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건 초조, 더더욱 쓸모없는 건 후회 초조는 있는 죄를 늘리고 후회는 새 죄를 만들어낸다.""황금을 쌓아두려 하지 마라. 지금 당장 잔돈을 내밀어라." "길은 시작되었다. 여행을 마저 하라. 근심 걱정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당신을 영원히 내동댕이쳐 균형을 잃게 할 뿐."
물론 누구라도 좋은, 반듯한 자기주장은 마음속에 있어야 되겠지만, 그걸 굳이 나서서 젊은 사람에게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일단은 조금 물러서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특히 아끼는 사람일수록 조금 거리를 두고, 조금씩 오래오래 아끼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배반을 겪는 것이고, 상실의 아픔을 겪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브래디 미카코의 책도 재미있게 읽었고, 다른 책들은 읽어보려고 챙겨둔 책들입니다. ‘다다서재’, 출판사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2019년에 생겼다고 합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책들이어서 반갑습니다.
우리에게는 ‘3.5퍼센트’라는 수치가 있다. 무슨 수치인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하버드대학의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 Erica Chenoweth의 연구진에 따르면 ‘3.5퍼센트’의 사람들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들고일어나 진심으로 저항하면 반드시 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자연적 ‘한계’는 단순한 객관적 수치 같은 것이 아니다. 한계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어떤 사회를 바라는지에 따라 설정되는 ‘사회관행적’인 것이다. 경제적•사회적•윤리적 결단이 이뤄지는 정치적 과정의 산물로 한계가 설정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계 설정을 전문가와 정치가에게 맡겨두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일부에게 맡긴다면, 그들은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명목’으로 오로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세계관만 반영한 세계를 만들어버릴 것이다. 노드하우스가 경제 성장을 기후 변화보다 중시했고, 그 의견이 파리협정의 목표 수치에 반영되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