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에서 모르는 사람의 발췌를 보고 ˝이거다!˝하고 바로 주문했어. 아직 못읽은 `연인`과 함께. 발췌 부분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지금 당장 무작위로 펼쳐 나오는 아무 부분이나 발췌되어 있었어도 읽고 싶었을거야. 처음 읽어보는 희곡인데 처음엔 잘막한 대화로 이뤄진 책 한권을 읽을 자신이 없었어. 그렇다할 부연 설명도 적고. 그런데 읽다보니까 피식거리게 되더라고. 얇은 책안에 내용은 고도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는 1막 / 고도를 또다시 기다리며 보내는 2막. 고도는 만나지 못한 채 끝이나. 장면도 단 한 곳이고 등장인물도 에스트라공 블라디미르 포조 럭키 소년 딱 다섯명. 그중 80%가 에스트라공이랑 블라디미르저능아들 같은 대화가 오고 가는데 단순하고 짤막하고 의미없어서 묘하게 귀엽게 느끼면서 읽다가 문득 아 웃을 이야기가 아닐지도 몰라 하는 묘한 기분이 들어. 무엇보다 심오할지도 모르겠다는 약간의 겁이 난달까. 글쎄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읽은 사람은 비슷하게 느끼게 될 것 같아.다 읽고나서도 3막 4막이 쭉 이어져야 할 것 같은 ... 마무리는 커녕 시작도 제대로 안된 기분이 드는데 다 읽긴 읽었구나.. 무슨 감상을 써야하지? 하며 점심시간 후 이를 닦던 중에 갑자기 생각이 났어. 사실 등장인물 둘, 쟤들이 하는 대화가 말장난에 불과한데.. 말장난으로 책 한권을 완성했고 내가 읽은건 말장난 뿐이잖아. 그런데. 보통의 책 보통의 대화, 보통의 생각과 고민이 말장난보다 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봐야 말 뿐인데 생각 뿐인데. 그게 구체적이든 심오하든 진지하든간에 그건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고. 나는 요즘 시시콜콜 카톡과 대표 뒷땅이 제일 재밌는데. 그것보다 나한테 의미있는 대화랄 게 있을까 당장?노벨 문학상 받은 사람이고. 이 공연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하고. 여러 사람에게 오랜 시간동안 여러 각도로 해석이 되어오고 있는 작품인데. 그걸 읽고 말장난이 최고야!˝라는 내 감상은 책 한권을 허투루 읽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읽는 동안 즐거웠어. 발췌 시작! 에스트라공: 이런! 이상한데, 먹을수록 맛이 없어진단 말야.블라디미르: 나는 정반대다.에스트라공: 정반대라니? 블라디미르: 난 먹을수록 맛이 난단 말이다.에스트라공: (한참 생각하더니) 그게 바로 정반대라는 거냐? 블라디미르: 기본 문제지.에스트라공: 성격 문제다. 에스트라공: 금화 한 개라도 주시면 기꺼이 받아들이죠 블라디미르: 우린 거지가 아니야에스트라공: 단돈 5프랑이라도...... 블라디미르: 닥쳐! 에스트라공: 어이! 그게 춤이야? (럭키의 동작을 흉내낸다) 그 정도는 나도 추겠다. (흉내내다가 넘어질 뻔한다. 다시 앉는다) 연습만 조금 하면 블라디미르: 피곤한 거야 블라디미르: 자기 몸 하나 지킬 줄 모르니까 그렇지. 내가 있었으면 맞도록 내버려두진 않았을 텐데.에스트라공: 너도 별수없었을 걸. 블라디미르: 왜?에스트라공: 열 놈이나 됐는걸.블라디미르: 그게 아니라. 내가 있었으면 네가 얻어맞을 짓은 못하게 했을 거란 말이다. 에스트라공: 난 원래 그렇다. 금방 잊어버리거나 평생 안 잊어버리거나 둘 중의 하나다. 블라디미르: 무슨 얘길 하는 걸까?에스트라공: 제 인생의 얘기겠지블라디미르: 살았던 것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지?에스트라공: 그 얘기를 꼭 해야겠다는 거지. 블라디미르: 죽었으면 그만일 텐데.에스트라공: 그걸로는 부족한 거야. 블라디미르: 너 혹시 미친 거 아니냐?에스트라공: (좀 진정되어) 머리가 돌았었다. (그는 창피한 듯 고개를 숙인다) 미안하다! 두 가지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한 것은 그의 뛰어난 언어 능력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그는 그 이유를 <모국어보다 습득해서 배운 언어가 스타일 없이 쓸 수 있어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배우들 자신도 자신들이 공연하는 작품에 대한 평가를 그때까지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 그들의 솔직한 고백이었다.베게트에게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베게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취소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