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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체코 1900년대 중반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농담으로 인생이 바뀐 루드빅의 이야기. 정신교육을 이유로 군부대에서 단체생활을 할 때 만난 사랑 루치에와의 기억과 한참이 지난 후 일방적 재회한 순간, 믿고 있던 친구 제마넥이 공개적으로 루드빅을 적으로 몰아세운 기억과 일방적 복수의 순간. 줄거리를 요약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역사에 속한 한 인간의 길고 긴 미련과 하소연의 이야기이다.
정답이 정해진 사회에서 그 정답을 맹신하는 사람들 속에서 답을 아직 못찾은 열등생은 얼마나 외롭고 초라한가. 지금 우리는 어떤 것을 정답으로 정해놓은 세상에 살고 있으며 그 정답을 얼마간 유효할까. 정답과 함께하지 못하는자 농담도 하지 말지어다.
-발췌
슬픔이여 절대 내 이름과 연관되지 않을지어다- 푸칙
그리고, 천천히, 그 노래는, 마치 천둥 소리를 내는 거대한 번데기를 벗어나 나비가 날아 오르듯, 광장의 그 엄청난 소음을 뚫고 올라갔다.
나는 내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인생의 라이프모티프가 다시 들려왔다, 멀리서 나의 젊음이 내게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에게로 내가 무너져가고 있었다.
나는 미소지을 때 조금 조심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곧 애 안에서 (시대 정신에 맞추어) 내가 되어야만 하고 되고 싶어하는 나의 모습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 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벌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얼굴은 완벽하게 고요 했고 아무 동요도 없었다. 칠판 앞에 나와서 점수도 칭찬도 아무 상관 없다는 듯 그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겸손하게 발표하는데 만족하는 학생의 표정 같았다.
오 거짓된 말들의 난행, 나는 침묵을 믿는다
아름다움보다 강한, 모든 것보다 강한 침묵
오 소리 없이 서로 이해하는 이들의 축제
사랑이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결정적 계기들이 언제나 극적인 사건들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며, 처음에는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던 상황들이 그런 계기가 되는 수가 종종 있는 법이다.
진정한 종교는 한 시대를 일시적인 권력의 혜택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그 신화는 날이 갈수록 신화의 원인이 되었던 주요 인물들로부터 점점 더 분리 되어 버린다. 그 인물들은 사실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닌데, 복수의 신화 속에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