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모든 힘을 다해도 쉽지 않은 것이 비단 이 바닥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사람이란 본디 자기중심적이라서 그런지 항상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내가 실수를 해도 커버해주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직의 뒷받침 같은 건 기대할 처지가 아닐뿐더러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도 없기 때문에 일을 생각하면 늘 예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직업적인 특성이라서 더욱 그런게 아닌가 싶다.  


그럭저럭 급한 불은 끄고, 둔화된 업계의 경기 덕분인지 월요일인 오늘 오후 정도에 계획한 일을 모두 끝내고 말았다. 퇴근까지는 3-4시간 정도가 더 남은 시점이라서 뭔가 다른 일을 하려고 뒤적거렸으나 아침부터 곤두서있던 신경을 좀 끄고 싶었기 때문에 노닥거리면서 40대의 귀중한 한 시간을 그렇게 더 늙어버렸다.  그러다가 뭔가 새로운 자극을 받고 싶었던 기분에 남은 시간동안 읽을 책을 찾았는데, 그것이 돌아가신 구본형선생의 '일상의 황홀'이란 책이다. 


뭔가 의미있는 글을 찾으려는 마음이 앞선 탓이었을까, 그러나 독서는 생각만큼 즐겁지 못했고, 주로 예전에 읽으면서 밑줄을 친 부분을 중심으로 그렇게 금방 한 권을 읽어냈는데, 문득 채우는 독서가 아닌, 이제는 비워가는 의미로 책을 대해야할 시기가 온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무슨 개똥철학과 소주마시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엇을 찾기 위한 독서는 이제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책에서 길을 찾는 건 30대가 마지막이란 그런 의미. 40대엔 더 이상 무엇을 배우기위해, 준비가 부족해서 등등이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그런 비슷한 걸 갑자기 생각한 것 같다.  그것이 이 책을 처음 읽었던 30대 중반과는 다른 느낌으로 40대 초반의 독서로 남은 것 같다.  이제는 여유를 갖고 매사에 임할 나이도 되어가는데,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더 성질이 급해지고 다혈질로 바뀌어가는 것 같다.  좀더 차분하게 산처럼 진중해져야할텐데.  정신이 젊은건 좋아도 man-child로 남는건 싫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범위는 무척 넓은데 주종인 SF를 비롯해서 다양한 에세이, 과학서적, 입문서, 추리소설, 거기에 성서까지 건드리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는 이 위대한 작가의 책은 번역서든 영문서적이든 크게 겹치지 않는 수준에서는 가능하면 모두 구하고 있다. 어린 시절 소년소녀문고의 축약본으로 읽은 그의 책을 찾아서 원어로 모두 읽었고, 예전에 구한 Foundation시리즈도 몇 년전에 완결본으로 나온 국역본을 사서 잘 모셔두고 있다. 언젠가 읽을 날을 기다리면서 마치 좋은 와인을 묵히고 있는 듯, 그렇게 함부로 열지 못하는 맘이다.  '영어 이야기'는 자투리테마로도 얼마든지 즐거운 읽을꺼리를 만들어내는 아시모프의 실력을 유감없이 볼 수 있었던 책으로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끝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주제들로 가득했다.  그리스신화에서 시작된 유럽의 문화가 로마의 라틴어문명을 거쳐 로망스언어권에 남아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었는데, 익히 알고 있었던 어원 외에도 이 책에서 처음 본 이야기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아는 것들을 다시 보는 수준을 넘어 은근한 공부가 되었다고도 생각한다.  물론 이 책에서 읽은 이야기는 흥미진진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요즘 세태 + 내 나이가 겹치면 완전 아재투머치토커로 등극할 조건을 갖추는 셈이니 속에만 고이 간직하고 들을만한 circle이 아니면 함부로 싸지르지는 않을 생각이다.  아시모프의 책은 구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읽을 수 있을 때 모조리 하는 것이 좋다는 건 변함없는 생각이다.


츠바이크의 책을 여러 권 사들여 모아둔 덕분에 아직도 읽을 그의 책이 여러 권 남아 있다.  '마젤란'의 이야기를 보면 인생이 참 무상하다는 생각도 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신의 섭리'나 '도의' 같은 것도 냉정한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생각도 했다.  갖은 역경을 이겨낸 끝에 어이없는 싸움에 말려 죽자마자 개판이 된 그의 team은 결국 스페인에 귀환할 당시 정말 공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그저 살아남은 것이 덕인 자들이 모든 걸 차지한 막장코미디 같았다.  냉정한 서술이 돋보이는 책.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는 칼뱅의 무시무시한 공포정치에 맞선 시대적 양심을 다뤘는데, 내가 개신교도가 아니라서 그런지 루터나 츠빙글리 같은 초기의 개혁가들보다 더 높게 평가되는 칼뱅의 위업(?)을 이해할 수 없다.  원체 비판적인 사람이라서 가톨릭이든 불교든 나쁜건 나쁜거다라는 자세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칼뱅은 정말 개막장같은 종교독재자였고 신앙의 자유를 위해 들고 일어선 끝에 그 자유를 실행할 힘을 쟁취하자마자 모든 자유의 불을 꺼뜨린 (츠바이크의 표현) 광신적인 독단과 독선의 소유자였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무척 새디스틱한 경향의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가 보인 형벌의 성격과 강도 또한 무시무시했다.  이 희대의 종교살인마를 신주단지처럼 떠받드는 일련의 행태는 기괴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지금 나의 마음이다. 끝내 살아서는 복권되지 못한 시대의 양심들에게 건배라는 지금의 말이 위로가 될까??  자기가 살던 시대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그 자신에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상위 1%가 결국 친일파의 후손들, 그리고 군사정권의 부역자들이라는 현실이 새삼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강의를 그대로 책으로 엮은 걸 덜 좋아한다. 책으로 쓰여진 글과 강의를 그대로 글로 엮은 건 형식만 같을 뿐이지 완전히 다른 종류라고 보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강연이나 대담집을 엮은 책은 늘 그저 그렇다.  비록 별은 많이 매겼지만 (사실 내 별은 큰 의미가 없다만) 전에 읽은 그의 서평집만큼 임팩트가 있게 다가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워낙 탁월한 강연, 강의, 해박한 지식, 그리고 신선한 관점이 맘에 들었기 때문에 읽으면서 다뤄진 작가들의 책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다행히 도스토옙스키도, 톨스토이도, 조이스도, 로렌스도, 체홉도 조금은 알고 있는 작가라서 어느 정도 말하는 걸 알아들을 수 있었던 덕분이기도 했다.  그래도 책의 호흡이 적당하지는 않았던 듯, 열정적으로 다가와주지는 않더라.  YouTube에서 찾아본 강의스타일은 조금 의외.  로쟈선생의 서평모음집을 기다린다.



중국하면 고전, 고전하면 중국을 넘어, 중국의 현대소설작가들이 상당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현대문학에 대한 관심도 세계적으로 높아진 건 그간 높아진 중국의 경제적 위상이 큰 이유라는 생각을 아직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한때 서구권에서 일본문화가 아시아의 대표인듯 부상하던 시기가 90년대 초반까지 피크를 치던 일본의 경제부흥시절이었던 걸 생각하면 관련성을 완전히 부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원래 문화적인 자산이 풍부하고 땅이 넓으며 물산이 풍부했고 사람이 많은 나라의 잠재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그간 읽은 위화, 모옌, 쑤퉁 등 유명한 몇 작가들의 성공이 단순히 국가의 팽창을 등에 업었다고 보는건 역시 무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간 등한시했던 중국의 현대소설 - 사실 존재를 안 것도 비교적 최근 - 은 꾸준히 읽어갈 대상이다.  요즘 중국의 SF도 상당히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여러 가지로 부럽다.  얘기가 사잇길로 빠졌는데, 이 책은 '선봉파'라는 ("선봉파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출연한 실험정신과 탐구정신으로 무장한 일련의 젊은 작가군을 일컫는 말이다"라고 어디엔가 나와있다) 이들의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의 책을 사면서 함께 구했다.  


책을 읽는이, 쓰는이 모두 그 시야를 넓게 갖고 깊이 있는 글을 마음 속 깊은 울림으로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1월 중으로는 바쁜 일이 대충 마무리가 될 것 같으니 이제부턴 밀리지 않도록 다시 맘을 다잡을 것이다.  일을 주도적으로 가져가지 못했고 다른 외부요인과 겹쳐 2017년은 한 해를 슬럼프속에서 보낸 것 같다.  2018년도 외부요인은 크게 나아지지 못할 것이니 결국 이런 시기에는 바깥을 보지 말고, 시선을 내부로 돌려 당장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으로 불기운을 쏟아내야 탈이 없다.  그렇게 다진 힘은 언젠가 다시 바깥으로 뻗어나갈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기에.  이런 말을 하기엔 좀 늙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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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1-30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이 <너의 운명을 달아나라>보다 조금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을 훑어봤는데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다룬 5강에 현대미술을 언급한 내용을 보면서 ‘이 책, 한 번 읽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transient-guest 2018-01-31 05:07   좋아요 0 | URL
알듯 말듯 했습니다. 기존의 평론과는 좀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것 같았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