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아주 서서히 변화하고,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들레의 집은 모든 것이 자유롭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고,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떠났다가 다시 오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물론 자립해서 떠나면 제일 좋은 일이다. 일하라고 잔소리하지도 않고 필요하면 수도원 수준의 용돈도 드린다. 자신이 원하면 자취할 수도 있고, 민들레 국수집에 와서 식사할 수도 있다. 민들레의 집은 ‘홀로서기’ 할 때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려준다.
국수집 손님들에게 방을 얻어 자기만의 공간에서 따로 살게 해주고, 철이 들어 스스로 잘 살아보겠다고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아주 서서히 변화하고,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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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과 다이아몬드 일화를 처음 들은 건 1990년대 말로 기억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세워지기 전입니다.

어렴풋이 ‘나에게 온 것은 나만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어디론가 흘러가야 하는 몫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기준은 희미했던 것 같습니다.

IMF 때였습니다. 집에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삼십대 초중반 즈음 되어 보이고 공부도 했을 것 같은 분이 어렵게 말을 건네왔습니다. 밥을 못 먹었다고. 그때는 상대가 참 하기 어려운 말을 건넸다고 생각해 5000원을 드렸습니다. 아마도 당시라면 따뜻한 가정식 백반 한 그릇은 사먹을 수 있는 금액이지 않았을까 하는데, 돈을 받은 그분은 머뭇거리더니 손에 들고 있던 영어 잡지 한 권을 주고는 뒤돌아 갔습니다. 뭐라도 갚고 싶은 마음이었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거리로 나온지 며칠이 안 된 상태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을 볼 때 모든 것을 뛰어넘는 본질을 보고 싶습니다.

도로시 데이는 기증받은 물건은 아낌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는데, 하루는 한 멋쟁이 여성이 다이아몬드를 내놓고 가자 이를 환대의 집에 항상 식사하러 오는 노파에게 주었다. 그 광경을 보고 직원이 화들짝 놀라 투덜대듯 말했다.

"그 반지를 금은방에 가져가 팔았으면 저 노파의 일 년 집세로 쓸 수 있었을 텐데, 뭐 하러 통째로 주셨어요?"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답했다.

"노인 역시 인격을 가진 사람이니까 그 반지를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겠지요. 그걸 팔아서 일 년치 방값을 내든가, 바하마로 여행을 떠나든가, 아니면 그 멋쟁이 부인처럼 손가락에 끼고 다니든가 말이에요."

그리고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의 직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부자들만 즐기라고 다이아몬드를 창조하셨다고 생각하세요?"

민들레 국수집도 무료 급식소가 아닌 환대의 집이다. 곤궁에 처해 있고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국수집을 찾아오시는 분은 누구라도 ‘하느님이 보내주신 고귀한 분’으로 여기고 대접하는 곳이다. 도로시 데이가 환대의 집을 찾는 모든 분을 환영하며 고귀한 인격으로 대접하고, 따뜻한 식사와 편안한 쉴 곳을 제공했던 것처럼 말이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네 집에 밥 잡수시러 오시는 분들이 자네의 하느님이여. 그런 줄 알고 진짜 하느님이 오신 것처럼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해야 혀. 장사 안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은 일절 할 필요 없어. 하느님처럼 섬기면 하느님들이 알아서 다 먹여주신다 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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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시절, 하버드대학교 교지 <크림슨 Crimson>과의 인터뷰에서 (갓 출범한 더페이스북닷컴 TheFacebook.com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크는 실제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뭘 하라고 지시하거나, 언제까지 하라고 정해주지 않는 것, 그게 내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사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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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대통령이 직접 연락해오자, 마크는 멕시코의 한 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 직후의 모습을 담은 영상에 대해 차단 결정을 내렸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친구’ 조코위 대통령을 상대로 쿠데타를 위협하는 정치적 발언을 차단했다. 한국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삭제를 요구한 정치적 발언을 차단해주었다.

이 결정들 대부분은 우리가 공개하던 커뮤니티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마크는 우리가 수년에 걸쳐 다듬어온 절차를 그때그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판단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어떤 형태의 책임성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거의 모든 사례에서 그의 결정이 페이스북의 사업적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다는 점을 알아차리기가 어렵지 않았다. 정부를 달래서 성장을 이어가려는 방향성이 드러났다는 얘기다.
우리가 수년 동안 끝없이 다투며 다듬은 모든 가이드라인이 무의미해진 듯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부 요청과 관련된 어려운 결정에서 새로이 세워진 기준은 단 하나. 즉 우리가 응하지 않으면 페이스북이 차단될 위험이 있느냐 여부였다. 그저 노골적인 힘의 문제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 무렵에 커뮤니티 규정을 위반하지도 않은 게시물을 직접 내리라고 지시하는 한편, 마크는 공개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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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애널리티카, 브렉시트에 대한 배경이 나올까요?

캠브리지 애널리티카 쪽에서 먼저 페이스북의 가능성을 알아본거라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페이스북에서 조직적으로 먼저 ‘정치 광고 영업팀’을 만들고 사업을 했군요.

빠져나갈 수 없는 족쇄를 만드는 것. 서로가 공생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 그래서 보험을 드는 것... 어떻게보면 전혀 새로울 게 없는 고전적인 전략일 수 있는 행보를 당시에 새바람을 일으킨 줄 알았던 페이스북에서 추진하고 있었다고 하니... 지루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방치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운에 기대어 운이 없는 사람들은 할 수 없는 불공정한 방식으로 승부를 한다는 것은, 정말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 신생 기업만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합니다.

마른의 자리를 맡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조엘은 정치인들을 광고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치 광고 영업팀으 꾸리기 시작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정치인들도 그 대상이었다. 정치인들이 선거 승리를 위해 페이스북에 의존하게 되면, 페이스북에 해가 되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질 거라는 계산이었다. 페이스북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면, 누구도 그 거위를 죽이려 들지 않을 테니까. 그런 황금알에 중독이 되게 만들자는 논리였다. 또한 조엘은 마른과 달리 정책팀이 수익을 창출하길 원했다. 그의 관점에서 페이스북은 기업이었고, 정책팀 역시 수익 창출에 기여해야 했다. 내부에서 비용 발생 부서로 인식되길 원치 않았던 것이다. 정치 광고는 그런 인식을 바꿀 수 있는 방편이었다. 그리고 선거는 가장 큰 기회였다. 갓 졸업한 하버드 출신 인재들이 워싱턴DC 사무실로 몰려와 정치인과 선거 캠프를 상대로 광고를 팔기 시작했다.

(...)

브라질에서 페이스북은 이미 선거 광고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수백만 달러의 벌금과 플랫폼 차단 명려에 직면해 있었다. 멕시코에서는 정치 광고 제한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조사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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