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험은 왜 호흡이 길 수가 없는가? 교사들도 그렇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강사나 교수들이 모두 고민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호흡이 길수록 평가자의 공정성, 아니 공공성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평가자의 공정성이라는 잣대는 평가자의 개인역량에 초점을 맞춥니다. 반면 평가자의 공공성에 대한 신뢰는 제도적 신뢰입니다. 평가를 하는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그 제도에 의해 위임받은 사람이라면 공공적 기준을 가지고 평가할 것이라고 믿는 거에요. 제도의 공공성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평가자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가 없어요. 아쉽게도 우리는 평가자를 보증하는 제도에 대한 신뢰가 없어요. 그 사람이 공공적 기준을 가지고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걸 믿을 수 있겠어요. 이런 점에서 보면, 관건은 공정성을 넘어서는 공공성에 대한 신뢰입니다. 평가자의 공공성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공정한 평가가 가능한 방식으로 문제가 출제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래서는 단답형과 선다형 문제를 넘어서는 방식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터러시의 지표가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학생들이 몇 점을 받았냐, 이것이 되면 안 돼요. 더 중요한 건, 집에 리터러시와 관련된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가, 가족과 대화를 통해 생각을 펼쳐낼 기회를 갖는가,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동네 도서관이 있는가, 도서관에 가면 내가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줄 사서가 있는가, 나는 사서 선생님과 친해서 말을 나눠볼 수 있는가, 또 내가 소셜미디어를 한다면 거기서 책을 읽는 사람이나 책에 대해 얘기를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가, 읽고 쓰기와 숙고하기가 일상에 얼마나 녹아 있는가, 의미 있는 리터러시 활동에 쓸 수 있는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등이에요. 이런 것들이 리터러시에서 훨씬 더 중요한 지표인데, 점수만 보는 거죠. 내가 독해 지문을 읽고 문제를 몇 개나 맞히는가, 이건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진짜 중요한 건 그 아래에 있는 걸 보는 거에요. 문해력의 발달 단계에서 한국사회는 이제야 도서관과 책 읽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독서모임과 토론문화의 확산 같은 빙산의 밑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봐야죠.
사두고 몇 번 펼쳤다가 덮었던 책을 다시 폈습니다. 그런데, 무척 흥미롭습니다.* 책이 가벼워서 좋습니다. ㅎㅎ
* 한 가지 아쉬운 점은 12월 3일 밤, 국회 본희의장에 국회의원이 아닌 한동훈 전 대표를 적극 들어오게 했던 박주민 국회의원에 대해 언급이 되지 않은 점입니다. 박주민 국회의원의 인터뷰에서 들었는데,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매우 고마운 일일 것 같습니다.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웠던 지난 12월 3일의 계엄에 대해 더 이해하고 싶어 읽고 있습니다. 한동훈 전 대표의 입장에서 어떻게 정리가 됐을지. 대한민국 역사상 매우 특이한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이 전개되는 과정들에 대해 이해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