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lando, FL에서 9-11이래 최악의 본토테러가 터졌다.  하필이면 LGBT를 타깃으로 하여 300여명이 모여있는 클럽에서 총기를 난사했고 50명 사망에 53인 부상으로 현재까지 알려져있다.  범인은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사살됐는데, 아프간계 미국인으로 보도되고 있고 범행을 시작한 후 20여분 후 911에 전화해서 ISIS추종자임을 밝혔다고 한다.  우리 조상님들이 일제와 싸울땐 가급적 상징적이고 센놈을 골라 싸움을 걸었던 것을 기억하는데, 이놈들은 꼭 약자나 사회적인 소수자를 타깃으로 한다. 미국이 그간 중동의 정치-경제에 깊숙히 관여한 패악질도 알고, 중남미에 끼친 해악도 안다만 이런 목불인견의 테러라니.  누가 더 나쁜걸까. 


[건곤불이기]라는 다소 희안한 제목은 아직도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다. 역시 한국신무협의 특징이라면 특징인 loose한 인과관계나 깔끔한 사건의 마무리가 아쉽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꽤 재미있게 읽은 책.  이런 책은 보통 한 시간이면 한 권을 읽을 수 있으니까, 권수만 늘어날 뿐, 의미는 1/4정도로 봐야한다.  스토리의 거의 반 권 이상을 주인공을 숨기고 세월을 보내는데, 보통 주인공은 처음부터 '내가 누구다'하는 수준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 무협소설에서 이는 나름 신선하다.  약간의 기연을 얻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바로 고수로 성장하지 않는 점도 좋았고, 세가나 무가출신의 주인공다운 인간이 아닌, 소박한 객잔의 아들내미가 고수로 성장하는 모습도 좋았다.  무술의 묘사 같은 건 좀 떨어지는 편이고, 굳이 가자면 고룡처럼 환상적인 무공표현을 좋아하는 듯, 검강이나 검망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펼쳐지는 주술에 가까운 무술과 함께 강호의 2-3류에 해당할 듯한 무예가 함께 섞이는 듯.  여기에 객잔의 아들답게 요리의 이야기도 나오고, 나쁜 등장인물들은 적절하게 벌을 받기도 하는 등 중간중간에 속이 시원한 결말도 좋다.  다만 복잡한 인과관계나 마음의 얽힘과 끊어짐에 대한 전개와 묘사는 좀 많이 부족했기에 기왕에 다시 나오는 책이라면 이런 부분을 조금 더 보강하면 좋았을 것 같다.  PDF로 본 수많은 한국과 중국의 무협지에 포함되지 않았던, 처음보는 책이다.  고룡이나 와룡생, 그리고 양우생의 작품들도 좀 다시 나와주면 좋겠다.  어떤 기연을 얻어야 [다정검객무정검]을 책으로 만나볼 수 있을까?


능청스러운 세설의 대가 빌 브라이슨의 또다른 책이다.  지금까지 간간히 구해서 읽은 이야기에서 그의 어린 시절의 전부였던 Des Moines, Iowa를 주무대로 펼쳐지는 미국의 마지막 good old days라 할 수 있는 1950년대의 좋았던 한 시절의 이야기다.  흑인인권이나 사상의 자유에 있어 암흑기와 다름없던 이 시기는 하지만 많은 백인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메리카제국의 last great period로 인식되고 있다.  그럴 수 밖에.  51년인가를 기준으로 세계 부의 95%를 직접 생산하고 소유했던 미국인들은 당시 90%이상이 냉장고를 갖고 있었고, 모든 집에는 자동차가 한대씩 있었으면 많은 suburban 아메리칸들은 집도 한채씩 갖고 있었다.  모든 것은 미국에서 생산된 것들이었고, 워낙 다양한 home appliance들이 쏟아져나온 덕분에, 가정에서는 철마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사들여 즐겼다고 한다.  월남전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였고, 중산층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두터웠으며 고졸의 보통직장을 가진 가장은 온가족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다.  빌 브라이슨의 익살맞은 회고와 멋진 미국의 과거의 이면에는 물론 흑인을 잔인하게 린치해서 죽이고도 무죄로 풀려난 백인들이 있었고, 중남미의 정치에 깊숙히 개입해서 사회민주주의를 탄압하던 미국의 CIA와 우파정권이 있었으며, 매카시의 진두지휘하에 미국 전역을 작살낸 Red Scare의 광풍이 몰아쳤음을 담담하게 하지만 그 특유의 sarcasm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매우 특별한 시기였고, 백인 미국인들 대다수에게도 일과 휴식과 호사가 적절히 어우러진 시절이었음은 강조되고 있는 듯.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휴식과 호사 대신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벌고, 그렇게 번 돈은 물건을 사는 것으로 여유를 대체한 미국이 되어버렸고,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franchise가 점령하기 시작한 지역상권은 미국 전역을 고만고만하게 비슷한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당연히 지역상권과 지역만의 특색은 함께 사라졌고, 지금 Des Moines, Iowa는 다른 중서부처럼 쇠퇴하는 과거의 도시가 되어버렸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은 빌 브라이슨의 어조에서는 쓸쓸함이 묻어나고, 이젠 고향에 가도 고향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그의 현실은 거의 모든 개발국가의 지구인(?)들이 함께 맞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50년대는 과연 좋은 시절이었을까? 선악의 구분이 확실하고 모든 것을 흑백으로 나눠볼 수 있던 시절이었음은 확실한데.  그럼 지금처럼 다각화된 세계보다 냉전시대가 더 나은 시기였을까?  도무지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보통 그의 책을 읽으면 유쾌한 웃음이 가득했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서글픔과 약간의 분노, 그리고 지나간 한시절에 대한 상상의 향수만 잔뜩 느낀 건 이런 복잡한 마음 탓일지도 모른다.


이상북스와 저자를 스쳐간 수많은 헌책들 중, 글이 남겨진 책을 추려모은 것.  얇은 소책자정도의 양으로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 다양한 책꾼들의 모습을 추릴 수 있다.  젊은 시절이 지금처럼 취직과 서바이벌 대신 진리와 대의를 추구하던 위험하고 슬프던 때의 모습도, 누구의 말처럼 깃발은 쓰러지고 동지만 남았던, 아니 동지는 흩어지고 깃발만 남았던 한 시절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책을 선물하지 않은지도 꽤 되었다.  책을 선물하는 것이 낭만이고 가벼운 주머니로 멋진 선물이 되어주던 시절이 지나간 것이 벌써 못해도 15년은 넘은 듯 하니 말이다.  가난했지만, 당당하고 낭만이 넘치던 한 때의 모습은 역시 클리셰에 가까울 것이지만, 그래도 이젠 20년 하고도 4-5년은 더 전, 싸늘한 늦가을 누군가를 기다리던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그리운 그때의 나,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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