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인 논의에서 안 먹힌 후에 뒤에서 하는
그 다음 멘트도 정해져있습니다.

˝고집이 너무 세. (같이 일 못하겠어.)˝ :)

한국형 의사결정의 핵심은 결국 ‘생난리‘가 아닐까. 논리적 토론은 실로 희귀하다. 많은 이가 생난리를 쳐서 자기 뜻을 관철한다. 살면서 배웠겠지. 이게 지름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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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멈추어 서서 자문할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을 감내하고 있나, 그리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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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형식이 낯선 것인지...
읽는 중인데 아직은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람은 모두 변하니 글도 변하겠지요.
그래도 작가의 글은 맥락도 중요했는데
짧은 글로는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노란 종이에 인쇄된 발문을 보아도
잘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정중한 양장본도 드립에 해당하는 건가요?


* ‘드립‘론도 다소 낯설어서
언제 이 책의 글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 최근 컬럼으로 책을 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틀에 박힌 생각이 들었습니다.

- 202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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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 혹은 허영심.

진솔한 마음도 중요하고 귀하지만
가끔은 자기 자신을 북돋우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희망을 갖고
절망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요.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갖는 게 아니다.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서 희망을 갖는다. 절망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절망하지 않는다. 누구도 희망을 뺏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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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를 보면, 불행 속을 걷는 어린 주인공이 쓰러진 나무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왜 이 나무를 좋아하는지 알아? 이 나무는 쓰러졌는데도 계속 자라거든."
산책길에서 쓰러진 나무를 볼 때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쓰러질 때마다, 이 대사가 떠오른다.


202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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