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킷 브레이커 - 거품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경제를 흔드는가
류샤 지음, 허유영 옮김, 김태동 감수 / 두리미디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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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킷브레이커 - 영어의 첫 글자를 따서 'CB'라고도 한다. 전기 회로에서 서킷 브레이커가 과열된 회로를 차단하는 장치를 말하듯,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갑자기 급락하는 경우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하여 주식매매를 일시 정지하는 제도로 '주식거래 중단제도'라고도 한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이 책은 1636년에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튤립 투기 열품으로부터 시작해서 2008년에 일어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15개의 투기 사건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책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투기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것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킷브레이커라는 한국어 제목은 아마도 이 책이 투기과열에 대한 적절한 차단장치 역할을 감당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붙여 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을 통해 분명하게 알게 된 사실은 '거품은 반드시 터진다'는 것과, '거품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거품에 뛰어드는 이유는 '탐욕' 때문이며, '탐욕'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거품 역시 세상에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품을 통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은 언제나 거품 초기에 뛰어든 사람들이라는 것과 실물자산을 대거 소유하고 있는 부자들이나 부실 기업에 관한 정보를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고위 관리들은 거품이 꺼지더라도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부자들의 경우는 거품이 터지더라도 실물자산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며, 고위관리들의 경우는 거품이 터기지 전에 미리 알고 발을 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투기에 뛰어들어 돈을 벌고자 한다면 초기에 뛰어 들어야만 하고, 또한 거품이 터지기 전에 발을 빼야 합니다. 그런데, 거품이 터질 시점을 알 수 없는 일반인들로서는 적당히 만족하고 발을 빼지 않는 한 거품이 터질 때 함께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적당히 만족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거품에 발을 담근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품이 터질 때까지 발을 빼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고 맙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바보짓이 역사가 반복되는 가운데 결코 사라지 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0년 동안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경제 활황기 뒤에는 언제나 심각한 침체기가 찾아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빠른 성장은 반드시 문제를 가져온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빠르고 급격한 성장보다는 느리지만 꾸준한 성장을 추구하는 동시에,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은 가능한한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가 개방조건이 성숙하지 못하고 임기응변 능력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시아 각국이 너무 일찍 국제금융체제에 가입해 자국의 금융시장을 개방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시아 국가는 아니지만, 아르헨티나의 사례를 통해 시장자유화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15개의 투기 사건에 대한 저자의 소개 후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김태동 교수의 글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교수는 자신의 글에서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덮쳐왔던 여러 차례의 경제위기를 각각의 정권별로 구분해서 소개해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지나치게 비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김교수가 보수적인 성향의 학자인가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자세히 읽어 보니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아예 말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비판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김교수는 선성장 후분배를 구호처럼 외치면서 끊임없이 거품을 일으켜서 이익을 얻으려는 거품 세력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 재벌이 있음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읽으면서 수출에만 매달리는 경제구조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수출에 목을 맨 재벌의 이익을 늘려주기 위해 취한 정부당국의 조치들이 서민들에게 얼마나 무거운 부담으로 돌아오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해 준 15개의 투기 사례와 비교할 때 김교수의 글이 지나치게 무겁고 어렵다는 느낌이 들어 이 책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챕터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의 글을 통해 이 나라의 경제 문제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주변에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도 한 번 해 볼까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분들이 꼭 읽어 보셨으면 싶은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세계에 발을 담근 것인지, 그리고 그들이 얻은 소득이 얼마나 쉽게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거품 같은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투기의 위험성에 눈을 뜨게 되기를, 그래서 이 나라가 앞으로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과 같은  끔찍한 일들을 절대로 겪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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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영원한 안식 - 리처드 백스터의
리차드 백스터 지음, 스데반 황 옮김 / 평단아가페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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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왜 고전인가'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게 해 주는 책이었습니다. '성도의 영원한 안식'이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삶'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지만, 막상 제목을 보면서 그것을 연상하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안식'이라는 관점에서 내세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익숙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성도들이 천국에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저로서는 천국이라는 곳을 '안식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일하는 곳'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들어갔다고 해서 무조건 아무 일도 안하고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예수님과 함께 왕노릇하는(세상을 다스리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이 제게는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러한 관점에 균형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천국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어떤 일을 해야하는 곳이지만, 그 일들이 이 지상에서의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쉬운 일이기 때문에, 그 일들조차도 안식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다음에 곧바로 "내 멍에를 메라"고 하신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이 '주님 안에서 쉬는 것'의 범주에 포함된다면, '천국에서 일하는 것' 역시 '천국에서 안식하는 것'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이 땅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겨운 것인가 하는 것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세상이 이렇게 살기 힘들어 지기 이전의 에덴동산에서는 얼마나 복된 삶이 가능했는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보다 더 복된 삶을 누리게 될 천국에 대해서 제대로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천국에 대해 특별한 기대감없이 살아갈 때가 많은데, 저자는 이러한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이 책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책에는 저자가 천국에 관해 묵상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저자는 천국에 들어가서 누리게 될 복된 삶으로부터 시작해서, 천국을 잃어버린 자들이 겪게 된 비참한 종말이라던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자격, 이 세상에서 천국을 누릴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천국을 묵상해야 할 필요성과 그 방법 등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천국에 대해 계속해서, 끊임없이 묵상하라는 저자의 권면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도 하나님에 대해 끊임없이 묵상할 것을 권면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하나님 나라에 관해 끊임없이 묵상하라는 말을 들으니, 묵상이라는 것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겠더군요. 그리고 제 신앙생활에서 묵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적은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기도할 때도 그저 제 자신의 필요만을 아뢸 뿐 하나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너무나 적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묵상은 얼마나 적었을까요.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이 책을 반복해서 읽으며 천국에 대해 자주 묵상해야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어 본 책 중에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관한 모든 내용을 '천국'이라는 하나의 초점에 연결해 설명한 책은 이 책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천국과 지옥에 관한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렇게 천국을 다양한 관점에서 깊이있게 연구해 놓은 책은 정말로 처음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만난 것이 저에게는 참으로 귀한 경험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한편으로 왜 이 좋은 책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아마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저자의 책이라는 이유 때문인 것 같은데, 저 역시 '참된 목자'라는 저자의 책을 먼저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자의 책이라면 모두 다 읽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앞으로 이 책이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고 읽혀져서 천국에 대한 분명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이 땅에 많이 늘어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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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고 성도를 살리는 설교자
스티븐 스미스 지음, 김대혁 옮김 / 베다니출판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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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번역선교사가 되고 싶어 신학대학에 갔지만 막상 신학대학원에 다니고 있을 때에는 진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성경번역선교사가 제 길이 아닌 것처럼 보였고, 교회에서 사역하는 것 역시 기쁨이라기보다는 고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목사와 설교'라는 책을 읽으며 설교라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고, 그 깨달음으로 인해 평생을 설교자로 살아가기로 결단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김남준 목사님의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는 책 역시 그러한 결단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는 그런 종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을 거의 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이 책을 통해 그러한 도움을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설교학 교수님들의 추천사들이 눈길을 끌었을 뿐 아니라, 주제 자체가 참으로 마음에 와 닿았던 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목회자의 설교 사역에 적용한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의미는 '온전한 설교, 탁월한 설교를 위해 설교(또는 설교준비)에 따르는 고통'을 감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바울 사도가 말하고 있는 '사역에 따르는 고통'이 '설교자의 설교 사역에 따르는 고통'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바울 사도가 이 고통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바울 사도의 서신을 통해 상세하게 분석해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설명을 근거로 '강단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설교자가 죽어야 할 장소'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이렇게 되기 위해서 '설교자는 반드시 본문이 이끄는 설교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설교가 성경본문의 내용과 구조, 그리고 기운(spirit)이 사람들을 이끌어 말씀 속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방식,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방식이야말로 본문을 이끄는 설교로 이해되는 강해설교라고 하였습니다.

또 저자는 지겨운 설교는 기독교 설교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한 책이기 때문에, 지루한 설교는 결코 성경에 충실한 설교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설교자가 강단에서 감당해야 할 고통은 두 가지라 할 수 있는데, 그 첫 번째는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고, 그 두 번째는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설교자는 '본문이 소개하고 있는 그리스도(또는 그분의 구속사역과 연결되는 내용)을 설교하기 위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또한 '사람들이 그 본문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우뇌 성향의 설교자와 좌뇌 성향의 설교자가 각각 다른 성향으로 인해 이 일에 있어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감당해야만 하는 고통이며 회피해서는 안 되는 고통임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통을 통해 본문과 청중, 둘 다에게 복종하는 설교가 가능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설교를 하기 위해 저자는 설교에 있어서 가르치고, 묘사하고, 설득하는 세 가지 과정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이 세 가지 영역 중에서 가르치는 것과 설득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로 생각해 왔지만, 묘사하는 것은 소홀하게 대해 왔습니다. 어쩌면 애써 외면해 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언어를 다듬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며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 먹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제대로 갖추어져야 엘로컨트한 설교(효과적으로 설득하는 탁월한 설교)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자의 지적을 통해 제가 회피해 왔던 설교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또 그러한 회피로 인해 제 설교가 탁월한 설교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자가 소개해 준 조나단 에드워즈에 관한 이야기는 제게 커다란 도전이 되었습니다.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사역 초반에는 원고를 써서 들고 그대로 읽는 스타일의 설교를 했지만, 사역 후반에는 원고를 보지 않고 설교하는 스타일의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그 증거로 예일 대학의 문헌보관실에 보관되어 있는 진노한 하나님의 손 안에 이쓴 죄인들의 실제 원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는데, 저자는 이 스물 네 장으로 되어 있는 이 작은 설교 쪽지의 뒷면에 이 원고의 전체를 요약한 두 쪽 분량의 개요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소개하면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휫필드의 설교에서 영향을 받아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원고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설교하는 설교자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위대한 설교자가 자신의 설교를 개선하기 겸손히 노력했던 것을 본받아 설교 전달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무가치한 것으로 폄하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저자의 지적은 평소에 제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는데,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핑계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설교를 더 잘하고자 하는 노력'이 그저 '자신의 설교 실력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위대한 노력'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탁월한 설교를 준비하기 위한 노력에 있어 많이 소홀하고 게을렀던 제 자신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매너리즘에 뻐진 설교자들에게 커다란 도전이 될 만한 책이라 생각됩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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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숨 - 하나님의 임재를 날마다 누리는 기도의 길
데이비드 G. 베너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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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책 내용은 상당히 괜찮다. 그런데 제목은 영 아니다. 책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제목은 아니지만 핵심을 비껴갔다. 영어 원제로는 Openig to God 이다. 한글로 번역하면 '하나님께 마음 열기' 정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도'가 핵심이니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기도'라 했어도 좋을 듯 싶다. 그런데 '기도숨'이라니.. 두란노가 책팔기 싫은 모양이다.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나라도 변호해 주고 싶다. 책 내용이 제목보다 훨씬 낫다고.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므로써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내면에 충만하게 흘러 들어오게 하는 것이 기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들어오셔서 나를 변화시키는 영적 작업의 통로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생명이 나에게 들어오면 나는 변화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거룩한 독서를 통한 기도야말로 반복되는 회심을 통해 계속 거듭나고자 하나님께 자신을 열어 드리는 방편이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반복되는 회심들이 한데 모여 변화라는 전체의 과정을 이룬다는 것이다. ( -> 회심을 통해 계속 거듭난다는 말과 반복되는 회심들이 한데 모여 변화를 이룬다는 지적이 너무나 마음에 와 닿는다. 변화를 향한 내 갈망에 커다란 자극과 도전이 되어 다가온다. 저자가 말한 방법으로 기도하면 진정한 회심, 진정한 거듭남, 진정한 변화가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믿고 싶다.)

또한 저자는 기도가 행위가 아니라, 사랑 안에 있고 하나님 안에 있는 존재 양식이라 주장한다. 크리스천의 기도란 사랑이신 그 분을 사랑 안에서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며, 모든 사랑의 근원이시자 우리 존재의 근원이신 그분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이라 주장한다. 기도는 본질상 사랑하는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청하시는 사랑의 만남에 응하는 것으로써, 우리 쪽에서 주도하는 활동이라기보다는 맞장구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기도는 '동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 -> 요즘들어 내가 깨달은 것은 성경이 말하는 '행위'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결정해서 진행하는 행위가 있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반응으로써의 행위가 있다. 전자는 행위구원, 또는 율법주의와 연관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후자를 우리는 순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순종 역시 행위이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위이며,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칭찬의 조건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기도 역시 반응'이라는 저자의 지적이 내 마음에 특별히 와 닿은 이유가 바로 앞에서 말한 깨달음에 있지 싶다.) 저자는 또한 거룩한 독서를 바질 패닝턴이라는 사람에게서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저자는 바질 패닝턴이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드는 것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기도해 왔다고 소개한다. 이러한 저자의 소개로부터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통로가 기도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저자는 거룩한 독서를 통한 기도를 귀고 2세라는 수사가 정한 기도의 틀에 따라 네 단계로 소개하고 있다. 성찰하는 기도, 묵상하는 기도, 반응하는 기도, 존재하는 기도, 이렇게 네 단계이다. 성찰하는 기도는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을 알아차리는 데 초점을 둔다. 묵상하는 기도는 삶의 경험이나 도전에 관한 생각과 의문과 감상을 그대로 하나님께 가져다 하나님과 의논하는 것이다. (저자는 묵상하는 기도에 대한 설명 중에 상상을 통한 기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는데, 이 기도의 방식이 상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상상을 통한 기도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영화를 보는 대신, 나 자신이 성경을 묵상하면서 복음서의 장면을 직접 상상해 보면 어떨까? 내 마음 속에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상상해 보는 것이다. 아니 아예 그 자리에 내가 영화배우로 함께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감동을 줄 것이다. 그러한 감동 가운데 기도하게 된다면 그 기도는 얼마나 생명력이 넘칠까 싶다.)

반응하는 기도는 '말로, 찬양으로, 예술로, 손과 발로' 기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손으로 하는 기도는 섬김을, 발로 하는 기도는 순례를 의미한다. (발로 하는 기도라 했을 때 땅밟기를 말하려나 했는데 순례라고 하는 말에 감사했다. 오래전에 이상한 방식의 땅밟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기도는 관상기도를 말하는데, 저자는 '관상'이 '대상에게 말없이 열러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했다. 또한 '관상기도의 목표'가 '생각이나 말을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을 열고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라 했다. 저자는 관상기도를 다시 둘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기도'와 '향심기도'이다. 이 중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순례자의 길'이라는 책을 통해 배운 것이라 하였는데,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라는 기도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라 했고, '향심기도'는 '무지의 구름'이라는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기도라 하였는데, "내 안에 임재하여 계신 하나님과 함께 있는다. 기도 문구를 이용하여 그 자리에 머물고 그 자리로 돌아온다"라는 두 문장이 '향심기도의 핵심'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고 했다. 저자는 또한 향심기도의 신학은 '순복과 자기를 비우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다시 관상기도로 돌아가 '관상기도의 정수'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마지막 정리 부분에서 저자는 기도를 통한 놀라운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기도를 통해 상담과 심리치료를 통해서도 얻을 수 없는 놀라운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디. 과거에 영성수련에서 이루어지는 집단치유의 결과를 보면서 무척이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집단치유를 통해 치유를 경험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발견되는 기쁨은 주일 예배 후 아무런 감동없이 돌아가는 성도들의 얼굴빛보다 몇 배는 밝아 보였다. 그러나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은 그들이 얻은 기쁨은 일시적인 기쁨이며, 그들이 경험한 치유는 불완전하며 일시적인 치유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얻음으로써 일어나는 변화는 영구적이다. 물론 한 번 기도한다고 해서 완전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화의 원천이 다르다. 전자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후자는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얻는다.

그런데 기도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실제로 누리는 사람은 극소수가 아닌가 싶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단 하나다. 기도를 하지 않거나 기도의 방법이 잘못되었거나다. 내 생각에는 기도 방법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다. 기도에 관한 신학, 또는 철학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목회자들은 관상기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신비주의적이고 뉴에이지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느껴지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신비는 원래 하나님의 것이다. 사단이 하나님의 것을 흉내낸다고 사단이 흉내낸 하나님의 것을 버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단은 신비스러온 존재로 그냥 놓아두고, 하나님은 신비스럽지 않은 분으로 깎아 내리는 그들이 과연 누구의 종인가 싶다. 어떤 이들은 관상기도를 영지주의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관상기도의 방법은 결코 소수에게만 전수되는 비밀스러운 방법이 아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 저자가 소개한 이 기도의 방법을 통해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 진다면, 이 기도의 방법은 분명히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렇게 기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솔직히 저자가 '예수님기도'를 '주문기도'라 표현한 데 대해서는 거부감이 느껴진다. '예수님기도'의 기도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문'이라는 표현이 그 기도에 결코 합당한 이름이 아니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비롯해 몇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소개한 기도의 방법 가운데에는 마음에 와 닿는 것들이 많았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기도의 방법을 사용하든지 간에 하나님을 계속해서 의식하고, 그분과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러한 연결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전달받음으로써 예수님처럼 변화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앞으로 기도에 대한 생각과 방법을 저자의 말대로 바꾸어 보고자 한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어 드리고 그분을 초청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찾아오시는 그 기도의 시간을 통해 저자가 말한 것과 같은 놀라운 변화를 누리게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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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을 꼭 써야 할까? - 십대를 위한 폭력의 심리학 사계절 지식소설 3
이남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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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표지를 보고서는 혹시 만화가 아닐까 싶었었는데, 막상 표지를 넘겨보니 소설이더군요. 표지에 그려진 그림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삽화였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은 만화만큼이나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표지에 낚였다!' 싶었던 마음이 금세 풀어지고 말았습니다. 재미로 말하면 '완득이' 수준이라고 할 만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면 '완득이' 생각이 나서 항상 그 책을 중심으로 '그 수준이다, 그 아래다'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이 책도 그랬었는데 상당히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박종훈'이라는 중학교 3학년짜리 일진들의 짱입니다. 새학기가 되어 아이들 앞에서 어떻게 튀어 볼까 고민하던 주인공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비닐 가방을 가지고 등교를 하다가 태견을 가르치는 방과후 교사에게 가방을 빼앗기고 맙니다.가방을 찾으려면 태견 도장으로 오라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찾아간 종훈은 사범으로부터 한달 동안 일주일에 하나씩 숙제를 내 줄 터인데 그것을 잘 해 오면 가방을 돌려주고 더 이상 종훈에게 간섭하지도 않겠다는 약속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종훈은 사범이 내주는 다양한 숙제를 해 나가면서 자신의 문제와 직면하게 되고, 결국에는 일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사범이 종훈에게 내 준 숙제는 '왜 아이들이 폭력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지 알아오기', '[우상의 눈물]을 읽고 독후감 쓰고 토론하기', '[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을 읽고 독후감 쓰고 토론하기',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독후감 쓰기'등이었습니다. 종훈은 사범의 요구에 따라 이런 책들을 읽고 사범에게 지도를 받던 수경이라는 여학생과 함께 독서 대결을 벌이게 되는데, 그 과정을 지켜 보면서 저 역시 그 책들이 말하고자 하는 깊은 의미들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책들 중에서 [우상의 눈물]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책이었는데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회를 봐서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머지 두 권은 오래 전에 읽기는 했지만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바 없는 책들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러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범이 종훈을 비롯해 여러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설명해 준 '폭력에 대한 정의'나 '테러에 대한 정의'는 상당히 유익한 설명이었고, '케이시 헤인스' 동영상에 대한 사범의 견해라던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다루어진 내용에 관한 설명 역시 대단히 유익한 설명이었습니다. 특히 이 책을 통해 '클라라 하스킬'이라는 피아니스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정말 대단한 수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꼭 한 번 이 분에 대한 책이나 연주음반을 구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범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된 사실만으로도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더군요. 그리고 매 장의 마지막에 수록해 놓은 '생각의 징검다리'라는 항목에서 소개하고 있는 '다양한 심리이론'에 근거한 설명들도 무척이나 유익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항목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나 교사들이 꼭 알아 두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깨달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아무래도 '서열화의 폭력성'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진들이 싸움 실력에 따라 서열화를 추구하는 것이나, 모범생들이 성적에 따라 서열화를 추구하는 것이나, 결과적으로 다 같은 폭력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지적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또한 '폭력을 방관하는 것 역시 범죄다'라는 지적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와 관련된 내용을 읽는 동안 과거 '오스 기니스의 고통 앞에 서다'라는 책에서 배웠던 '결코 고통받는 자들에 대해 방관자가 되지 말라'는 교훈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요즘 청소년들의 문화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커다란 유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잘 몰랐던 일진들의 세계, 특히 여자 일진들의 세계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어떻게든 돕고 싶다는 마음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청소년 수련회에 참석했을 때 "죽고 싶은 마음 가지고 있는 사람 다 앞으로 나와"라는 강사의 말에 우루루 몰려 나가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이런 아이들을 위해 뭔가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때의 결심이 생각났습니다.

여러모로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상기시켜 준 고마운 책입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님들과 교사분들도 읽어 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됩니다. 저자가 이전에 쓴 두 권의 책도 여러 차례 여러 단체에서 '권장도서, 우수도서, 추천도서'에 선정되었더군요. 그 책들도 꼭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천합니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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