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붙이면 오가사와라 씨는 "사람은 죽을 때를 고른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손자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죽는다든지, 가장 좋아하는 요양보호사가 지켜볼 때 숨이 끊어지는, 정말 실화일까 싶은 에피소드를 수없이 들었다. "어떻게든 장남이 올 때까지 버텨달라"는 가족의 강력한 요구에 무리하게 연명 처치를 하는 일도 있다. 오가사와라 씨는 그동안 혼자 사는 사람을 수없이 간호했지만 혼자서 죽는 사례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오가사와라 클리닉에서 혼자 사는 사람을 간호한 사례가 적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제는 사례가 많이 쌓여서 세 자릿수에 달하는 것을 보고 "선생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는 사람도 있긴 하죠?"라고 물으니 "그렇죠, 이제 다양해요"라고 했다. 아무렴 그렇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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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자치 단체가 지킴 네트워크 구축에 힘을 쏟는 이유는 고독사라는 불명예스러운 보도를 피하고 싶어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또한 이 지킴 네트워크에는 함정도 있다. 지방 자치 단체는 1인 고령 가구를 대상으로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고독사는 2건 모두 1인 가구가 아니었다. 하나는 고령의 자매가 함께 실내에서 죽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고령의 어머니와 노년의 장애인 아들이 함께 죽어 있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먼저 쓰러지자 돌봄을 받지 못한 아들이 병고 끝에 죽은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행정의 지킴 대상은 혼자 사는 고령자뿐이었다. 위 사례는 ‘가족이 있으면 안심’이라는 맹점을 찌른 경우다. 가족이 있어도 가족 전체가 지역에서 고립된 경우가 종종 있다. 정의상 1인 가구의 재택사에 해당하지 않는 사례는 과연 고독사 통계에 집계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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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 «경계의 린네»를 읽다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도 즐겁습니다. 삶의 비밀을 하나 알아버린 듯하기 때문입니다.

이승을 떠도는 영혼들과 악령들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제령해 윤회할 수 있도록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영혼들은 대부분 풀지 못한 한 가지 숙제, 즉 미련을 갖고 있습니다. 할머니 덕분에 숙제를 떠안은 린네는 가난하게 지내서 돈에 민감하지만, 영혼들의 이야기를 듣고 윤회할 수 있도록 돌려보내는 데는 진심입니다.

문득, 살면서도 풀지 못한 숙제나 갖고 있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면, 돌려보내지 못한 영혼을 잔뜩 짊어지고 사는 걸지 모르겠습니다.

정화된 영혼들이 돌아갈 때는 대개 사라집니다. 그렇게 마음 속 응어리들이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어서어서 꺼내 볕에 말리고, 이야기를 잘 듣고 달래서 뽀송뽀송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마음이 무거우면 어깨도 무거워집니다. 툴툴 털어버리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푹 잠들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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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한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고립된 인생을 살았다. 고립된 인생이 고독사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살아 있는 동안 고립되지 않는다면 고독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싱글 여성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싱글 여성은 싱글 남성과 달리 친구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 부분도 참 이해가 안 되는데, 주부는 사회인이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회사원은 사회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정작 오랫동안 사회인으로 살아온 남성이 익힌 ‘사회성’은 왜 노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말 알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남성은 ‘회사인’이지 ‘사회인’이 아니라고도 한다. 그런 거라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게다가 남성의 사회성은 전부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해서 이해에서 벗어난 인간관계는 맺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덧붙이자면 나는 남성을 논리적인 생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웃음). 그들(의 대부분)은 논리가 아니라 이해관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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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얇은 노란책이 눈에 들어와 펼칩니다.

얇지만 읽기가 쉬운 책은 아닙니다. 아마도 요즘 이런 분야의 책을 드물게 읽었기 때문일겁니다.

올초에 하스미 시케히코가 추천한 일본 영화감독의 영화와 관객과의 대화에 갈 후 있는 표를 구했는데,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을 읽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임재철 선생님의 글은 남자답습니다. 글을 읽다보면 글을 쓴 사람에 대해 전해질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살아계셨다면, 아래 문장을 왜 쓰셨는지 이야기해 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역시 자유롭고 재미있게 지내셨구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선생님과 나눴던 지적인 대화가 그립습니다.

“(물론 어느 것이 본편이고 어느 것이 자매편/예고편인지는 온전히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이 책은 원래 3년 전쯤에 출간하기로 했는데, 이런저런 차질이 생겨 이제야 나오게 되었다. 그사이에 내가 앞에서 ‘본편’이라고 부른 «범용한 예술가의 초상»이 국내에 선을 보이게 되어, 본편은 보여주지 않고 ‘예고편’만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된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어느 것이 본편이고 어느 것이 자매편/예고편인지는 온전히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오랜 기간 고생한 김현주 님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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