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로] 













산시로라고 하면 난 우선은 '스가타 산시로'를 떠올린다.  스가타 산시로는 메이지 시대, 강도관 유도의 초창기, founder 가노 지고로의 수제자들 중 한 명으로서 '산폭풍 = 야마아라시'라는 기술로 유명했던 사이고 시로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의 이름이자 주인공이다.  예전에 한번 다른 출판사의 번역으로 나온 [산시로]를 읽었고, 이번에 조금 더 정성들여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산시로]하면 '스가타 산시로'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흔히들 젊은 시절 한번쯤은 산시로가 되어봤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산시로가 겪는 일이나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에 대한 묘사는, 비록 지금과 100년 이상의 시간차이가 나긴 하지만, 보통의 20대를 보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20대의 순수함과 풋풋함에서 오는 미숙함이랄까, 경험의 부족에서 오는 용기 내지는 timing을 잡아내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요즘은 인서울 학교는 대부분 수도권에서 가지만, 과거 지방에서 상경한 지역수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도 있고 해서, 두 번째의 독서는 더욱 친근하게 다가와 주었다.


산시로의 일도 그렇고, 다른 등장인물도 flow에서 큰 무리가 없는데 소세키의 여성 캐릭터는 왜 항상 연애와 결혼을 분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히 산시로와 썸을 타는 것 같았었는데, 소위 좀더 그럴듯한 상대가 갑툭튀해서 결말을 지어버리는 건 다른 작품들에서도 비슷하게 차용된 것 같다.  어떤 분의 글에서도 이런 부분, 그러니까 신여성에 대한 소세키의 반감(?) 같은 것을 이야기한 것을 보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도, 마음이 지향하는 바와 머릿속에 들어있는 현실 사이의 묘한 괴리감 같은 것은 느껴진다.  아직은 자유연애가 성행하기 이전의 시대였고, 여자팔자는 능력보다는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던 때였음을 감안해야 하지만, 어쨌든 산시로의 썸은 그렇게 끝나버렸으니까.  


책이 나에게 가장 잘 다가오는 순간은 아마도 내가 겪었던 일이나 현재 느끼는 것에 투영이 되어 격한 공감을 느끼는 때가 아닌가 하는데, 그런 점에서 나도 분명 한때는 산시로였으리라.   


[그 후]













[그 후]가 [산시로]의 다음편이라고 해서 계속 산시로를 찾아보다가 이름이 바뀌었거나 성을 사용한 것인가 싶어 다시 한참 책을 뒤져보았다.  그러다가 온라인에서 간략한 reference를 찾고나서 이 바보같은 짓거리를 멈출 수 있었다.  


내용의 모티브가 [산시로]에서 이어지는, 전기 3부작의 두 번째 이야기인 것을 그렇게 험한(?) 경로를 통해 알고 나서, 다시 열심히 읽어가면서 왜 이 책이 [산시로]에서 이어지는지 생각해보았다만, loose하게 이어지는 점 왜엔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산시로]의 이야기가 20대 초반의 대학시절을 다룬 것이라면 [그 후]는 말 그대로 사회에 나온 사람들의 삼각관계가 된다.  


좋아하는 여자는 친구의 아내가 되어 있다.  그것도 나의 중매로.  그런데, 실제로 이 여자와 썸을 타던 건 나였다.  게다가 이 친구놈은 결혼 후 취업자리가 잘 풀려 사는 듯 했는데, 알고보니 파락호가 되어 있다.  말하지는 않고 있지만, 친구의 아내가 사는 모습이 안쓰러워 이리저리 돈을 변통해주면 다른 것에 써버리고 만다.  겨우 다시 취직은 했는데, 사는 모습도, 부부사이도 그냥 그렇다.  "내"가 처음에 신경쓰는 건 부부가 잘 살았으면 하는 것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녀"가 좀 잘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절, 아니 소세키가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의 문제는 종종 '돈'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또한 부자인 아버지로부터 생활비를 타 쓰는 룸펜이다.  그런 주제에 서생과 하녀까지 두고 살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아버지가 찍어주는 여자와 결혼해야 하는 것이다.  제사에 쓰는 소처럼 정략결혼을 위해서 키워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나"라는 "소"가 갑자기 제물로 쓰이는 것을 거부하고 "사랑"을 하려고 한다.  사회통념상 문제가 있고, 친구라는 놈을 생각해도 그렇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역시 "나"에게는 땡전한푼이 없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오까네가 문제다.  


여러 번 고민도 하고, 형과 아버지와 형수와 이야기도 해보고.  하지만 결국 "나"는 맘이 가는대로 해야겠다.  게다가 "그녀"와의 마음도 확인을 했고.  그런데 방법이 좀 묘하다.  친구에게 가서 결심을 통보하다니.  


후회가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과거를 생각하면 이런 저럼 분기점에서 다른 행동을 취했었어야 했다는 건, 지금에서, 그간의 경험과 생각이 쌓였기에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과거에 취했었어야 하는 행동을 지금으로 가져와버리는 것에서 현실의 문제가 발생한다.  모두에게서 단절되는 것으로 말이다.  "그녀"는 얻었으되, 다른 걸 다 잃어버린 삶.  그 삶이 행복하리란 보장은 없다.  맘대로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문]













이제 드디어 3부작의 마지막이다.  [문]에서의 이야기는 [산시로]에서 [그 후]로 이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에서 [그 후] 다음의 일을 다룬다고 이해된다.


부부의 과거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뭔가 안좋은 일을 통해 맺어진 듯한 이야기는 대화나 설정에서 가끔씩 나오는데, 여기서 마치 [그 후]의 "나"와 "그녀"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사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한국의 멜로드라마 같은 [그 후]의 격정(?)과 모든 것을 던져버린 사랑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 이제 이 부부는 그렇게 세월속에서 다른 모든 것과 단절하고 가난하게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특별한 건 하나도 없고, 여전히 돈도 없고.  "그"에게는 아무런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원래 재산이 없지는 않던 집안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숙모가 다 가져가버렸고, 그 조건으로 뒤를 봐주던 동생은 재산이양이 다 끝나고 바로 cut-off되어버린다.  


마치 사랑의 흔적과 세월의 정만 남은 듯한 부부의 모습에서는 [산시로]의 가슴 설레이는 풋풋한 썸도, [그 후]의 애절한 사랑도 느껴지지 않는다.  함께한 세월에서 얻어지는 그것이 사랑을 대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이런 경우 "애"가 있으면 그럭저럭 살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는 옵션이 아니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결국은 "애"는 가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인생의 변화는 더 이상 추구할 수 없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서서히 희미해지는 사랑을 잡아줄만한 것 또한 조금씩 사라져갈 것이다.  "정"이 "사랑"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문]의 다음 이야기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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