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이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7
헤르만 헤세 지음, 김누리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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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에서 겉으로 보기엔 문제없이 조화로운 구성원으로 살아가지만 내면엔 야성과 잔혹성이 이글대는 이리인 남자 (우습게도) 스스로를 ‘황야의 이리‘라 부르는 하리 할러의 수기를 엿보며 이야기가 진행돼.

사회와의 부조화 때문에 삶이 고통이었던 하리가 우연히 읽게된 ‘황야의 이리론‘에 자신 혹은 자신과 같은 이리인간에 대한 실랄한 분석에 본인의 고통이 한낱 투정에 불과했구나 느끼며 결국 오래 꿈꿔온 자살을 하기로해. 자살 전 하리가 마지막으로 들른 바에서 본인의 어릴적 친구 헤르만(!!!)와 닮은 아가씨 헤르미네을 알게되고 그녀의 가르침과 명령 속에 복종하듯 보통 사람의 즐거움을 하나하나 배워나가. 춤을 배우고 연애를 배우고 클래식이 아닌 대중음악을 즐기는 법을 배우며 그동안 경멸하던 쾌락에 흥미를 느끼게 되지만 그 시간이 지속될 수록 쾌락의 끝에 있을 허탈함이 두려워 다시 혼란에 빠져. 그러다 헤르미네와 또다른 친구의 안내로 미친 사람만 입장할 수 있다는 공연장에 환각상태에 입장하게 되고 거기서 수백가지의 가정에 한 역할을 하며 서서히 죽게돼.

우울증 환자의 일기 잃으며 일부 공감은 하지만 별 사건도 없이 뭐 저리 심각해 하며 지루해하다가 헤르미네와의 만남과 대화부터 쉬워지고 적당히 흥미로웠는데 저 마지막 파트 환각 속에서 벌어지는 기계와의 전쟁과 살인 등등등 내가 뭘 읽은지 이해도 못하겠다. 아 찜찜.

내 감상과 남의 해석이 섞여버리고 남의 의견갖고 나도 모르에 알은체 할까봐서 작품해설은 정 궁금할 때 감상 남긴 후에 읽는데 지금 이만큼 쓰고 살짝 앞부분을 읽었더니 황야의 이리가 히피들의 교과서라 불린다고 한다. 작품 속 단서를 캐치해 해석하지못해 큰 감동이 없던 건 내 독서력이 부족하다 인정하고, 해설 떠나 내용 전체가 된 주인공 할러 하리만 봤을 때 모두 다 그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그리고 누구나 느끼고 살 정도의 좌절감과 괴리감을 갖고 본인이 인간세상에 잘못 발을 들인 이리네 야생동물이네 하는 건 유치하고 같잖다.

발췌

그가 자애롭지만 매우 엄격하고 신앙심이 깊은 부모와 교사들에게 교육을 받았고, 이 교육의 원칙은 <의지의 파괴>였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자연과 정신 사이에 놓인 좁고 위험한 다리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을 정신 쪽으로, 신 쪽으로 몰아대는 것은 내면의 명령이며, 그를 자연 쪽으로, 어머니 쪽으로 돌아가도록 잡아끄는 것은 절실한 동경이다. 이 둘 사이에서 두려움에 떨며 동요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언제나 일시적인 시민적 합의에 불과하다. 거친 충동은 이러한 관습에 의해 거부되고 금지되며, 얼마간의 의식과 예절과 교화가 요구된다. 정신은 아주 조금만 허용되고 요구될 뿐이다.

인간이란 이미 창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의 요구이며, 그 실현을 갈구하면서도 또 겁내는 하나의 먼 가능성이다.

아는 애써 쓸데없는 것들을 말하고 물으면서, 그만 평소보다 과식을 하고 말았다. 순간순간 점점 비참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소름이 끼칠 만큼 거슬렸어요. 당신이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잘 이해할 수 있어요. 걱정말고 계속하세요.

진지함이란 시간을 과대평가하는 데서 생겨나는 거라네.(.......)영원 속에선, 자네도 알다시피, 시간이란 없다네. 영원은 한 순간에 불과한 것이라네. 즐거운 일을 하나쯤 할 수 있는 딱 그만한 시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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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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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정말 오래전에 대학생 때에 샀는데 초반 읽다가 어려워서 덮었었다. 그래서 거의 10년 가까이 내 방 책장에 있었는데도 고슴도치가 나오는지 안나오는지도 몰랐다. 그 후 어디선가 철학적인 고민을 담은 책이라는 팁을 보고 한번 마음잡고 읽어야겠다 벼르다 이제 읽었다. 그리고 결론은 십점만점에 십저엄(팔을 위로 아래로 들썩이며)! 자꾸 올해의 책 거려서 점점 신뢰가 없어지는 것 같은데 거의 그 수준로 좋게 읽었다.

응당 수위아줌마가 갖춰야하는 태도(게으르고 티비 연속극을 즐겨보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느릿하게 걷는)를 연기하며 이웃을 속이고 있는 르네. 하지만 밖으로 흘러나오는 티비 소리는 훼이크일 뿐이고 사실 그 수위 아줌마 르네는 정돈된 서재에 앉아 고급 과자에 티를 마시며 오만과 편견을 읽는 교양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은 르네가 수위로 있는 건물에 사는 열두살 짜리 소녀로, 너무 똑똑한 탓에 현실의 부조리와 부모 자매를 포함한 부자들의 역겨운 위선에 질려 열세살이 되는 생일에 방화와 자살을 계획 중이다. 이 둘의 타인 관찰과 삶과 세상에 대한 고찰이 번갈아가며 다뤄진다.

진정한 교양인의 가짜 교양인 후려치기가 너무 공감되기도 하고 재치있어서 키득대며 읽었다. 병신들 간파 잘하는 똘똘이들의 예리한 시선 너무 좋아한다.

읽으면서 문장이 쏙쏙 들어오지 않아서 10년 전에 이래서 포기했었구나 싶었다. 딱히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어려워서라기보단 아무래도 실체가 없는 사상에 대한 고민을 혼자 쏟아내는 형식이다보니 누구에게 들려주는 정돈된 주장이 아니라 스스로 자연스레 하는 생각이기 때문에 당연히 정돈도 되지 않은 문장이 쉴 새 없이 나와서 산만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어쩌면 번역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난 아르테 출판사 것으로 읽었는데 문학동네 것으로도 읽어보고싶다.

그렇다할 줄거리가 없이 독특한 두 캐릭터의 독백이 이어지다가 후반부에 정말 의외로 로맨스와 우정과 감동이 막 튀어나오다가 마지막 20페이지에서 너무 슬퍼서 정말 오랜만에 책 읽다가 엉엉 울었다. 네 오늘 저녁 8시 교대 폴바셋에서 울던 애 저예요. 그 마지막 20페이지 울며 읽으면서 작가도 이거 쓰면서 엄청 울었겠다 싶었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읽으면 특별할 일 없어 보이는 개인의 삶도 각기 다른 향기를 갖고 있고 사뭇 지루하게 느껴지던 세상도 조금만 살펴보면 재밌는 장면 투성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한번의 사랑과 한번의 우정을 위해 사는 삶 같기도 하고. 늦은 때라는 것도, 우울할 일이라는 것도 없고 언제 올지 모르는 즐거운 순간을 기다리는게 삶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발췌

발과 슬리퍼는 너무 잘 어울려서 오직 바게트 빵과 베레모의 찰떡궁합만이 그에 맞설 상투적 이미지일 것이다.

세계는 도달할 수 없는 현실이므로 알려고 애써봐야 소용없다. 우리는 세계에 대해 무얼 아는가? 전혀 모른다. 모든 앎은 반성적 의식이 스스로하는 자기 탐색일 뿐이기 때문에 이제 세계를 악마에게 던져주어도 좋다.

카피와 신문 대 차와 망가.
우아함과 매력 대 어른들의 권력 놀이의 슬픈 공격성

학교는 날 태어나게 했기 때문에, 나는 학교의 호의에 빚졌고, 얌전하게 문명화된 인간이 되어가면서 나는 선생님들의 의도에 복종했다.

입 안에서 씹는 방식을 바꾸는 것은 새로운 요리를 맛보는 것과 같다.

여러분, 친구는 하나만 사귀세요. 하지만 잘 선택하세요.

저녁 파티에서 마약에 빠지고 성관계를 가지면 여러분이 어른으로 전격 임명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변장하면 인디언이 된다고 믿는 것과 똑같다. 어른들의 습관 중에서 제일 끔찍한 것들을 흉내 내면서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어쨌든 웃기는 인생관이다.

내 삶을 내 부모의 정원이 아닌 다른 정원으로 가꿀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두 존재 사이에 취향과 심리적 흐름에서 이런 일치가 있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봤지만 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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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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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 책을 사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질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예스24에서 직배송중고를 검색했고 그 중에서 새것과 같은 컨디션이라는 `최상`으로 분류된 문학에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어쩌다보니 샀던 것 같다. 집에 도착한 책의 표지를 보니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해서 잘됐다 하고 얼른 읽어봤다.

나에게 종교란 몇년 전까지 전혀 관심 밖의 문제이자 미신이었다. 친가 외가가 모두 독실한 기독교집안이라 애기때부터 지금까지 명절마다 예배를 드리는데도 그냥 나에게 종교 그 중에서도 기독교는 불쾌한 미신이었다. 그러나 몇년 전부터 고전문학을 많이 읽게되고 거기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종교에 관심이 가더라고.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작년 초에 천주교신자인 남자와 연애를 하게되었는데 그의 삶에 종교가 미친 영향이 어마어마하게 컸고 그를 통해 종교를 부정하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우습게 만들 수 있는 일일 수 있겠구나 처음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깔 땐 까더라도 자세히 그리고 편견없이 공정하게 알고 배운 후 까고 싶단 욕심이 생겼다. 그런 목적에서 이 책은 정말 엄청나게 흥미롭고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그리고 이제 종교를 까는 오만한 말은 조심하기로 했다. 인정한다는 말은 전혀 아니고 왜 종교에 몰두하고 기도를 하고 의지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늦둥이 딸 미시가 연쇄살인마에게 납치 실종되고 사실상 살해되었을 것이라 판단이 되어지는 상황에서 아이를 지켜내지 못해 하루하루를 자책과 그리움 속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 맥의 이야기야. 시간이 지나도 그 슬픔은 줄어들 줄을 모르고 회색빛에 갇힌 나날들 중에 우편함에 파파라는 이름으로 쪽지가 와있어. 오두막에서 만나자는 짧은 쪽지인데 파파는 아내 낸이 하나님을 부르는 애칭이고 오두막은 딸아이의 피묻은 옷이 발견된 곳이거든. 살인마의 덫이든 못된 주변인의 장난이든 말도 안되지만 하나님의 초대이든 무엇 하나 두렵지 않다며 혼자 오두막으로 가게 돼. 그리고 거기서 사흘간 하나님, 예수님, 성령과 시간을 보내게 돼. 그리고 집요하게 질문하고 대화하며 그가 이해하던 종교와 실제 하나님의 뜻의 거리를 좁혀나가게돼. 그리고 결국엔 하나님이 추구하는 사랑을 이해하고 그로 인해 슬픔에서 벗어나고 범인을 용서할 수 있게 돼.

물론 비과학적이고 신화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진짜 수긍을 했다면 거짓말이지만 적어도 어떤 말인지 충분이 이해가 됐다는 것 만으로 무신론자 불신론자인 나에게는 큰 한걸음이 됐다. 여전히 당연히 신이란 건 없다고 믿으나 왜 신을 섬기고 그 안에서 평안을 느끼는지 알 것 같았다. 특히 비극적인 사건 사고를 겪고 갈피를 잃은 사람에겐 치유와 희망의 수단으로도 이미 충분한 의미가 있는 믿음이라 느꼈다.

또 기독교신자들은 살면서 나같은 무신론자들에게 의도치않은 비아냥과 의심을 들어왔고 그때마다 이해를 시키려 반박하려 참 많은 애를 써왔을터인데 이 책 한권이면 어지간한 질문에 대한 답을 입 뻥긋 않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 역시 신앙심이라는 절대가치 안에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거다. 조금의 의구심도 없었다고 하더라도 빛같은 무형의 절대자와 마주하고 며칠을 보내는 그 상상은 또 얼마나 달콤할지!

흥미롭고 즐거운 독서였다. 나 지금 방콕이다.

발췌

˝가끔씩은 당신이 통제해주면 좋겠어요. 그러면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내 의지를 당신에게 강요한다는 건 사랑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진정한 관계는 비록 당신의 선택이 쓸모없고 건전하지 않더라도 순종하는 특징이 있어요.˝

거짓에는 무한한 조합이 있지만 진실의 존재 방식은 하나뿐이다.-장 자크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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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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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아주 외딴 해안마을 네루다에 기거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국민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매일같이 우편물을 전하며 점차 깊은 우정을 느끼는 시인과 우체부의 이야기. 우체부가 사랑에 빠져 시인의 힘을 빌어 사랑을 고백하는 에피소드가 소설 초중반부를 차지해 그만 사랑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나름의 경제활동을 하는 시민 하나의 이야기를 다정하게 소개했을 뿐 중요한 것은 칠레라는 나라의 한 시기인 듯해. 민중소설이라고 이해하는 게 맞겠다. 노골적이지도 처절하지도 않은데 먹먹했어.

책을 읽고 뒤에 에필로그를 읽어보니 실제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실존했던 시인파블로 네루다를 인간적으로 존경했었대. 가상의 인물 마리오를 만들어 이미 명성을 얻은 작가로서 바쁜 작품, 사회 활동 중에도 민중과 스스럼 없이 대화하고 진정으로 나라의 평화를 바랐던 시인과의 아쉬운 이별(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썼나보더라고. 시대와 방법을 초월하는 우정이 느껴져서 참 따뜻하더라. 꽤 유머감각도 있고 젠체하지도 않고 쉽게 쓰여서 읽기 편안했어. 근데 큰 임팩트는 아니라서 이렇게 남겨 놓지 않으면 기억이 안날 것 같당당당당. 뭔 소리하냐. 지금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면서 써서 뭔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당당당당.

발췌

한없는 인내를 지닌 태평양도 못한 일을 산안토니오의 단촐하고 정겨운 우체국이 이루어냈다.

`내가 누구지, 내가 지금 어디 있지, 숨은 어떻게 쉬지, 말은 어떻게 하지?`
-위 두 발췌 문장이 우연인지 요즘 유행하는 말과 비슷해서 신기했다. `그 어려운 걸 해냅니다`와 `난 누구 여긴 어디`같은

시를 이용해 베아트리스를 꾀어보려 했을 때, 칠레에서 가장 두려운 기관과 맞닥뜨렸다. 바로 딸 가진 어머니였다.

말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야. 허공에서 사라지는 불꽃놀이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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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문 안에서 - 나쓰메 소세키 최후의 산문집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문학의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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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나쓰메소세키의 인생관이 담겨있을거라 생각하니 너무 궁금하면서도 늙음과 죽음을 필요 이상으로 일찍 이해하게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 미뤄뒀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일본작가 글이 읽고 싶은데 안 읽은게 이거 하나라 찜찜하게 꺼내들었다

흠. 허무할만큼 그냥 노인의 과거 회상이네. 삶이 뭐네 죽음이 뭐네가 아니고 머리 쇤 노인이 특별히 할 것 없이 요양을 하며 창 밖을 멍하니 보다 떠오른 어린날 젊은날의 모든 기억을 옮겨낸 수필이야.

조금 신기했던 건 얼마전부터 특이할 사건도 아닌데 문득 떠오르는 어릴적 기억들(언니랑 골목에서 귀신장난, 유치원 버스 기다리다가 동네 연탄가게 아들 둘한테 맞은 일,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동화작가)을 기록하고 싶단 생각을 했었거든. 지금까진 어케저케 기억 속에 살아있지만 삶 속에 흐려질 수 있는 이야기라서. 근데 소세키 유리문 안에서가 그렇더라고. 그래서 그 기분은 알 것 같기도. 근데 이게 또 누가 읽어줄 필요는 없는 글이거든.

초반에 수필을 시작하기 전에(사실은 어느 잡지에 꾸준히 연재한 글을 모아 출간된 것이니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가 더 맞는 말) 일상이 바빠 신문의 굵은 글자만 겨우 읽을 시간만 있는 독자들에게 너무 시시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 것 같아 송구하다는 작가의 말을 읽었는데 읽으면서 아 송구한 기분 들 법도 하다 싶었어.

그렇다고 재미가 없었거나 읽은 시간이 후회되는 건 아니고 죽음! 늙음!이 거칠고 잔인할거란 생각을 했던 내가 아직 어리구나 느꼈어. 지금 나와 같이 어제일 작년일 학창시절의 일을 다시 곱씹고 추억하는 시간이 더 긴 노인의 이야기였어. 좀 알 것 같다. 난 아마 80살이 되어서도 누가 읽든 안 읽든 끄적대며 예전의 기억을 기록하고 있겠지. 그리고 그 무탈하고 무난했던 시간이 참 좋았었다. 하고 있겠지.

소세키를 사랑하는 독자에겐 그의 마지막 작품이니 이런저런 의미가 있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잘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의 옛추억을 내가 왜 읽어야하는가 싶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소세키 소설 좋아하니까 그리고 할아버지 살짝 아는 독자니까 그 단정함과 차분함이 어느 정도 좋았다. 약해진 몸을 회복하려 몇날며칠 몸을 뉘이고 있는 방 유리문을 바다보다 TV처럼 지나가는 그때 그 기억들을 바라보는 소세키가 그려져 조만간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뵈러 가야겠다 생각했다.

발췌

다음 길모퉁이에서 여자는 또 ˝선생님께 배웅을 받다니 영광입니다.˝하고 말했다. 나는 진지하게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여자가 간단히, 그러나 또렸하게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렇다면 죽지 말고 살아 주십시오.˝

숨이 막히도록 괴로운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 밤 나는 오히려 오래간만에 인간다운 흐뭇한 마음을 맛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향기 높은 문학 작품을 읽고 났을 때 느끼는 기분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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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열정 2017-11-04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소세키의 ‘마음‘이란 책을 보면서 오랜만에 마음 졸이는 소설을 본 것 같았는데, 이 책도 읽어봐야 겠네요

Cindy.K 2017-11-10 14:27   좋아요 0 | URL
오 마음 안 읽어봤어요. 소세키가 마음을 졸이는 소설을 쓰는 작가의 인상은 아니었는데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