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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입니다 - 어느 문화재 복원가가 들려주는 유물의 말들
신은주 지음 / 앤의서재 / 2024년 2월
평점 :
나는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입니다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이 시선을 끈다. 과연 시간은 복원 가능한 것일까. 시간을 되돌리는 것과 시간을 복원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책날개에 저자의 대한 설명이 실렸다. 잠깐 들여다보고 가자. 저자 신은주는 박물관문화재관리학을 전공하고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근무했다고 했으며, 이번 책 ‘나는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입니다’ 이전에 책을 낸 이력이 있다.
박물관이 아무리 많은 이들에게 열려있는 공간이라고 해도, 그곳에 들어가는 일은 늘 조심스러운 마음과 함께 알지 못하는 묵직한 위압감을 안고 갔었던 것 같다. 하물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어땠을까. 가끔 문화재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던 박물관 직원들이 생각났었다. 저자 신은주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일까.
박물관에 마지막으로 가본 적이 언제였더라. 지난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 중학교 졸업을 앞둔 둘째 아이와 현장학습 체험으로 한성 백제 박물관에 다녀온 게 가장 최근의 기록인가 싶다. 기억을 소급해보면 아이들이 어려서는 늘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회를 찾아다니곤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아이들의 볼멘 투정들이 들려와 그 것도 그만두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무렵 박물관의 매력을 아이들은 알아채지 못했던가보다.
저자는 박물관에서 보존과학 일을 하는 듯했다. 보존과학이라는 표현도 무척이나 생경하게 다가오지만 저자의 책을 접하면서 결론을 내리자면, 결국 유물을 과학적으로 접근해 보존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녀의 책은 보존과학자로서 유물을 대하는 태도와 그 의미 내지는 가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테면 보통의 직업정신 그 너머의 진중한 의미를 부여하는 느낌 같은 것이었을까.
책은 단순하게 유물 발굴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책의 의미를 넓게 확장시키는 근거가 된다고 본다. 그녀가 유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과학적인 동시에 철학적이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유물을 들여다보면서 보다 깊이 있는 인간의 철학을 논한다는 것. 책 안에는 곳곳에 그녀만의 철학이 그녀만의 사유가 담겨져 있다.
-유물도 자신의 찬란했던 과거의 모습이 아니라 녹슬고 더 이상 쓸모없어진 자신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건이든 인간이든 세상에 태어나 한 시기를 누린 모든 것들에게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그 대자연 앞에 물건도 사람도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존재일 뿐이다.-p46
과학적 접근측면에서 보는 보존과학자의 모습과 함께 유물을 보존하는 과정과 유물을 통해 들여다보는 개인의 성찰과 철학이 이번 책의 가치를 발하는가 싶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잊힐 권리를 빼앗긴 권리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자리를 잡는다. 유물이라 해서 늘 박물관에만 있어야 하는 법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유물을 상하게만 하는 녹이 되려 일정부분 유물을 지켜내는 작용을 한다는 이야기도 그렇고 수장고와 예담고 이야기도 그렇고 새로이 접하게 되는 부분이 적지 않았던 책이다.
다음에 언제라도 다시 박물관에 가게 되면, 저자의 이야기를 상기하게 되지 않을까. 그 순간만큼은 겸손하게 유물과 대화를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이자 문화재 보존과학자 신은주의 바람을 이곳에 적어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힘, 그 마음을 잊지 않기를”, 유물을 복원하듯, 나를 둘러싼 관계에서도 내 일상에서도 내 삶에서도-p38.
-박물관과 예담고가 물건들의 공동묘지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미래를 꿈꾸는 동반자로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p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