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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나 나의 취향에 따라 계속 바뀔뿐만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다는 사실이 바로 몇 년 후 부끄러워지기까지 해서 (김영하와 알랭 드 보통이 그 예입니다) 꽤 조심스러운 지명이지만. 앞으로 후에 생각이 바뀌기 전까지 제일 좋아하는 작가를 줄리언 반스로 잠시 올려두겠습니다. 겨우 네 권 읽었습니다만.
혹시 누군가 줄리언 반스를 시도한다면 나는 플로베르의 앵무새 - 10과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순으로 좋았습니다. 참고하세요.
(집필 당시)예순이 넘은 작가가 죽음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는 장편 수다집이야. 유명인들의 죽음을 소설처럼 함께 구경하기도 하고 먼저 떠난 친구들의 죽음을 에피소드처럼 슬쩍 꺼내기도 하고 분명 작가에겐 가슴 아릴 부모님의 죽음도 아주 남 얘기 하듯 아린 맘 감추고 유머러스하게 털어놓는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원제는 nothing to be frightened of 이지만)두려운 존재인 ‘죽음‘이란 놈을 불펼할만큼 깊게 생각하고 자주 이야기해서 그 공포에서 좀 자유로워보자. 까놓고 그리 감상적으로 받아들일 일도 아니지 않냐 하는 식의 이야기인데 나는 아직 젊어서인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적고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어서 어떤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이정도로 두려운 존재구나 싶어 신기했다. 공포가 적기 때문에 웃음으로 공포를 승화시킨다거나 죽음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는 않았고 난 그저 이 책의 이야기 방식이 재밌었다. 마치 죽음 박물관처럼 서머싯몸, 버드런트 러셀, 에밀 졸라, 스탕달, 괴테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귀스타프 플로베르까지 온갖 유명작가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유언들, 마지막 순간들을 알 수 있어서 영화 하이라이트 장면을 모아본 듯 했다.
줄리언 반스의 자전적 에세이라 간접적으로만 느끼던 반스를 되게 가까이에서 만난듯해서 반갑기도 했고. 네러티브 없이 소재 하나만 갖고 400페이지를 채우니 와인 나눠마시며 수다떤 기분도 들고. 애초에 문장 자체가 위트가 있어서 뭔 얘기를 한들 재미가 없겠냐만 확실히 이 책으로 작가에게 한발 다가갔다. 저런 친구 하나 갖고 싶다. 맨날 사진에서 미중년의 모습이었던 줄리언 반스가 벌써 70이 넘은 노인이라니 세월이 참 무상하다. 오래 살아서 더 많이 수다 떨어줘라.
발췌
나는 잃을 만한 믿음이란 게 애초에 있질 않았으니 그저 반항했을 뿐이다.
˝네 인생 다 네가 자초한 거야, 안 그래?˝ 이것이 실존주의의 본질이었다.
˝신의 존재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존재하지 않는 편이 그의 평판엔 더 좋을 것 같다.˝
이곳에 없게 될 것이다 / 어디에도 없게 될 것이다 / 그리고 얼마 안 있어 / 더는 무서울 것도, 더는 진실할 것도 / 없게 될 것이다
그는 용감무쌍하게도 (아니면 저돌적인 건가?) 지구상에서 줏대 세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을 대상으로 이를 시험했으니 바로 리처드도킨스였고,
-이기적유전자 얼른 읽어보고싶다.
˝규칙적이고 평범하게, 부르주아처럼 생활할 것. 그러면 격렬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귀스타프 플로베르
할러는 점차 희미해지는 자신의 맥박을 관찰했고 마지막으로 유언에 필적할 말을 남기고 죽었다. ˝친구, 동맥이 더는 뛰지 않는걸.˝
‘그녀가 죽은 후,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애드먼드 윌슨의 두번째 부인 캔비와 별거 중 그녀가 발을 헛디뎌 두개골이 깨져 죽은 후 쓴 일기 중
229p 전체
기억은 정체성이다. 내가 이렇게 믿기 시작한 게 언제냐면......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시점부터다. 당신은 당신이 이제껏 행해온 바다. 당신이 이제까지 행한 바는 당신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당신이 기억하는 것이 당신이라는 사람을 정의한다. 당신이 당신의 인생을 잊을 때, 당신은 설령 아직 죽지 않았다 해도 이미 끝난 존재다.
자신, 자아, 혹은 나조차도 우리가 기대어 사는 또 하나의 망상일 뿐이다.(.......)우리가 좋아 어쩔 줄 모르는 그 ‘나‘라는 것은 실은 문법 안에서만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