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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평점 :
인스타에서 책 검색을 하다가 표지와 빨리 읽힌다는 감상이 마음에 들어서 읽게됐어. 가능하면 고전 위주로 다독하고 싶은 욕심이 많은 시기라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분홍 표지에 빨리 읽힌다니 이거다 했지. 결론은 빨리 읽히는 책 맞고요 재미있고요 근데 특별하진 않고요.
영국 여자가 주인공인데 얼굴도 예쁘고 인기도 많고 어머니의 욕심까지 더해져서 몸값 띄워 좋은 신랑감한테 시집가는게 목표인 그냥 철딱서니 아가씨가 눈이 높은 바람에 불안해진 나머지 특별할 것 없는 세균학자랑 결혼해서 남편의 일 때문에 홍콩으로 터를 잡게돼. 거기서 유부남과 연인사이가 되고 남편에게 걸려. 남편이 콜레라가 유행인 홍콩 어느 지역에 같이 가든지 이혼하든지 하라그러는데 여자가 거길 따라가. 콜레라가 덮친 지역에서 어린 아이들과 환자들을 돌보는 수녀들을 알게되고 본인의 개인적인 삶이 얼마나 사소하고 가치없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부끄러움을 가져. 외도 발각 후 대화도 없고 대체 왜 같이 사는 지 모르는 남편과 지내며 외롭고 심란한 터에 신부님의 영향으로 자원봉사를 하게돼. 거기서 보람을 찾고 죄책감을 씻으며 잘 지내고 있던 터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남편이 물어봐. 그 아이가 내 아이가 맞냐고. 모르겠다고 답해.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이 콜레라로 죽어. 영국으로 돌아온 키티는 완전히 달라져있어.
여자 캐릭터 때문인지 민음사 번역체 때문인지 보바리부인이랑 되게 비슷한 인상을 받았어. 1부 외도 2부 콜레라 같은 느낌으로 앞에 반은 되게 사랑이야기 여자 감정이야기 남녀이야기로 재밌다가 콜레라 유행지역으로 옮기면서 신앙, 비극, 경건, 깨달음 같은 훨씬 더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게 인상적이었어. 그리고 앞이 더 재밌고 술술 읽혔지만 뒤로 가니 발췌하고 싶은 문장들이 무더기로 나오더라고. 엄청 좋아할 책이 아닌데도 문장이 대단하다 특별히 느낀 책도 아닌데도 이상하게 발췌가 역대급으로 많네. 죽은 남편의 이야기는 마음이 아팠어. 오늘 점심시간에 그 부분 읽었는데 입에서 어머! 어머....소리내며 읽었어. 여자주인공 키티보다 훨씬 호기심과 호감이 가는 캐릭터. 마음 아픈 캐릭터더라.
발췌시작
나는 이 작품 때문에 작가들에게 곧잘 들이닥치는 어려움들을 몇 가지 겪었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이름을 평범한 성인 레인으로 불렀는데, 그만 홍콩에 실제로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이 날 고소했고 그 결과 내 소설이 연재된 잡지의 발행인들에게 250파운드의 벌금형이 내려지는 바람에 나는 그 이름을 페인으로 바꾸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영국에서는 수상을 무대 위게 올리기도 하고 소설의 인물로 삼기도 하며 ....그들은 이런 일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찮은 관식을 잠시 차지한 자들이 스스로를 표적으로 간주하다니 참 희한한 노릇이었다.
-저자의 말에 있던 부분. 저 부분을 굳이 이야기하고 빈정대는 부분이 재미있으면서도 서머싯 몸 대인배는 아니겠구나 싶었어.
그녀가 아프기라도 하면 누구도 그보다 친절하고 사려 깊을 순 없었다. 그가 그녀를 위해 뭔가를 힘들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그녀가 그에게 호의를 베푸는 꼴이었다.
-사랑을 받는 자가 사랑을 하는 자에게 해줄 수 있는 친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니까요.˝ 그녀가 되풀이했다. ˝들었소.˝그는 애정어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적어도 빈정거릴 의도는 없었군. 다만 할 말이 마땅치 않아서 대꾸를 안 한 것뿐이었어. 하지만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안 한다면 인류는 머지않아 언어 사용 능력을 잃지 않겠는가. 키티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나는 당신에 대한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기뻐하는 것에 나도 기뻐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무지하지 않다는 걸, 천박하지 않다는 걸, 남의 험담을 일삼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면 한 편의 코미디야. 당신이 지성에 얼마나 겁을 먹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당신이 아는 다른 남자들처럼 당신에게 바보처럼 부이려고 별짓을 다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내가 그녀를 정말 떠나면, 결단코, 그녀가 자살할 거라는 데 추호도 의심이 없어요. 나에 대한 원망 때문이 아니라 그녀는 나 없이는 살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등장하는 다른 커플의 이야기입니다.
오직 갈망하기를 그칠 때 네가 그것을 소유하리라
˝마음을 얻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자신이 사랑을 주고 싶은 대상처럼 자신을 만들면 되지요.˝
-백번 맞는 말. 인기 없는 사람들이 알면 좋을 말이다.
그녀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 아주 심오한 감동을 받았지만 그들의 삶을 이끄는 신앙에는 무덤덤했다. 언제고 자신이 신앙의 열정에 사로잡히는 때가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신앙을 다른 단어로 바꿔도 다 그럴싸하게 각자들에게 의미있는 문장일 것 같아. 나같은 경우는 육아 ㅋㅋㅋㅋㅋㅋ
그녀가 타운센드와의 관계를 후회스럽고 충격적으로 여기면서도 뼈저린 회개가 아닌 잊어버려야 할 대상으로 여긴 것은 아마도 그녀 안의 우둔함을 탓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끔찍하지만큼 분하지만 당시의 그녀로서는 저항할 수 없는 사건이었기에 지나치게 큰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었다.
-타운센드가 불륜남. 지나간 일에 격분할 필요도 없고 왜 그랬나 다시 하나하나 살필 필요도 없는 것은. 그 때로 돌아가도 아마 나는 같은 실수를 하고 있을거기 때문에.
미래가 이처럼 불투명하다면 그것을 결코 볼 수 없는 것이 그녀의 운명인지 모른다.
P258,259
˝내 사랑˝ 그녀는 그에게 그 단어를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 때 뭔가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서 자신을 억제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의 야윈 뺨에 두 줄기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마음아파. 남편 월터 임종 직전
한 줄기 연기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인간의 생명처럼.
˝그는 그저 죽은 동물이었어요. 멈춰버린 기계와 너무 흡사했죠. 그게 너무나 두려워요. 그것이 단지 기계일 뿐이라면 그 모든 고통과 가슴의 상처와 불행은 얼마나 부질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