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20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클래식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으로 읽은 더클래식 세계 문학 컬렉션. 반디앤루니스 앞 매대에서 엄청 싸게 팔길래 들어본 것들로 네 권 집어왔는데 오빠에게 들어보니 아마추어 학생 번역가들 것들을 짜깁기해서 복불복으로 번역이 엉망일 수 있다고. 네 권 중 첫번째 수레바퀴 아래서는 아마도 운이 좋았던 것 같아. 그 사실을 알고 의심의 눈으로 살펴도 만족스러운 번역이었어. 한번의 오타와 한번의 실수(아들이 적혀있어야 할 자리에 아버지라고 쓰여있었어)를 찾았지만 그 정도는 괜찮아. 3300원짜리 책 읽으면서 너무 많이 바라면 내가 도둑놈이지. 물론 어제 5000원 짜리 로또에 20억의 꿈을 꾸었지만......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모두 너무 익숙하지. 근데 헤밍웨이처럼 아는 게 전혀 없어. 중학교 때 아마 집에 수레바퀴 아래서가 있길래 읽었었어. 근데 기억이 안나네. 재밌게 읽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읽고 난 지금 느끼는 건 이래저래 제목 들어본 유명 문학은 다 읽어야겠다 싶어. 실패하는 경우가 아예 없어. 더 좋고 적당히 좋고 차이이지 좋다 모두.

시골마을에서 보기 힘든 수재 한스의 성장기.

목사, 신앙, 신학원, 그리스어, 히브리어. 지금과 다른 성공의 모습과 기준, 조건들이 나오지만 지금 우리와 다를 것 하나 없는 빡빡한 시대 속 여린 자아의 혼란을 보는데 되게 어른의 눈으로 한스를 안타깝게 보게
되더라. 어른이 제시하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가다가 불행해져버린 아이. 진짜 행복이 뭔지 확인을 하기도 전에 상처받은 청춘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어. 아마 내 인생에 자식은 없겠지만, 자식이 있다면 옆에 앉혀놓고 이 책을 같이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단 생각이 처음부터 끝까지 불쑥불쑥 들었어. ˝이 부분에서 한스가 어때보여? 행복해보여 슬퍼보여?˝ 중심이 없이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다간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몰라. 내 기준 내 판단 그리고 내가 기꺼이 감수해야할 리스크여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데. 본인의 삶을 살아보지도 못하는 건 너무 가혹해.

감정 변화를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변화의 계기가
된 사건이라든지 생각 변화에 영향을 주는 인물이라든지 보면서 모든 상황이 납득 가능했어. 이해되고 공감되고, 그게 아니어도 그럴 수 있겠다 짐작은 되고. 그래서 더더욱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게 와닿았어. 본인이야기가 아니면 이렇게 쓸 수가 없어. 사소한 경험에 폭풍처럼 닥치는 변화. 아 놀랐겠다. 아 혼란스러웠겠다. 슬펐겠다 두려웠겠다.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 때 겪는 자잘한 사건들이 그 당시엔 얼마나 큰 타격으로 왔었던지 큰 고민으로 날 울렸는지. 그 것들이 결국 지금의 나에 미친 영향들을 생각하게 되더라.

발췌

한스는 독특한 친구와의 우정이 자신을 지치게 하고순수한 영혼을 병들게 한가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하지만 우울한 하일러를 보면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또한 자신이 이 친구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정겨움과 자랑스러운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중략)한스에게 있어서 새롭게 다가온 세계와 친구에 대한 존경심은 떼어 낼 수 없는 감정으로 자리잡았다.

그 누구도 불안과 절망에 싸여 허우적거리는 한스의 영혼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아무도 학교와 아버지, 몇몇 선생님들의 탐욕스러운 명예심이 연약한 소년의 영혼을 무참히 짓밟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한스는 처음으로 노동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보잘것없는 자기 존재가 삶의 거대한 리듬에 섞여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마지막 발췌가 사실 가장 좋은데 스포 때문에 옮겨적지는 못한다. 내리 주의깊게 한스를 바라보는 기분으로 걱정하며 읽어내리다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어머`했다.

다음 책은. 조금 어려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시간도 좀 더 걸리고. 좀 더 성의있는 문장의. 뭐가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특별하게 느껴지는 책. 첫 번째는 오빠한테 빌려서 읽은 책이고. 두 번째는 조르바랑 나랑 어느정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들어서. 매력투성인 캐릭터까진 바라지 않으니 너무 비호감이거나 괴짜만 아니었음 좋겠다 조마조마하면서 읽었던 것 같아.
결론은 매우매력적인 캐릭터였고 나와는 본질부터 다른 캐릭터였고.

책 속에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만나던 젊은 지식인이 막연하게 `진짜 경험`을 하기로해. 때마침 조르바라는 논리없고 거침
없고 순수한 사내를 만나게 되고 친구이자 동업자이자 고용주와 직원, 멘티와 멘토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눈 대화의
기록이야. 물론 중간 중간 사건이 있지만 이를테면 조르바의 약혼도 있고 `나`와 과부의 이야기도 있고 캐이블을 설치하고
광산에서 일을하는 등등이 있지만 크게 중요하지 않고 조르바의 행복론이 핵심이야.

조르바가 했던 말들 중 그의 지론을 쉽게 느낄 수 있는 몇 문장을 모아보자면

˝왜요! 왜요!˝ 못마땅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

˝안 믿지요. 아무것도 안 믿어요. 몇 번이나 얘기해야 알아 듣겠소?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기분 좋으신 모양이군요 두목. 하지만 비가 오고 있어요 혼자 좀 가면 안 돼요?˝
˝이 좋은 기분을 잡치고 싶지 않아요. 함께 가면 잡칠 염려가 없지요. 자, 갑시다.˝
그가 웃었다.
˝나 같은 것도 필요할 때가 있다니 고맙지 뭡니까. 그럼 갑시다.˝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우리는 승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계명이 몇 개더라? 열 개? 스무 개? 쉰 개? 백 개? 백 개가 되어 봐야 내가 다 깨뜨렸을걸! 하지만 하느님이 있다고 해봐야.
때가 되어 내가 그 앞에 서야한다고 해도 하나도 겁나지 않아요. 내 보기엔, 그게 별로 중요할 것 같지가 않다 이어예요.
하느님이 미쳤다고 지렁이 앞에 앉아 지렁이가 한 짓을 꼬치꼬치 캔답니까?˝

내가 자주 하는 말과 조르바의 주장이 비슷한 부분이 매우 많은 건 사실이야. 실제 절반 정도는 진심까지 똑같더라고.
그런데 다른 부분은 뭐냐면 나는 자유롭게 사는 편이고 살고 싶어하지만 상식 밖으로 자유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어느정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들의 평가가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고 가끔을 내 자존감을 거기서 찾기도해. 조르바는
아니야 아무도 그를 안 봐도 되고 그는 혼자이든 여럿이든 그의 결정은 같을꺼야. 그 때 꼴리는대로 그 때 맞다고 판단한
대로. 그러니까 나는 워너비 조르바이고 조르바는 뼛속까지 진짜이고.

대신 나와 조르바가 비슷하게 느껴진 부분은 뭐일꺼냐면. 난 보수적인 교육을 받은 자유로운 애라서 항상 자유롭고 싶지만
자유로운 액션을 취하는데에 나름의 합리화 과정이 필요하거든. 그 때 자주 쓰는 논리들이 있고, 그 논리가 조르바의 것과
비슷하더라고. 예로들어 내가 지구의 작은 먼지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 심각하고 그리 열심일 필요가 없다고 말을해.
실제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머리로 상기시기지 않으면 가끔씩 날 특별하다 여기고 남과 다르다고 자만하는 모순이 있어.
금방까지 먼지랬으면서 뭐라도 되고 싶어해.

신에 대한 생각은 1000% 일치해. 신이 있건 없건 중요하지 않을 뿐더러, 있다 하더라도 내가 뭐라고 그리 신경쓰시겠어.
벌하기엔 난 너무 자잘한 잘못을 했을 뿐이고 하나하나 나 끄집어 혼나기에는 세상에 너무 사람이 많아. 적당한 점수가
매겨져서 불구덩이에 빠지든 운 좋게 눈치보며 살살 천당으로 빠지든 하지 않을까.

아! 발췌 세번째 부분 말이야. 저건 좀 신기해. 난 누군가 나를 좋아하거나 필요로하면 그게 그렇게 행복하더라. 나 같은게
누군가한텐 웃음이 될 수 있고 일탈이 될 수 있고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게 나한테는 엄청나게 큰 의미야. 저 말이 너무 와닿아. ˝나 같은 것도 필요할 때가 있다니 고맙지 뭡니까˝

이제는 그 외 인상적인 부분들 발췌

바다는 한숨을 쉬며 조개를 핥았고 반딧불은 아랫배에다 에로틱한 꼬마 등불을 켜고 있었다. 밤의 머리카락은 이슬로 축축했다.

나는 그와 보낼 몇 달이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것임을 예감했다. 요모조모 따져 봐도 나는 아무래도 행복을 헐값으로 사는 기분이었다.

인생이란 오르탕스 부인처럼 단순하고, 살아 볼 만한 것이며, 진부하지만 느긋하고 너그러운 것인 듯했다.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지금 한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우리는 시작에 머물러 있을 뿐, 충분히 먹은 것도 마신 것도 사랑한 것도, 아직 충분히 살아 본 것도 아닌 상태였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화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 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 (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라고 부르는)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 외부적인 파멸은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데 겁나 웃긴 부분 발췌

˝나는 올리브와 빵을 먹고 물만 마시겠소. 하지만 요셉은 악마올시다. 요셉은 여러분들처럼 고기를 먹습니다.
닭고기도 좋아합지요(오, 이놈의 망령). 요셉은 여러분 술통에서 포도주도 좀 마실 겁니다!˝
그러고는 닭고기로 쳐들어왔다.
˝......처먹어라, 이 망령아!˝ 그는 닭고기를 큼지막하게 뜯어 입속에다 처넣으며 중얼거렸다. ˝....처먹어!˝

​나와 함께 온 반란군 상놈 중에 요르가란 놈이 있었습니다. 아 글쎄 이놈까지 울지 않겠어요.
˝왜 우느냐, 요르가, 이 개새끼야. 너 같은 돼지 새끼가 뭣하러 다 우니?˝

ㅋㅋㅋ 그냥 웃겨 써 놓고 계속 보는데 계속 웃겨. 웃기기 위해선 나와 요셉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려줘야겠구나. 악마
요셉 핑계 대고 고기에 포도주 마시는 것 세상 뚱보들한테 알려주고 싶은 스킬이라서 웃기고 요르가 돼지 새끼는 그냥
저 욕이 웃겨 ㅋㅋㅋ 이 개새끼야 너같은 돼지 새끼가 뭣하러(이 부분이 포인트인 듯) 다 우니 아 웃기네... 왜 웃긴지는
모르겠는데 웃기네.

어쨌든 읽길 참 잘했다. 어떤 느낌이냐면. 내가 이상적이라 생각했던 삶의 자세에 확신을 불어넣어주는 책이야. 좀 더 배째라 이렇게 살다 가련다 할 수 있게 든든한 지원자가 생긴 느낌이랄까. 가끔 꼴리는데 주저할 때 구름풍선으로 조르바가 나타나서 겁나 날 부추길 것 같아. 재밌다. 그리고 영광이다 이 캐릭터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니. 겁나 거짓부렁이여 나는. 점차 진짜가 되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스타에서 책 검색을 하다가 표지와 빨리 읽힌다는 감상이 마음에 들어서 읽게됐어. 가능하면 고전 위주로 다독하고 싶은 욕심이 많은 시기라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분홍 표지에 빨리 읽힌다니 이거다 했지. 결론은 빨리 읽히는 책 맞고요 재미있고요 근데 특별하진 않고요.

영국 여자가 주인공인데 얼굴도 예쁘고 인기도 많고 어머니의 욕심까지 더해져서 몸값 띄워 좋은 신랑감한테 시집가는게 목표인 그냥 철딱서니 아가씨가 눈이 높은 바람에 불안해진 나머지 특별할 것 없는 세균학자랑 결혼해서 남편의 일 때문에 홍콩으로 터를 잡게돼. 거기서 유부남과 연인사이가 되고 남편에게 걸려. 남편이 콜레라가 유행인 홍콩 어느 지역에 같이 가든지 이혼하든지 하라그러는데 여자가 거길 따라가. 콜레라가 덮친 지역에서 어린 아이들과 환자들을 돌보는 수녀들을 알게되고 본인의 개인적인 삶이 얼마나 사소하고 가치없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부끄러움을 가져. 외도 발각 후 대화도 없고 대체 왜 같이 사는 지 모르는 남편과 지내며 외롭고 심란한 터에 신부님의 영향으로 자원봉사를 하게돼. 거기서 보람을 찾고 죄책감을 씻으며 잘 지내고 있던 터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남편이 물어봐. 그 아이가 내 아이가 맞냐고. 모르겠다고 답해.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이 콜레라로 죽어. 영국으로 돌아온 키티는 완전히 달라져있어.

여자 캐릭터 때문인지 민음사 번역체 때문인지 보바리부인이랑 되게 비슷한 인상을 받았어. 1부 외도 2부 콜레라 같은 느낌으로 앞에 반은 되게 사랑이야기 여자 감정이야기 남녀이야기로 재밌다가 콜레라 유행지역으로 옮기면서 신앙, 비극, 경건, 깨달음 같은 훨씬 더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게 인상적이었어. 그리고 앞이 더 재밌고 술술 읽혔지만 뒤로 가니 발췌하고 싶은 문장들이 무더기로 나오더라고. 엄청 좋아할 책이 아닌데도 문장이 대단하다 특별히 느낀 책도 아닌데도 이상하게 발췌가 역대급으로 많네. 죽은 남편의 이야기는 마음이 아팠어. 오늘 점심시간에 그 부분 읽었는데 입에서 어머! 어머....소리내며 읽었어. 여자주인공 키티보다 훨씬 호기심과 호감이 가는 캐릭터. 마음 아픈 캐릭터더라.

발췌시작

나는 이 작품 때문에 작가들에게 곧잘 들이닥치는 어려움들을 몇 가지 겪었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이름을 평범한 성인 레인으로 불렀는데, 그만 홍콩에 실제로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이 날 고소했고 그 결과 내 소설이 연재된 잡지의 발행인들에게 250파운드의 벌금형이 내려지는 바람에 나는 그 이름을 페인으로 바꾸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영국에서는 수상을 무대 위게 올리기도 하고 소설의 인물로 삼기도 하며 ....그들은 이런 일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찮은 관식을 잠시 차지한 자들이 스스로를 표적으로 간주하다니 참 희한한 노릇이었다.
-저자의 말에 있던 부분. 저 부분을 굳이 이야기하고 빈정대는 부분이 재미있으면서도 서머싯 몸 대인배는 아니겠구나 싶었어.

그녀가 아프기라도 하면 누구도 그보다 친절하고 사려 깊을 순 없었다. 그가 그녀를 위해 뭔가를 힘들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그녀가 그에게 호의를 베푸는 꼴이었다.
-사랑을 받는 자가 사랑을 하는 자에게 해줄 수 있는 친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니까요.˝ 그녀가 되풀이했다. ˝들었소.˝그는 애정어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적어도 빈정거릴 의도는 없었군. 다만 할 말이 마땅치 않아서 대꾸를 안 한 것뿐이었어. 하지만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안 한다면 인류는 머지않아 언어 사용 능력을 잃지 않겠는가. 키티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나는 당신에 대한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기뻐하는 것에 나도 기뻐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무지하지 않다는 걸, 천박하지 않다는 걸, 남의 험담을 일삼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면 한 편의 코미디야. 당신이 지성에 얼마나 겁을 먹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당신이 아는 다른 남자들처럼 당신에게 바보처럼 부이려고 별짓을 다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내가 그녀를 정말 떠나면, 결단코, 그녀가 자살할 거라는 데 추호도 의심이 없어요. 나에 대한 원망 때문이 아니라 그녀는 나 없이는 살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등장하는 다른 커플의 이야기입니다.

오직 갈망하기를 그칠 때 네가 그것을 소유하리라

˝마음을 얻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자신이 사랑을 주고 싶은 대상처럼 자신을 만들면 되지요.˝
-백번 맞는 말. 인기 없는 사람들이 알면 좋을 말이다.

그녀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 아주 심오한 감동을 받았지만 그들의 삶을 이끄는 신앙에는 무덤덤했다. 언제고 자신이 신앙의 열정에 사로잡히는 때가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신앙을 다른 단어로 바꿔도 다 그럴싸하게 각자들에게 의미있는 문장일 것 같아. 나같은 경우는 육아 ㅋㅋㅋㅋㅋㅋ

그녀가 타운센드와의 관계를 후회스럽고 충격적으로 여기면서도 뼈저린 회개가 아닌 잊어버려야 할 대상으로 여긴 것은 아마도 그녀 안의 우둔함을 탓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끔찍하지만큼 분하지만 당시의 그녀로서는 저항할 수 없는 사건이었기에 지나치게 큰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었다.
-타운센드가 불륜남. 지나간 일에 격분할 필요도 없고 왜 그랬나 다시 하나하나 살필 필요도 없는 것은. 그 때로 돌아가도 아마 나는 같은 실수를 하고 있을거기 때문에.

미래가 이처럼 불투명하다면 그것을 결코 볼 수 없는 것이 그녀의 운명인지 모른다.

P258,259
˝내 사랑˝ 그녀는 그에게 그 단어를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 때 뭔가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서 자신을 억제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의 야윈 뺨에 두 줄기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마음아파. 남편 월터 임종 직전

한 줄기 연기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인간의 생명처럼.

˝그는 그저 죽은 동물이었어요. 멈춰버린 기계와 너무 흡사했죠. 그게 너무나 두려워요. 그것이 단지 기계일 뿐이라면 그 모든 고통과 가슴의 상처와 불행은 얼마나 부질없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스타에서 모르는 사람의 발췌를 보고 ˝이거다!˝하고 바로 주문했어. 아직 못읽은 `연인`과 함께. 발췌 부분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지금 당장 무작위로 펼쳐 나오는 아무 부분이나 발췌되어 있었어도 읽고 싶었을거야. 처음 읽어보는 희곡인데 처음엔 잘막한 대화로 이뤄진 책 한권을 읽을 자신이 없었어. 그렇다할 부연 설명도 적고. 그런데 읽다보니까 피식거리게 되더라고.

얇은 책안에 내용은 고도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는 1막 / 고도를 또다시 기다리며 보내는 2막. 고도는 만나지 못한 채 끝이나.

장면도 단 한 곳이고 등장인물도 에스트라공 블라디미르 포조 럭키 소년 딱 다섯명. 그중 80%가 에스트라공이랑 블라디미르

저능아들 같은 대화가 오고 가는데 단순하고 짤막하고 의미없어서 묘하게 귀엽게 느끼면서 읽다가 문득 아 웃을 이야기가 아닐지도 몰라 하는 묘한 기분이 들어. 무엇보다 심오할지도 모르겠다는 약간의 겁이 난달까. 글쎄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읽은 사람은 비슷하게 느끼게 될 것 같아.

다 읽고나서도 3막 4막이 쭉 이어져야 할 것 같은 ... 마무리는 커녕 시작도 제대로 안된 기분이 드는데 다 읽긴 읽었구나.. 무슨 감상을 써야하지? 하며 점심시간 후 이를 닦던 중에 갑자기 생각이 났어. 사실 등장인물 둘, 쟤들이 하는 대화가 말장난에 불과한데.. 말장난으로 책 한권을 완성했고 내가 읽은건 말장난 뿐이잖아. 그런데. 보통의 책 보통의 대화, 보통의 생각과 고민이 말장난보다 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봐야 말 뿐인데 생각 뿐인데. 그게 구체적이든 심오하든 진지하든간에 그건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고. 나는 요즘 시시콜콜 카톡과 대표 뒷땅이 제일 재밌는데. 그것보다 나한테 의미있는 대화랄 게 있을까 당장?

노벨 문학상 받은 사람이고. 이 공연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하고. 여러 사람에게 오랜 시간동안 여러 각도로 해석이 되어오고 있는 작품인데. 그걸 읽고 말장난이 최고야!˝라는 내 감상은 책 한권을 허투루 읽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읽는 동안 즐거웠어.


발췌 시작!

에스트라공: 이런! 이상한데, 먹을수록 맛이 없어진단 말야.
블라디미르: 나는 정반대다.
에스트라공: 정반대라니?
블라디미르: 난 먹을수록 맛이 난단 말이다.
에스트라공: (한참 생각하더니) 그게 바로 정반대라는 거냐?
블라디미르: 기본 문제지.
에스트라공: 성격 문제다.

에스트라공: 금화 한 개라도 주시면 기꺼이 받아들이죠
블라디미르: 우린 거지가 아니야
에스트라공: 단돈 5프랑이라도......
블라디미르: 닥쳐!

에스트라공: 어이! 그게 춤이야? (럭키의 동작을 흉내낸다) 그 정도는 나도 추겠다.
(흉내내다가 넘어질 뻔한다. 다시 앉는다) 연습만 조금 하면
블라디미르: 피곤한 거야

블라디미르: 자기 몸 하나 지킬 줄 모르니까 그렇지. 내가 있었으면 맞도록 내버려두진 않았을 텐데.
에스트라공: 너도 별수없었을 걸.
블라디미르: 왜?
에스트라공: 열 놈이나 됐는걸.
블라디미르: 그게 아니라. 내가 있었으면 네가 얻어맞을 짓은 못하게 했을 거란 말이다.

에스트라공: 난 원래 그렇다. 금방 잊어버리거나 평생 안 잊어버리거나 둘 중의 하나다.

블라디미르: 무슨 얘길 하는 걸까?
에스트라공: 제 인생의 얘기겠지
블라디미르: 살았던 것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지?
에스트라공: 그 얘기를 꼭 해야겠다는 거지.
블라디미르: 죽었으면 그만일 텐데.
에스트라공: 그걸로는 부족한 거야.

블라디미르: 너 혹시 미친 거 아니냐?
에스트라공: (좀 진정되어) 머리가 돌았었다. (그는 창피한 듯 고개를 숙인다) 미안하다!


두 가지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한 것은 그의 뛰어난 언어 능력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그는 그 이유를 <모국어보다 습득해서 배운 언어가 스타일 없이 쓸 수 있어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우들 자신도 자신들이 공연하는 작품에 대한 평가를 그때까지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 그들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베게트에게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베게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취소 저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12
오스카 와일드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수레바퀴 아래서` 등등 더클래식 문학 시리즈 살 때 같이 샀던 책. 내용도 몰랐고 제목도 들어만 봤는데 7월 하이라이트 팩은 `행복의 정복`이어서 그거 시작하기 전에 그냥 재미없음 덮어버려도 미련없을 관심없는 책을 잠깐 읽자 싶어서 펼쳤는데. 웬걸.... 이거 엄청 재밌잖아...내가 생각하는 `소설은 이래야지` 하는 모범답안같은 소설이었어. 번역이 너무 별로여서 문장 씹는 재미가 덜했음에도 불구하고 즐기면서 읽었어. 스토리가 주여서 다른 출판사 것으로 다시 읽을 일은 아마 없겠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더클래식.... 어쨌든 나의 7월 첫 책이 되었고 지금은 `행복의 정복`과 `인간실격`을 동시에 읽게 됐다.

화가 바질이 그려준 본인의 초상화 속의 모습을 보고 본인의 미모가 평생 변함 없이 유지되고 초상화가 대신 늙었으면 좋겠다고 바란 도리언 그레이의 바람이 현실이 되고. 쾌락과 이기심, 오만함으로 가득한 나날이 초상화 속 도리언 그레이의 얼굴에 투영돼. 변함없는 미모를 갖게된 대신 사람들의 본인의 흉측한 내면을 초상화를 통해 알게될까봐 불안함에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 (화가 바질의 친구이자 도리언 그레이의 멘토가 된 헨리라는 등장인물의 영향이 엄청나게 큰데 막상 줄거리에 쓰자니 애매한 부분이 있네. 신기하다.)

우선 가장 좋았던 건 상상력. 대단하게 기발한 상상력이라기보단. 주변의 것(소재)을 통해 일반적인 삶의 자세에 대한 태도를 고민하게끔 만드는 이야기가 과할 것도 평범할 것도 없이 딱 좋았어. 물론 책 속 `보통`의 태도가 현재 우리 삶의 `보통`보다 훨씬 타이트하고 보수적이어서 소설 속의 고민이 쓸데없다거나 필요이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때도 있지만 저 때는 그랬을 것이고. 정도의 차이이지 현재와도 크게 다를 것 없고.

나 사실 지금 너무 졸려서 머릿속 생각이 글로 잘 정리가 안돼. 느낌만 있고 글에는 없네. 흐흐 그래도 하루라도 더 지나기 전에 쓰려고.

내가 도리언 그레이의 삶을 살게 되었다면 고민도 공포도 없이 잘 누리다 갔을텐데. 왜 저렇게 고민하고 왜 저렇게 두려워하나 싶었어.
나는 아마도 `헨리`과에 가까운 것 같은데. 뻔뻔하고 합리적이고.. 논리와 태도가 냉소적이고 합리적이어서 대부분은 내가 공감하고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쪽이었어. 근데 헨리가 싫은 점은 본인의 생각을 정답이라고 확정하고 남을 가르치려 드는 것. 그리고 감히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 아 그런 거 되게 건방지고 오만하지 않나. 본인만 그렇게 살면되지 왜 이래라 저래라 맞다 틀리다 선생질이야.

발췌가 있긴 한데 문장이 구려서 옮기기도 싫었다. 암튼 나름의 핵심적인 문장들

나는 사람을 엄격하게 구별해. 잘생긴 사람은 친구로, 성격 좋은 사람은 아는 사람으로, 똑똑한 사람들은 적으로 대하지.

`사색의 날들 속에 어리는 형상의 꿈`이 말을 누가 했었지? 나는 다 잊었지만 지금 도리언 그레이가 바로 그런 존재야
-말이냐 방구냐. 해석이 안되는 건 내가 멍청해서냐 번역이 이상해서냐. 저 부분이 중요한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저런 부분 굉장히 많았음. 꼭 읽어내고 싶은데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는거... 더클래식 엿!

유혹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그 유혹에 굴복하는 거예요. 유혹에 저항하려 들면, 당신 영혼은 스스로 금지한 것에 대한 갈망과 기이하고 비합법적인 것들에 대한 욕망으로 병이 들 겁니다.

당신이 내 사랑을 죽인 거야. 예전에는 당신이 내 상상력을 자극했는데 지금은 호기심도 자극하지 못하는군.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당신을 사랑한 건 당신이 뛰어나고, 재능과 지성이 있기 때문이고, 당신이 위대한 시인의 꿈을 실현하고 예술이라는 그림자에 형태와 실체를 만들기 때문인데 당신이 모든 걸 망쳐 놨어. 정말 천박하고 어리석군! 내가 그런 사람을 사랑했다니 미친 거야! 이제 당신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자기 인생의 구경꾼이 되면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삶에 관한 어떤 이론도 삶 자체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