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신들의 세상 - 내 삶을 좌우하는 단 하나의 희망 찾기
팀 켈러 지음, 이미정 옮김 / 베가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우상숭배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우상숭배'란 신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을 하던 과거의 우상숭배가 아니라, 자기 내면에 내재된 욕구에 굴복해 살아가는 현대의 우상숭배를 의미합니다. 이 책의 제목에 나와 있는 '거짓 신들'이 바로 '우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무엇이 우상인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보고서 마음속 저 깊은 데서부터 '내가 저것만 가질 수 있다면 내 인생에도 의미가 있다고 느낄 것이고, 나도 가치가 있음을 알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자존심도 생기고 안전한 느낌도 가질텐데...'라고 말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바로 당신의 우상이다(26쪽)." 이 문장을 읽으면서 우상에 대해 이렇게 정확하게 설명한 문장이 또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히 "내가 저것만 가질 수 있다면"이라는 말이 굉장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 구절을 "내가 가지고 있는 이것만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있다면"이라고 바꾸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그 뒤에 이어지는 구절들도 "정말 행복할텐데"라는 한 구절로 모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붙들고 있는, 또는 목을 매고 있는 우상이 무엇인지 분명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가장 먼저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우상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을 우상으로 만들지 않고 내려 놓았던 하나의 사건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우상이 될 수 있었던 존재는 바로 그의 아들 이삭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그 명령에 순순히 따르기로 결단함으로써 이삭을 우상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왜 이삭이 우상이 될 수 있었느냐에 대해 설명하기를 그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희망, 가족들의 희망이 바로 이삭에게 달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로서는 이삭에 대해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만 저자의 주장에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시각을 통해서 자식에 대한 기대, 자식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 때문에 부모들이 자식들을 우상으로 만들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과 아브라함이 처했던 상황이 거의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에 뒤이어 저자는 우상으로 역사하기 쉬운 다섯 가지의 요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섯 가지 요소는 바로 사랑과 돈과 성공과 권력과 문화였습니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요소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성경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인물을 예로 들어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야곱과 라헬과 레아를, 돈은 세리장 삭개오를, 성공은 나아만 장군을, 권력은 느부갓네살 왕을, 문화는 요나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사랑의 우상과 문화의 우상에 관한 예로 들었던 이야기들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라헬을 향한 야곱의 사랑이 참으로 진실한 사랑이라고 생각해 오고 있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도 라헬에 대한 야곱의 사랑을 순수한 사랑으로 설교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야곱의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 아니고, 중독에 불과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이 저에게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저자의 지적이 참으로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나가 가지고 있었던 민족적 자긍심과 앗수르에 대한 증오심을 우상이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요나의 태도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우상과 관련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공과 나아만을 연결해서 설명한 것이 조금 매끄럽지 않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전혀 뜽금없다거나 마음에 거슬리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과 하나님의 씨름에 대한 저자의 해석에는 선뜻 동의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논리적인 해석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자가 우상숭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시한 방법은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원론적인 주장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우상숭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또한 하나님을 참으로 경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지식으로 깨닫는 것에 머무르지 말고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함께 모여 예배하고, 하나님을 묵상하는(역자가 이 단어를 명상이라 번역한 것이 상당히 아쉽습니다) 것을 통해 자신이 깨달은 지식을 실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것을 영적 수양(기독교에서 보통 영성수련이라고 표현하는 말을 역자가 잘못 번역한 듯 싶습니다)이라고 표현하면서, 이것도 경배의 한 형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저자의 이러한 주장을 보면서 래리 크랩이 "다른 것에 대한 중독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만 중독되고 싶다"고 말했던 것과 동일한 맥락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우상숭배를 일종의 중독이라고도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결론에 앞서 설명한 내용이 결론보다 더 의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경배는 즐거움에 넘쳐야 하고 기도에는 하나님의 실체가 생생하게 느껴져야 한다. 예수는 당신의 상상 속에서 당신의 우상보다 훨씬 아름답고, 당신의 마음 속에서 당신의 우상보다 훨씬 매력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로써 거짓 신들이 하나님으로 대체된다. 우상을 뿌리 뽑아도 그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을 심지 않으면 우상은 다시 자라난다." 그런데 여기에 이어지는 내용이 굉장히 의미심장했습니다.


"기쁨과 회개는 항상 함께 가야 한다. 기쁨 없는 회개는 절망을 낳는다. 회개 없는 기쁨은 피상적이며 진정한 변화가 아니라 일시적인 감화만 낳는다. 실제로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예수의 희생적인 사랑에 기뻐할 때 진정으로 우리의 죄를 깨닫는다. 어떤 결과가 닥칠지 두려워서 회개할 때는 우리의 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가엽게 여긴다. 두려움에서 비롯된 회개는 사실상 자기 연민이다. 두려워서 회개한다면 죄 그 자체를 미워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죄악의 매혹적인 힘도 사라지지 않는다. 죄악을 억제하는 법만 배운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죄악에서 구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알고서 하나님의 고난을 감내한 희생적인 사랑에 기뻐할 때는 죄 그 자체를 미워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어떤 희생을 감내했는지 알고 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장 확신할 때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사악한지를 깨달을 때다. 두려워서 회개하면 우리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반면 기쁨에 젖어 회개하면 죄를 미워하게 된다(226쪽)."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내용이라 분량이 많음에도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우상을 떠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이 부분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방법은 아는데 실천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보았습니다. 이제 지식이 아니라 실체를 통해 변화를 경험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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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식 2013-01-03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2013년 새해에 참 좋은 글을 읽습니다.
순식간에 책 두권(예수평전과 이책)을 읽는 듯 하여 기쁩니다.
깔끔한 요약을 읽으면서, 마치 내가 이 책을 읽는 듯한
저자의 감동을 그대로 저에게 전달 받는 느낌이 와 닿습니다.
금년에 첫 묵상 주제는 마태 5:1-16, 특별히 16절의 "이 같이" 라는 말씀과
그 뒤를 잇는 "착한 행실" 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8복은 예수님의 삶의 지표 였습니다. 물론 제자들 뿐만 아니라
지금 나에게 선명하게 가르치는 가치(똑바로 살자)의 우선순위를 가름 할 수 있는 기준이되는 지혜의 말씀 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1절로 15절까지는 머리 속에 담겨진 것이고
16절의 "착한 행실"이 곧 귀하의 마지막 문장과 일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제 지식이 아니라 실체를 통해 변화를 경험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벽두에, 좋은 묵상을 읽고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셔서....
^^

미라남편 2013-01-03 13:21   좋아요 0 | URL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서평을 꼼꼼히 읽어 주신 것도요.
제 블로그가 네이버에 있습니다. http://kjhmr.blog.me/
그쪽으로도 방문해 주셔서 귀한 만남 이어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쁘고 행복한 한 해 되시기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