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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사람의 책을 추천받고 그가 읽던 책을 빌려보기까지 한 건 마지막이 언제였는 지 기억도 안 날만큼 클래식한 소통이었다. 제목은 수도 없이 들었지만 대부분의 문학이 그렇듯, 내겐 귀로만 익숙한 느낌. 사회적인 평가나 감상은 커녕 어떤 식의 소설, 이를테면 로맨스, 전쟁, 정치, 자전 뭐 아주 손톱만큼의 정보도 갖지 못한 채 접하게 된 책이었다. 파수꾼 이야기겠거니 할 정도.
번역이 어찌되었든 우선 문장 호흡이 짧아서 참 좋았다. 집중력이 부족해서인 지 어설픈 포장과 군더더기에 질려버린 건지 요즘은 과하게 성의 있는 묘사가 붙은 문장들을 읽으면 거북한 느낌이 들더라고. 공감을 강요하고 의도를 억지로 전달하려는 느낌.
간단하다. 방황하는 한 청소년의 독백으로 채워진 성장소설이다. 줄거리라기 보단 이야기. 소설이라기보단 일기. 그 간단한 설정 속에서 캐릭터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문제아 홀든 콜필드의 입에서 사회가 평가되고 해석되고 있고 비판당하고 있다. 그리고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시작부터 끝까지 콜필드는 어른(29,여)의 머리와 심장을 아주 무심하게 툭.툭. 건드린다.
`보통 사람`이라 분류되는 사람들의 우스운 겉치레, 편견, 획일적인 행동과 반응을 심심하고 따분한 것은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은 모습이라고 비난한다. 그리고 그 비난은 소설에서 언급되는 수많은 인물들을 관통해 나에게까지 도달한다. 참 신기해. 그저 불만 많은 아이의 불평인데 흘려들을 수가 없어. 그렇다고 허를 찌를만큼 분석적이지도 실랄하지도 않는데 읽는 이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어느 것보다 공격적이야.
호밀밭의 파수꾼을 통해 무언가를 느껴야한다고 마음을 먹고 읽는다면 아마 끝까지 벙하며 아니, 어디서 무엇을 느껴야할까 싶을 거야. 그보다는 적절한 유머가 섞인 그의 불평을 엿들으며 구경하며 때로는 공감하며 내가 욕하는 듯한 대리만족을 느끼고 같이 낄낄대다가 책을 덮는 순간 내가 그저 콜필드 본인이 되어있음을 느끼는 거지. 갸우뚱할 만큼 읽고난 후 놀라움이 큰 작품이었어. 약간 과장될 지 모르지만 앞으로 읽을 다른 소설의 어떤 캐릭터에도 이렇게 애정과 공감을 느낄 수는 없지 있을까 싶을 정도.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이 책은 반드시 원서로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세상에, 일분이라도 이 애 앞에서는 방심해선 안 된다.그 애를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틀림없이 미친 사람일 것이다.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을 때가 펜시를다닐 때였다나......................우리 장래에 대한 충고를 늘어 놓더군. 그렇다고 그가 나쁜 사람이었다는 얘기는 아니야. 진짜 나쁜 사람도 아니었을 거고 말이야. 하지만 나쁜 사람만이사람 기분을 잡쳐놓는 건 아니니까. 착한 사람도 다른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말이지.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놓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