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단어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한다.

- 본문에서 발췌.
* 몰랐던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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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다’는 천 년 동안 실제로 넉넉하게 가져본 적이 없었던 탓에 갖게 된, 사물에 대한 태도이다. 우리는 자원을 지혜롭게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나도 어려서부터 밥그릇에 밥 한 톨 남겨선 안 된다고 교육받았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 원문 <2030 에너지전쟁>, 본문에서 재인용된 부분 발췌.

* 한국과 일본에는 ‘아깝다’는 단어가 있고, 뜻도 같다.
미국에는 아깝다는 단어가 없다.
‘우리말로 ‘아깝다’는 값어치를 기준으로 할 때 소중하지 않고 어찌 보면 하찮은 것에도 쓴다. 예컨대 우리는 남은 국물이 아까워 밥을 볶아 먹는다’(본문에서 발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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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새는 몇 종류 안 되서,
몸짓이 귀엽고 재바른 참새정도 아는 것 같다.

책 뒷편에 실린 새의 사진에는,
언젠가 책의 표지에서 본 마코 앵무새 만큼이나
아름다운 깃털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도 알아야 할 단어가 많으나,
그나마도 단어로만 아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지.

주제와 무관하게 새의 아름다움,
깃털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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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움직임은 어떤 결과를 낳습니다. 이보다 매력적이고 두려운 문장이 없습니다. 저의 행동이 변화를 일으킨다면, 거기에서는 희망이 생깁니다. 에른스트 블로흐의 문장은 이렇게 고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움직이는 한 자신이 소망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여기에는 조금의 의심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실현을 저는 목격할 수 없다면 어떨까요? 저는 그저 가장 깊은 밤의 한가운데에서 죽어가야 할 운명이라면? 희망이 유예된 그 삶을 저는 어떻게 견뎌야 할까요? 지체되는 시간이 자기 인생이 된다고 할 때, 인간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요? 그런 의문이 저를 소설로 이끌었습니다.

-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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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대한 집단적 무지 혹은 망각을 기반으로 축적된 부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부의 축적을 위해 한국 사회는 사회적 원인에서 비롯한 고통이라 할지라도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시켜 관리한다. (...) 그러나 딜레마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의 고통이 개인적 차원에 머무는 한, 지금까지의 관행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적폐는 적폐를 청산할 수 없고 국가는 국가를 개조할 수 없다. 타인의 고통을 향한 연대에서 나온 책임감만이 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014년 5월 19일>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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