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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ㅣ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평점 :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배경으로 전쟁에서 살아남은 두 전우의 이야기다. 정작 군대에서는 모르는 사이였으나 전쟁이 끝나는 그 무렵 마지막 전투에서 위험에 처한 알베르를 본능적으로 구하려 몸을 던진 에두와르. 포탄은 에두와르의 얼굴에서 터졌고 이목구비에 눈을 제외하곤 모두가 일그러졌다. 끝난 전쟁 시작된 고통. 본인 때문에 평생 흉물스런 모습으로 고통받으며 살아갈 에두와르에게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미안함과 감사를 표하는 알베르지만 그 역시 전쟁 후 여파로 집도 절도 무엇도 없이 근근하게 버티며 고통스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에두와르는 참전용사와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를 제작한다는 유령회사를 설립해 정부와 국민을 등쳐먹자는 사기 아이디어를 내고 알베르도 고민을하다 함께 일을 저지르기로 한다.
사실 전쟁 배경의 소설에 흥미를 느껴본 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다. 근데 이 소설은 전쟁이 없었다면 시작되지 못할 이야기이지만 그 이후의 사건들에 전쟁이라는 비극은 쏙 빠지고 미래가 안보이는 불쌍한 청년들과 그런 것들을 알리도, 관심도 없는 부르주아의 극명한 대비 그리고 지금이랑 다를 바 없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정책과 이벤트들 때문에 옛 이야기가 아닌 듯 느껴졌다. 항상 소설을 읽으며 감탄하는 것은 ˝아, 그때나 지금이나!˝. 피에르 르메트르는 처음 접한 작가인데 글을 어렵게 쓰지 않는 점도 좋았고 나오는 시시콜콜 인물들이 지금 내 주변에도 찾으려면 찾을 수 있는 흔한 비호감들이라 읽는 중 캐릭터를 떠올리기 수월했다.
다른 사람도 이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스트예프스키 죄와벌이 계속 떠올랐다. 주인공이면서 주체적이지 못한 주인공 알베르의 본인의 결정 없이 사건 속으로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도 그렇고 노답 시대상도 그렇고 독자로서 심각한 상황에 비해 같이 쫄리기보단 관망하게 만드는 묘한 거리감도 그랬다.
이 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에두와르의 아버지와 누이, 그리고 매형은 이들까지 설명하면 내 능력 부족으로 요약이 안될 것 같아 위 줄거리에 내 마음대로 ‘숨김‘했지만 시작부터 얽히고 설킨 그 관계들이 마지막 장 까지도 억지 없이 연계되는 것을 보며 희열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소장해도 좋을 책을 읽은 것 같다. 아마 스트레이트로 읽었다면 사흘 정도 걸렸을 거 같은데 사흘의 행복을 만이천원으로 살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감사하고 놀랍다.
마무리까지 환상적인 그저 재밌는 소설이었다.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발췌
알베르는 ˝다시 돌아올게˝라고 덧붙였다. 마치 이런 말이 필요하기라도 한 듯이. 오래된 커플들은 잘 들어 보면 깊은 의미가 들어 있는 말들을, 그 의미를 의식치 못한 채로 습관적으로 나누는 법이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승리는 힘이 넘치는 쪽이 아니라 무기력한 쪽에게 돌아갈 거였다.
아냐, 앙리, 자기는 잘못 이해하고 있어. 내가 관심이 없는 것은 자기의 사업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체야.
셔츠 한쪽 자락이 바지 위로 삐져나와 있었다. 어떤 남자라도 단숨에 상거지로 둔갑시켜 버리는 종류의 디테일이었다.
물론 돈으로 가득한 트렁크라는 요인도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인 것은 기묘하게도 파란 글씨로 <일등 선실>이라고 표시된 배표들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그 모든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