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숨 - 하나님의 임재를 날마다 누리는 기도의 길
데이비드 G. 베너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결론부터 말하면 책 내용은 상당히 괜찮다. 그런데 제목은 영 아니다. 책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제목은 아니지만 핵심을 비껴갔다. 영어 원제로는 Openig to God 이다. 한글로 번역하면 '하나님께 마음 열기' 정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도'가 핵심이니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기도'라 했어도 좋을 듯 싶다. 그런데 '기도숨'이라니.. 두란노가 책팔기 싫은 모양이다.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나라도 변호해 주고 싶다. 책 내용이 제목보다 훨씬 낫다고.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므로써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내면에 충만하게 흘러 들어오게 하는 것이 기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들어오셔서 나를 변화시키는 영적 작업의 통로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생명이 나에게 들어오면 나는 변화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거룩한 독서를 통한 기도야말로 반복되는 회심을 통해 계속 거듭나고자 하나님께 자신을 열어 드리는 방편이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반복되는 회심들이 한데 모여 변화라는 전체의 과정을 이룬다는 것이다. ( -> 회심을 통해 계속 거듭난다는 말과 반복되는 회심들이 한데 모여 변화를 이룬다는 지적이 너무나 마음에 와 닿는다. 변화를 향한 내 갈망에 커다란 자극과 도전이 되어 다가온다. 저자가 말한 방법으로 기도하면 진정한 회심, 진정한 거듭남, 진정한 변화가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믿고 싶다.)

또한 저자는 기도가 행위가 아니라, 사랑 안에 있고 하나님 안에 있는 존재 양식이라 주장한다. 크리스천의 기도란 사랑이신 그 분을 사랑 안에서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며, 모든 사랑의 근원이시자 우리 존재의 근원이신 그분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이라 주장한다. 기도는 본질상 사랑하는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청하시는 사랑의 만남에 응하는 것으로써, 우리 쪽에서 주도하는 활동이라기보다는 맞장구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기도는 '동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 -> 요즘들어 내가 깨달은 것은 성경이 말하는 '행위'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결정해서 진행하는 행위가 있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반응으로써의 행위가 있다. 전자는 행위구원, 또는 율법주의와 연관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후자를 우리는 순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순종 역시 행위이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위이며,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칭찬의 조건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기도 역시 반응'이라는 저자의 지적이 내 마음에 특별히 와 닿은 이유가 바로 앞에서 말한 깨달음에 있지 싶다.) 저자는 또한 거룩한 독서를 바질 패닝턴이라는 사람에게서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저자는 바질 패닝턴이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드는 것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기도해 왔다고 소개한다. 이러한 저자의 소개로부터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통로가 기도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저자는 거룩한 독서를 통한 기도를 귀고 2세라는 수사가 정한 기도의 틀에 따라 네 단계로 소개하고 있다. 성찰하는 기도, 묵상하는 기도, 반응하는 기도, 존재하는 기도, 이렇게 네 단계이다. 성찰하는 기도는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을 알아차리는 데 초점을 둔다. 묵상하는 기도는 삶의 경험이나 도전에 관한 생각과 의문과 감상을 그대로 하나님께 가져다 하나님과 의논하는 것이다. (저자는 묵상하는 기도에 대한 설명 중에 상상을 통한 기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는데, 이 기도의 방식이 상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상상을 통한 기도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영화를 보는 대신, 나 자신이 성경을 묵상하면서 복음서의 장면을 직접 상상해 보면 어떨까? 내 마음 속에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상상해 보는 것이다. 아니 아예 그 자리에 내가 영화배우로 함께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감동을 줄 것이다. 그러한 감동 가운데 기도하게 된다면 그 기도는 얼마나 생명력이 넘칠까 싶다.)

반응하는 기도는 '말로, 찬양으로, 예술로, 손과 발로' 기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손으로 하는 기도는 섬김을, 발로 하는 기도는 순례를 의미한다. (발로 하는 기도라 했을 때 땅밟기를 말하려나 했는데 순례라고 하는 말에 감사했다. 오래전에 이상한 방식의 땅밟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기도는 관상기도를 말하는데, 저자는 '관상'이 '대상에게 말없이 열러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했다. 또한 '관상기도의 목표'가 '생각이나 말을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을 열고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라 했다. 저자는 관상기도를 다시 둘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기도'와 '향심기도'이다. 이 중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순례자의 길'이라는 책을 통해 배운 것이라 하였는데,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라는 기도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라 했고, '향심기도'는 '무지의 구름'이라는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기도라 하였는데, "내 안에 임재하여 계신 하나님과 함께 있는다. 기도 문구를 이용하여 그 자리에 머물고 그 자리로 돌아온다"라는 두 문장이 '향심기도의 핵심'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고 했다. 저자는 또한 향심기도의 신학은 '순복과 자기를 비우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다시 관상기도로 돌아가 '관상기도의 정수'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마지막 정리 부분에서 저자는 기도를 통한 놀라운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기도를 통해 상담과 심리치료를 통해서도 얻을 수 없는 놀라운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디. 과거에 영성수련에서 이루어지는 집단치유의 결과를 보면서 무척이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집단치유를 통해 치유를 경험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발견되는 기쁨은 주일 예배 후 아무런 감동없이 돌아가는 성도들의 얼굴빛보다 몇 배는 밝아 보였다. 그러나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은 그들이 얻은 기쁨은 일시적인 기쁨이며, 그들이 경험한 치유는 불완전하며 일시적인 치유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얻음으로써 일어나는 변화는 영구적이다. 물론 한 번 기도한다고 해서 완전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화의 원천이 다르다. 전자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후자는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얻는다.

그런데 기도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실제로 누리는 사람은 극소수가 아닌가 싶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단 하나다. 기도를 하지 않거나 기도의 방법이 잘못되었거나다. 내 생각에는 기도 방법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다. 기도에 관한 신학, 또는 철학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목회자들은 관상기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신비주의적이고 뉴에이지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느껴지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신비는 원래 하나님의 것이다. 사단이 하나님의 것을 흉내낸다고 사단이 흉내낸 하나님의 것을 버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단은 신비스러온 존재로 그냥 놓아두고, 하나님은 신비스럽지 않은 분으로 깎아 내리는 그들이 과연 누구의 종인가 싶다. 어떤 이들은 관상기도를 영지주의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관상기도의 방법은 결코 소수에게만 전수되는 비밀스러운 방법이 아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 저자가 소개한 이 기도의 방법을 통해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 진다면, 이 기도의 방법은 분명히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렇게 기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솔직히 저자가 '예수님기도'를 '주문기도'라 표현한 데 대해서는 거부감이 느껴진다. '예수님기도'의 기도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문'이라는 표현이 그 기도에 결코 합당한 이름이 아니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비롯해 몇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소개한 기도의 방법 가운데에는 마음에 와 닿는 것들이 많았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기도의 방법을 사용하든지 간에 하나님을 계속해서 의식하고, 그분과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러한 연결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전달받음으로써 예수님처럼 변화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앞으로 기도에 대한 생각과 방법을 저자의 말대로 바꾸어 보고자 한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어 드리고 그분을 초청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찾아오시는 그 기도의 시간을 통해 저자가 말한 것과 같은 놀라운 변화를 누리게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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