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자서전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36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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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참 오랜만에 책 리뷰를 쓰네. 지금 동시에 읽고 있는 두 권이 더 있는데 마음 먹고 끝장 안내면 질질 흐지부지 완독 못할 것 같아서 겨우 끝장냈다. 상편에서 속도는 느렸지만 흥미를 크게 느끼면서 좋은 문장들도 많이 찾으며 읽었는데 하편에서는 속도가 확 떨어지고 지루하기까지 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상편에서 카잔차키스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릴적 교육을 통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믿고 있던 것에 대해 스스로 판단을 하게되면서 겪는 의심과 혼란을 보여줬다고 한다면, 하편에서는 기존의 보편적으로 믿어지는 것을 깨고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새로운 진리를 재정립하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나와. 그래서 상편에서 읽을 때는 지금의 나와 같이 `그렇지 그렇지! 곧이 곧대로 들을 일이 아니라니깐?`했던 것이 하편을 읽으면서는 `거참 좋으면 믿고 별로면 버리지 왜 저렇게 괴로워하고 집착하며 끝장을 내려하는거냐. 참 피곤하게 산다.`로 바껴서 하편 그러니까 카잔차키스의 서른즈음부터 공감이 어려웠어. 그러니 지루하고 피곤하고 안궁금하고. 하의 뒷편에 조르바를 만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부터 다시 흥미가 붙어서 재밌게 읽고 끝낼 수 있었어.

하를 읽고 나니까 이 책의 제목은 `영혼의 자서전` 외에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겠다 싶더라. 말 그대로 참 고민 많고 참 진지하고 또 순수한 한 사람의 영혼의 자서전이야. 살며 겪는 사람들, 그들과 겪은 시간과 인생에서 몇 되는 사건이 있지만 그 숱한 이야기들은 흘러가는 배경일 뿐 주인공은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의 영혼이야. 인간, 인생이라는 느낌보다는 정말 부숴질 것 같은 영혼의 이야기.

비록 지루해서 힘들었지만, 치열하게 고민한 이야기이고 치열하게 끌어내 옮긴 글이라 경외감을 느꼈다. 신의 존재와 종교의 이야기에 대한 고민이 80% 이상이라 아마 이건 나중 언젠가 읽었어도 감상은 같을거야. ˝하이고 이 사람 차아암 생각 많네. 대단하네.˝ 인생에 대한 깨달음의 비중이 컸다면 이 깊이에 이 진지함과 이 아름답고 진정을 담은 문장에 홀렸을텐데 관심사의 어긋남으로 이 정도로 밖에 못 느낌이 아쉽다.

발췌

침묵은 유령처럼 내 주변과 위로 솟았고, 나는 캄캄하고 말라붙은 우물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침묵은 갑자기 음향이 되었고, 내 영혼은 전율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이 너무나 까다롭고 부드러우며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웃는다. 비록 어느 날 저녁 흙을 한 줌 먹고 만족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우리들은 만족을 모르는 우리들의 욕망에 웃는다.

고뇌는 격력했다. 나는 내 육체를 사랑해서 그것이 사멸하기를 바라지 않았고, 영혼을 사랑해서 그것이 썩지 않기를 바랐다. 인간은 누구나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이어서, 정신과 육체를 모두 다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비는 단순히 특정한 교의를 위한 신비가 아니라 보편적인 개념이다.

젊은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할 만큼 겸손하지 않고, 능력은 적지만 추구하는 바가 많다.

비겁한 자와, 노예가 된 자와, 서러움을 받는 자로 하여금 위안을 얻어 주인 앞에 참고 머리를 조아리며 (우리들이 유일하게 확신하는) 현세의 삶을 인내하게끔 만들기 위해 내세의 보상과 벌을 심어 놓은 종교는 얼마나 교활한가.

젊은이의 두드러진 속성일 뿐 아니라 성숙함의 두드러진 속성이기도 한 몰입 속에서 나는 몇 해를 파리에서 보냈다.

신을 죽여 버린 니체를 위해 만세를 부른다. 내가 원하던 바는 그것이라고 말할 용기를 나에게 주었던 사람은 그였다!

따뜻한 목욕탕에 들어가 혈관을 자르듯 차분하고 지극히 자비롭고ㅡ 죽음이란 이렇겠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녹아 버려서 몸을 들거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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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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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자서전 하를 읽는 중이었지만 카페나 사무실에서는 도저히 읽히지가 않아서 그건 찔끔씩이라도 집에 혼자 있을 때 읽어내기로 했어. 그리고 회사 출퇴근이나 점심시간 등에 읽을 재미난 소설이 필요해서 미뤄두던 1984를 꺼냈어. 1984를 시작하기 바로 전에 현이 블로그에서 1984를 검색해보니 2015년 1월에 리뷰를 남겼더라고. 그걸 보고 `생각보다 되게 늦게 읽었네..?`라 생각했는데 현이 역시도 내가 ˝1984 시작했어.˝ 했더니 ˝너가 이미 읽은 줄 알았는데˝라고 하더라. 이렇듯, 그냥 누구나 다 읽었을범직한(야 이거 대체 뭐냐? `읽었을 법한`과 `읽었음 직한` 섞인거지?) 명작 중의 명작 스테디셀러 중의 스테디셀러 필독서 중의 필독서. 근데 나는 필독서를 28살부터 읽기 시작했으므로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사회, 사상, 디스토피아, 불평등, 음모 따위들 내 취향은 아니지만 꽤 재밌게 읽었어. 그냥 영화보듯 흥미진진하게 읽히더라. 그리고 영화에서 이미 본 것 같은 내용이기도 하고. 현이가 물어봤어. ˝재미는 붙었어?˝ 그래서 ˝응 시작하자마자 붙었어. 고맙게도.˝라고 답했어. 그리고 어제 그 대화가 오늘 갑자기 생각났는데 책을 읽는다 할 때 흥미, 재미, 호기심 등이 `붙는다`고 표현하는게 되게 적절하면서도 레어하더라. 어쨌든 재미가 펼치자마자 붙었고 이틀간 읽었네.

내용 굳이 쓰기가 귀찮다. 1984년 대 런던이 빅브라더라는 놈에 의해 독재 관리되는데 그 관리되는 시민 중 하나인 윈스턴 스미스가 당이 은폐하는 진실에 반감을 갖고 어설프게 반항하다 얻어 터지는 이야기야.

주인공이 무능하고 결국 비극이라 좋았어. 1부 뒷부분에 나오는 선술집에서 만난 무산계급 노동자 노인과의 대화를 보면 윈스턴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려는 진실에 동문서답하는 노인의 대답이 오히려 현명하다 느꼈어. 답정너 윈스턴에게 노인의 대답은 `자네는 내가 곧 다시 젊어졌으면 하고 말하기를 바라는구먼.` 어설프게 반항적이고 어설프게 똘똘해서 피 본 케이스. 가만 있으면 중간이나 갈 것을 여자에 홀려 삶의 의지가 일어나 잠시 독립군을 꿈꿨으나 손톱에 눌린 개미처럼 나약하게 굴복하지.

1, 2부까진 소설의 의도를 이건 마치 교과서처럼 `비주체적 삶에 대한 경고`로 이해했지만 마지막 3부를 읽으면서 비관적이고 무책임하게도 `그냥 사회라는게 이런거고 소시민이라는 것의 능력은 저정도이며 앞으로도 크게 다를 바 없다`로 이해하고 책을 덮었어.

1984를 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그놈의 빅브라더가 누구냐. 그게 알고 싶었어. 책 좀 읽는 놈이라면 농담처럼 툭툭 활용하는 빅브라더와 그 지켜보고 있는 눈은 뭐냐. 책 읽기 싫은테 무식 들통나기 싫은 이웃님 및 스쳐 지나가는 비지터를 위해 네이버 백과사전의 정리를 옮깁니다. 오웰의 빅 브라더는 전체주의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기관이다. 그는 비밀스런 감시를 행하는 유령이고,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불안을 살피는 정신이며, 당신을 고문실이나 수용소로 보내기 위하여 새벽 네 시 정각에 집 문 앞에 서 있는 비밀경찰의 괴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젠 활용법을 배울 시간! 활용1) 남자친구가 내 핸드폰의 카톡과 전화내역을 수시로 감시한다. 그 때 이렇게 말하세요 `아 후달려. 빅 브라더가 따로 없네! 힝!` 활용2) 두 눈 크게 뜨고 있는 사진이나 그림을 본다면 `빅 브라더가 지켜보고 있다. 포커페이스 유지해.`라며 책 읽은 티 내기, 상식과 유-머 감각 뽐내기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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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자서전 1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17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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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되게 읽고 싶었지만 이왕이면 여행지에서 읽으려고 아끼고 아껴둔 책이었는데 정작 사이판에서는 두 권 중 상의 3/4 밖에 못 읽고 노느라 미뤄두다가 오늘 점심에 끝냈다. 재미가 없어서는 절대 아니고 생각보다 하나하나 씹어 읽어야하는 글이었고, 다음 장 다음 장!을 외치게 되는 줄거리 위주 책이 아니었어서 좀 늘어진 감이 없지 않아 있다(이 표현 웃긴 듯. 끝까지 이어갈 수 있을 수 없지 않아 있지 않아 없지 않지만 있지).

탄생부터 유아기 어머니와 아버지 소개, 어린 시절의 기억, 그 때 받았던 교육과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 친구들과의 대화. 교육된 종교와 느끼는 종교, 크레타과 터키의 전쟁, 종족의 피, 나라, 재난, 그리스, 여행 등등등. 주인공의 영혼에 영향을 준 인생의 모든 사건과 기억을 함께 밟아간다. 그걸 보자니 나란 사람의 삶도 밟아나가면.... 특별할 것 없는 교육 과정을 밟고 평범한 가정에서 울고 웃으며 자라왔지만, 그걸 성인이 된 지금의 눈으로 하나하나 되짚어가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사건이고 역사겠구나 싶다. 그리고 모든 이의 삶이 각각 거대한 역사려니 싶다.

평소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하고 내 나라에 대한 애국심도 없는 나로선 책에서 보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조상들의 삶의 태도가 언제나 신기했었어. `음, 대단하긴 한데 왜 저렇게까지....어떻게 저렇게까지....` 근데 크레타의 위기의 시기에 유년을 보낸 화자가 겪은 세상과 어른들의 대화 부모님의 교육을 보니 이해가 된다. 애국심, 희생, 울분, 자긍심 등등의 감정과 태도들은 학습되거나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생겨날 수 밖에 없는 시기에 속했기 때문에 갖게된 거구나. 우리 시대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냥 어린아이로 태어나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늙어 죽겠거니 싶더라. 말로만 어른, 머리로만 어른이고 심장은 성숙되지 못한. 과거 혼돈 속에 살다 일찍 죽은 청년의 절박함은 책이나 영화로나 상상해볼 뿐. 참 좋은 세상이다. 철없이 살다 가도 그만인 세상. 내 앞가림만 하면 되는 세상.

이제 스물 다섯의 역사까지 쫓아왔는데 영혼이 어떻게 여물지 기대 된다. 호들갑 없고 묵직하고 사소할 수 있는 고민들을 치열하게 하는 화자라 좋다. 얼른 퇴근하고 하 읽어야지. ​

발췌

손에는 항상 똑같은 선물인 솥에다 구워 레몬 잎사귀로 싼 젖먹이 돼지를 들고 왔다. 외할아버지가 꾸러미를 벗기면 온 집안이 향기로 가득했다. 외할아버지는 구운 돼지와 레몬 잎사귀와 완전히 하나여서, 그때부터 구운 돼지고기 냄새를 맡거나 레몬 과수원에 들어서기만 하면 내 머릿속에는 항상 생전의 유쾌한 외할아버지가 구운 새끼 돼지를 손에 들고 들어서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외할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몸 속에서 외할아버지가 살아갈 터이기에 나는 기쁘다. 우리들은 함께 죽으리라. (중략) 수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덤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묻혔으니, 내가 죽지 않는 한 그들도 계속해서 살아가리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사람을 평생 살게 하는 방법. 아픈 할머니 생각이 나면서 위로가 됐다.​

집 밖에서는 신이 아직도 고함을 질렀다. 천둥이 더 심해졌고, 마을의 좁은 골목들은 강이 되었으며, 돌멩이들이 마구 웃어 대면서 굴러 내렸다. 신은 격류가 되어 대지를 껴안고, 물을 주고, 비옥하게 했다.

「현실은 바꿀 수가 없을 터이니 현실을 보는 눈을 바꾸자.」 어렸을 때 나는 그랬고, 지금도 삶에서 가장 창조적인 순간들에는 마찬가지로 그렇게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면, 그 시간에 나는 내 영혼이 성숙하는 과정을 틀림없이 보았으리라. 나는 몇 시간 사이에 갑자기 아이에서 어른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억압되고 불행한 숙명을 산다. 그것은 그가 맡은 일의 본질이 어휘를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인데, 다시 말하면 내적인 격렬한 흐름을 정체시켜야함을 뜻한다. 모든 어휘는 위대한 폭발적인 힘을 내포하는 견고한 껍질이다. 그 의미를 찾아내려면 인간은 내면에서 폭탄처럼 그것이 터지게 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안에 갇힌 영혼이 해방된다.

p126. 프랑스어 사전을 모두 그리스어로 바꾼 어린 화자를 본 두 신부의 다른 반응 에피소드. ˝넌 소년이냐, 아니면 늙은이냐? 왜 이런 노인의 일 때문에 시간을 낭비했지? 웃고 놀고 지나다니는 계집아이들을 창문으로 내다보는 대신, 망령 든 영감처럼 앉아서 사전을 번역하다니! 없어져 버려. 내 눈 앞에서 없어져! 이러다간 넌 절대로 영원히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이 되고 말거다! 넌 어깨가 축 늘어지고 안경을 쓴 초라한 선생이 되겠지.˝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리고 난 다음 자유는 크레타 땅에 피투성이의 발을 디뎠다.

위기를 맞으면 항상 도피하는 문 노릇을 해온 웃음에 나는 또다시 의존했다.

젊음은 눈 멀고 사리를 분별치 못하는 야수이다. 젊음은 먹이를 탐하지만 먹지 않고 머뭇거리기만 하며, 발길에 채는 행복을 마음만 먹고 주우면 되는데도 줍지 않고, 샘터로 가서 시간이라는 물을 쓸데없이 흘러 말라 버리게 그냥 내버려 둔다. 스스로 야수인 줄을 모르는 야수ㅡ그것이 젊음이다.

건강하고도 보기 좋은 몸매에 과묵하고 피상적인 부유함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힘을 지녔지만 그 힘을 억누를 능력도 갖추고, 상상력을 제한할 줄 아는 사람. 소박함의 언저리에 다다른다. 하지만 경계선을 넘지는 않으며, 유쾌하고 친근한 진지함에서 멈춘다. 우아함은 낭만으로, 그리고 마찬가지로 힘은 가혹함으로 타락하지 않는다. 뽐내지 않고 미사여구에 탐닉하지 않으며, 신파조로 기절하는 발작으로 타락하지 않고, 차분하고 힘찬 설득력을 지니며, 해야 할 얘기만 한다.
-`아티카의 풍경은 이상적인 인간의 특성을 규정지어서,` 에 이어 나온 문장들. 사람이 아니고 지역이다.

젊은이, 물론 난 기도를 했어요. 모든 종족과 모든 시대는 저마다 신에게 나름대로의 가면을 부여해요. 하지만 모든 종족과 시대가 부여하는 모든 가면 뒤에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똑같은 신이 항상 존재하죠.
-여기서도 `양파` 등장. 반갑고 건강한 신앙.

나는 행복감으로 숨이 막혔다. 나는 친구를 쳐다보고 얼마나 벅찬 기쁨이냐는 말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다. 나는 얘기를 하자마자 마력이 사라질 것이라고 느꼈다.

나는 그 짐승이 내 체취를 맡고 도망치지 않도록 숨을 멈추었지만, 이미 너무 늦어서 나도 모르게 아주 작디 작은 외침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여우는 소리를 듣고 어느 방향으로 달아났는지 미처 내가 찾아보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인간의 행복이란 항상 그렇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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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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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기억이 안나는데 오래 전부터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담겨 있었다. 마침 동동이가 갖고 있길래 2주 전에 빌려 읽다가 다 못 마치고 사이판 갔다가 와서 점심에 마저 읽었어. 마지막 부분 읽고 있는데 동동이한테 전화왔길래 ˝설국 내 스타일 아니네˝ 했더니 그치? 그럴 줄 알았대. 자기 스타일도 아니었대. 뭐냐 너 ㅋㅋㅋㅋㅋ 어쨌든 민음사 한 권 더 읽었다는 기록세우기 같은 뿌듯함과 얇아서 시간 허비 많이 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로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싫어할 이유까진 없다.

여관의 게이샤 고마코와 오랜 기간 썸스럽게 지내고 있는 유부남 시마무라. 고마코는 잠깐 왔다 떠나고 일 년 후에 뜬금없이 와서 다시 마음에 불을 붙이는 시마무라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기대하고 사랑해. 시마무라는 그냥 호기심이나 귀여운 여동생 보듯 고마코의 구애와 애정표현을 즐기면서도 그 지역에 새로 온 요코라는 신비한 여자에게 눈을 빼았겨.

우선 나는 일본 문학에서 등장하는 일본 여자들특유의 태도와 분위기가 싫다. 다들 왜 이렇게 하녀같지? 직업이나 성격 떠나서 그냥 애초에 남자를 서포트하기 위해 존재하는 동물들처럼. 남자의 관심이나 사랑이 그들 생의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조용하고 끊임없고 희생적이야. 고전에서 유난히 심하지만 요즘 영화나 소설을 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짓궂은 남자에게 섭섬함에 삐죽대는 꼴이라니. 여자가 본인의 위치를 그렇게 단정하고 애를 쓰니 자연히 일본 남자의 태도는 그 반대, 근거 없는 갑. 엄청 어린 사회초년생을 들었다놨다 하는 유부남 직장 상사같기도. 아 두 쪽 다 되게 비호감.

여자 주인공인 고마코라는 애가 맨날 삐죽대고 툴툴대고 혼자 삐쳐선 흥 했다가 달래지도 않았는데 흥!하면서 다시 돌아와 시마무라 품에 안기는 식이거든.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는데 읽으면서 `아 쟤 왜저래...˝ 저런 여자애는 난 친구로도 안 둘 듯. 여자의 직업이 게이샤가 아니었어도 상대 남자가 유부남이면서 고객인 시마무라가 아니었어도 저런 태도로는 누구에게나 `놀 상대`로 밖에 안될 듯. 흥칫핏! 뿡뿡! 왜 저래...

아 오후엔 진짜 일 좀 해야지. 오전은 멍하게 아무 것도 않고 흘려 보냈네. 일도 많은데..


발췌

˝싫어요, 사람이 죽는 걸 보는 건.˝
이 말이 차가운 박정함으로도, 너무나 뜨거운 애정으로도 들리기에 시마무라는 망설였다.


˝그럼 인연이 있으면 다시 봅세.˝ 처녀에게 말을 남기고 기차에서 내렸다. 시마무라는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자신도 깜짝 놀랐다. 그래서 더욱 여자와 헤어지고가는 길임을 실감했다. 두 사람이 그저 합승한 사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남자는 행상인쯤 되리라.

˝아니, 괜찮아요. 우린 어딜 가도 일할 수 있으니까.˝
너무나 솔직하고 실감 어린 어조는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시마무라에겐 몹시 뜻밖이었다.
˝정말이에요. 어디서 벌건 다 마찬가지죠. 징징거릴 필요 없어요.˝
-뭔가 내가 자주하는 말이랑 비슷한 느낌인데.

˝어딜 갔었어요? 어딜 갔었어요?˝
˝왜 절 데려가지 않았어요?˝
˝왜 뒤돌아보지 않았어요?˝
-이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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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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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서점에서 완전 깨끗한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가 있길래 그냥 집었어. 그리고 침대 밑에 두고 자다가 아침에 발로 물 엎어서 책이 흠뻑 젖었고 새 책 같던 중고책이 누가봐도 중고책스러운 중고책으로 리폼됐어. 책이 울고있어.

음. 이 책은 진짜 리뷰 쓰기 어렵다.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어려워. 해보자. 음. 시발. 음. 어. 뭐.

해보자 진짜.

프랑스 배경. 서른살의 아담 폴로가 주인공이야. 스스가 탈영을 한 군인인지 아니면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는지 언제부터 혼자 살았는지 그 계기는 어떠했는지 기억의 단편이 사라졌달까 뭉개졌달까 그냥 하루하루 쥐새끼처럼 어둡고 외롭고 조용한 삶을 보내는 한 남자야. 그 남자를 지켜보는 그러니까 3인칭 관찰자 시점과 아담이 좋아하는 여자 미셸에게 일기처럼 매일같이 쓰는 편지 내용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나와. 3인칭일 때는 미친 사람 하루를 쫓는 기분이고 1인칭은 미친 사람의 사고를 들여다보는 기분인데 사건이랄 것도 없고 미친 행위랄 것도 없어. 굳이 보통과 다른 행동이라고 한다면 쓰레기통을 뒤진다거나, 매일같이 한 마리의 개를 쫓아다닌다든가 죄없는 쥐를 당구공으로 맞춰 죽이는 건데 그게 뭐 그리 이상한가. 이상한 건 행동이 아니고 그런 일상 속에서 몽유병환자처럼 느슨한 시선과 멈춘듯한 사고를 하는, 아담이 본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야. 그 의욕없는 사내가 갑자기 파리 광장에서 연설을 시작하고 사람들이 모였을 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옷을 벗어(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뭘 어떻게 벗었는지 왜 벗었는지도 이해 못하고 있다.확실한 건 벗었다는 것.) 풍기문란으로 잡혔다가 정신이상자로 판단되어 정신병원에 갇힌 채로 이야기가 끝나.

쓰다보니 왜 이 책이 나한테 어려웠는지 알겠다. 내가 정상인인데 미친사람의 언어를 어찌 알겠어. 근데 왜 미친 사람의 말을 읽고 있어야하며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 `현대인의 존재론적 고뇌`를 읽어낸거지? 해설 없이 진짜 그걸 읽어냈다고? 해설도 보니까 억지롭던데. 옮긴이의 말에 아담 폴로를 이방인의 뫼르소와 닮아있다고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아닌데요 어디가요. 뫼르소는 전혀 안 미쳤잖아. 모든 판단과 행동이 상식적이잖아. 아예 근본 자체가 다른데 외롭기를 자처한다는 이미지 하나로 닮았다고 하는건가?

포기하지 않고 읽은건 기특한데 전혀 뿌듯하지 않다. 뭘 읽은지 모르겠어. 너무너무너무너무 어려워. 그리고 작가 르 클레지오가 미친 사람이 아닌 걸 알기 때문에 미친 주인공의 말이 어렵다고 순순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보통 작가가 가상의 미친 사람을 만들어내서 보통의 독자에게 혼돈을 주는건 왠지 비겁해. 그걸 이해하려 애써서 다 이해한들 허무해. 가짜 미친 사람의 말을 이해한 거잖아. 내 말을 이해가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보통 정신으로 보통의 사람들에게 이해가게 좀 풀어내주지. 나같이 성의 없는 독자들은 읽기를 포기하고만다고요. 그만하자. 나한테만 어려웠을지 몰라.

아 하나만 더 덧붙이면 중간에 신문도 나오고 부호도 나오고 글에 줄이 쳐저 있다거나 시도는 꽤 신선하고 과감했어. 근데 재미가 음슴.

-발췌

˝네게 편지를 썼어.˝하고 아담이 말했다. ˝네게 편지를 썼고 널 강간했어. 그런데 넌 왜 아무것도 안했어?˝

너무도 많이 세상을 보다보니 세상이 그의 눈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버렸다.

그는 빵 부스러기 하나를 개에게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 짐승이 자기에게 친금감을 가질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위험한 짓이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개가 자신을 쫓아올 것인데 자신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를 이끌고 다녀야 하는 책임을 지기도 싫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다야. 그 이후는 다시 흐릿해져. 내게 무슨 일이 생길지 난 모르겠어.

미셸은 67퍼센트 정도 속물이다.
-아 이건 좋아. 진짜 좋아 ㅋㅋㅋ

이제 세 권만 더 채우면 출판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나는 벌써 딱 맞는 제목을 찾아냈다.<멋진 더러운 놈들>이라는.

가까이서 보면 피부를 대리석처럼 보이게 하는 태양과 편평한 바닷물로 인해 아담의 몸은 원색의 노란색에서 푸른색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얼룩들로 서서히 물들어 가는 듯했다. 그렇게 위장된 그는 밤색, 초록색, 검정색, 거무스름한 회색, 흰색, 황강색, 지저분한 주홍색의 무수한 온갖 다른 얼룩들의 한가운데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부분 보면서 입이 떡. 나도 이렇게 색을 표현할 수 있는 글재간이 있으면 좋겠다. 가슴 속에만 윙윙돌던 그 느낌을 머리로 풀어 글로 옮기는 그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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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 2020-11-15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쓰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