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책»을 알게 된 후 가끔 김유태 기자의 기사를 찾아봅니다.

한때 전작주의를 지향했던 알랭 드 보통 작가의 모르는 책에 대한 기사에, 좋은 글귀가 있어 몇 개 메모해둡니다.

«슬픔이 주는 기쁨».
”살아남은 자의 슬픔“ 같은 맥락일까요?
슬픔에 잠긴 후 비로소 알게 되는 과거의 기쁨일지,
슬픔으로 자각하게 된 현실의 감사함일지,
같은 슬픔을 나눌 수 있다는 반가움일지...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짐작하지 않고 책을 읽는 거겠지요.

직접 알지 못하지만 좋은 글을 쓴 작가의 추천은 늘 반갑습니다.
https://m.mk.co.kr/news/culture/11400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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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책의 가치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비슷한 감정이나 사람들의 묘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이들을 훨씬 더 잘 묘사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하던 것’이라고 느끼며 무릎을 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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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경우 글로 쓴 이야기는 사건의 거죽만 훑고 지나간다. 하지만 묘사하지 못한 것, 덧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는다. 그 사라져버린 것이 하루의 진실의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보는 것을 나열한 자료는 예술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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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작가»에 실려 있는 파울 첼란의 시에 관한 글을 보면서 전영애 교수님이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여백서원에 가서 만나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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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을 쓰면서 누리는 편리함. 그러나 절대적으로 얼마나 편리해졌는지는 모릅니다.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 평소에 들여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은행 계좌에서 송금하기, 예약하기 등은 확실히 편리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낀 시간을 우리는 정말 의미있게 사용하고 있을까요?

빈둥거리고 멍때리는 시간도 필요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알아보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청소, 빨래, 식사 등의 시간도 필요합니다. 세상과 만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크게 모바일이 편리하다고, 내 시간을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모바일에 걸었던 기대를 AI에게 걸고 있습니다.

가끔 이 책이 생각납니다. 분명 회색 신사들에게 시간을 맡긴 사람들도 자신의 인생을 잘 살고 싶었기 때문이겠지요. 이 시대의 시간 도둑은 무엇인지, 나는 어디에 시간을 아끼고 어디에 시간을 버리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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