필 업을 이어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자신의 할머니를 선대, 라는 조금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어휘로 표현한다. 그녀는 왜 유독 선대라는 단어에 집착하는가. 이번 책에서 선대, 라는 단어가 지니는 의미는 아마도 그녀가 자신의 할머니에게서부터 느꼈던 일종의 건조하고 불편했던 감정들, 또는 어떤 막연하게 자리했던 ‘관계속의 거리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이들의 관계란 아주 끈끈할 정도로 돈독하거나 친근함이 넘치는 듯한 정감어린 그런 이상적인 관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포포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양육을 받고 성장한다. 그녀는 가업으로 이어져오는 대필가에 대해 회의와 함께, 전통만을 고수하며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하는 노모에게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치기도 했지만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과거의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이 작품은 사실상 인간과 인간의 다양한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조금 다른 데에 있다. 어떤 스토리를 이어가는 맥락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주변의 것들을 차분한 시선으로 작품 안에 담아내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츠바키 문구점에 대필을 의뢰하러 오는 인물들과 그들의 사연은 소설의 구성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받쳐가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안에 이들 의뢰인들의 사연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어 돌출되거나 어색한 기운 없이 적절하게 녹아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곤노스케라 불리던 원숭이의 죽음마저 소중하게 생각해 애도의 편지를 부탁하는 이의 마음은, 사실 원숭이의 죽음보다 원숭이를 기르던 이의 상실감을 위로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다. 그게 이상하게 책을 읽어가면서 더 잘 느끼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돌아가신 부친을 대신해 와병으로 누운 어머니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하는 어느 아들의 이야기, 관계를 끊고 싶어 찾아와 절연편지를 부탁하는 어느 누군가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모아 하나의 온전한 결정체를 만들어내듯 필기구를 고르고 종이와 우표를 세심하게 선정하며 고심과 고뇌의 시간을 통해 신중하게 글을 쓰는 주인공 포포의 모습은, 사소할지 모르나 그 자체만으로 삶을 대하는 인간의 진정성과 순수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불어 책을 통해 읽는 이는 화해와 용서를 통한 어우러짐을 느낄 수가 있다. 각각의 작은 이야기도 그렇고 주인공 자신의 이야기 안에서도 그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화해를 하게 된다. 그녀의 선택은 편지를 통해서 고인이 된 선대와 만나는 일이었다. 이 만남은 두 여성 할머니와 손녀 그들만의 화해다. 동시에 주인공이 자기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자신과의 화해라는 과정을 통해,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장이라는 진정한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가마쿠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기에 읽다보면 유명한 관광지와 이름 있는 가게들이 소개되어 있는 부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컴퓨터를 두드려 자주 등장하는 장소를 검색해가며 책을 읽었다. 포포가 되어, 포포와 함께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냈던 친구들이 되어 가마쿠라의 거리를 걷는 듯한 상상을 해본다. 계절마다 다시 만나는 벚꽃의 향연과 같은 자연이 주는 변화와 함께 일본의 전통 문화를 넌지시 경험해볼 수 있는 부분 또한 사소한 메리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을 이 말을 ‘삶’이라 지칭하더라. 사는 동안 누구나 상처를 받는다. 상처 앞에서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살라고 했던 말은 넌센스다. 그건 비겁하고 형식적인 위로의 한 자락일 뿐이다. 다만 상처를 받은 나를 위해 침잠하기를. 그리고 그렇게 다시 일어날 수 있을 때까지 내 자신을 기다려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 시간동안 딴은 이 책 ‘츠바키 문구점’을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완만하게 다가오는 부드러움이 지친 누군가의 일상을 살포시 건져 올려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니까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죠. 나도 줄곧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어느 날 깨달았답니다. 깨달았다고 할까, 딸이 가르쳐주었어요.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하기보다 지금 손에 남은 것을 소중히 하는 게 좋다는 걸요. 그리고....”p305

 

“누군가가 어부바를 해주었으면 다음에는 누군가를 어부바해해주면 되는 겁니다. 나도 아내가 많이 업어주었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당신을 업고 있는 거랍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해요.”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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