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이번 달은 내내 빌린 책만 읽은 것 같다.  난 책을 버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빌린 책, 산 책만 있을 뿐이다.  버린 책은 없다.  오늘은 오전 10시에 중국 TV와 전문가 인터뷰가 잡혀 있었기에 업무처리를 위해 오전 6시 반에 출근을 했다. 2시간 반 정도만 바짝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일주일간 나를 괴롭히던 업무가 간단하게 처리되었다.  역시 집중력에는 새벽이 짱이다. 


김훈이 생각나는 접근과 서술방식이다.  상당히 괜찮은 작품인데 작가가 너무 낯설다.  약력을 보면 꽤 작품이 많은데 알라딘에서 찾아지는 건 이 책 한 권이다.  집필을 전후하여 돌아가신 듯한데, 생각하면 내 독서의 세계라는 것이 얼마나 작은지 실감난다.  평생 책을 찾아 돌아다니고 책숲에서 머물더라도 못 만나고 갈 책과 작가, 이야기와 세계가 훨씬 더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성계가 무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고려땅에서 있던 몽골의 관리지역을 함락시키는 것과 아기발도, 아지발도, 또는 아키밧토로 기록에 남은 왜장과 함께 남부지방을 휩쓸던 '왜구'를 섬멸한 두 개의 큰 전쟁이었다.  이들을 발판으로 하여 중앙정부에 진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선대에 이미 고려보다는 대륙이 몽골 혹은 북방여진족에 가깝던 것이 이성계와 그의 세력이었다.  신궁으로 무명을 떨치던 그는 그렇게 두각을 나타냈고, 그의 역성혁명의 단초가 되는 위화도회군에 이르기까지 최영과 함께 고려를 시키는 양대수호신이었었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건 이성계의 모든 것을 건 '왜구'와의 난전속에서 '왕'의 자리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과 고려의 충신, 그리고 이들의 쟁패에서 이익을 취하려는 원나라와 명나라의 사신들까지 상당히 감각적인 구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아지발도로 나오는 왜장이 어떤 의미로든 고려와 관련이 있고, 남조를 계승할 터전으로 고려정복을 꿈꿨다는 건 어디까지 근거가 있는 이야기일런지.


오쿠다 히데오가 생각난다.  따뜻하지만 작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춰볼 때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해피엔딩과 나름대로 풀려가는 삶의 모습이 무척 재밌게 책을 읽으면서도 선뜻 이야기속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방해했다.  나이탓도 있다.  각자 힘든 인생을 더 힘든 수렁속으로 빠뜨리고 나서도 뒷수습이 되어 하나씩 일이 잘 풀렸다는 결말을 볼 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면서, 아니 그럴 수가 없다면서 부정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열 살은 더 먹어버린 기분이다.  일부 작가들이 보여주는 가벼운 이야기의 패턴이 여기서도 나타나는데, 읽긴 쉽지만 덕분에 소설의 문체가 블로그에 올린 개인의 창작소설같이 느껴진다.   





[도시해킹]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도시 곳곳을 몰래 누비는 탐험가들의 이야기.  현대의 도시인들은 자유롭게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온갖 제약과 법률 탓에 만들어진 정원 같은 곳에서 비용을 지불하면 얻어지는 오락을 즐길 뿐이며,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맛보고자 하는 불특정 소수가 세계곳곳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모든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 잊혀진 곳이나 접근이 금지된 곳의 내부를 돌아다니는 이야기.  그리고 이들의 철학.  그런데, '지금'이라는 시기, 그리고 '나'라는 인물이 합쳐져 그리 흥미를 갖지 못해서 읽다가 말았다.  빌린 책은 이렇게 읽다가 마는 경우도 있구나 싶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샀더라면 어떻게든 다 읽었을 것을.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도 마찬가지로 사진을 좀 보다가 말았다.  전혀 공감할 수 없었던 여행도 그랬고, 글쓰는 사람의 여행기라고 하기엔 뭐랄까, 많이 부족하게 느꼈다.  위키피디아의 정보와 사진을 섞고 약간의 감상과 신변잡기의 일화를 더하면 이 정도가 나올 것 같다.  이제 슬슬 남의 여행을 들여다보는 것에 지친 듯. 일년에 한번보다는 더 자주 여행을 떠나고 싶다.


한국의 작가들이 쓴 아기자기한 추리소설단편을 모은 책. 지금 찾아보니 매년 나오던 것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김성종, 이상우 작가는 나도 이름을 들어봤고, 다른 분들은 생소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결말에서 반전을 노리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던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계속 외국작가들이 쓴 외국의 이야기를 보다가 한국을 무대로 한 소극들을 보니 새삼 반가웠다.  이야기는 대부분 소소하고 대단한 기승전결은 따로 기대할 수 없다.  한국만의 정서에 맞춰 사회적인 주제나 한국의 풍토에서 나오는 창작이 더욱 활발하게 발전하면 좋겠다.  비록 창작을 장려하는 시대도 아니고, 말 한마디, 글 한글자로 갑자기 세무조사를 받거나 일본의 표현 그대로 요시찰 인물이 될 수도 있는 시절이지만, 그보다 더 못한 제국주의시절에도 일본의 추리소설이 꾸준히 발전해왔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이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김진명씨도 그렇지만, 국정원이나 안기부는 그만 빨아주는 걸로.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심하니까.


이 책 역시 공공도서관이 아니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작품이다.  독일의 작가가 썼고, 미국과는 또다른 서양문명국가인 독일의 정서를 바탕으로 모티브를 잡았기에 더욱 재미있게 읽었다.  시작에서는 뭔가 위기의 중년부부 또는 부인네가 자아를 찾아가는 소설인 듯하여 중간에 덮으려고 했으나 갑자기 등장한 마녀의 저주로 온 가족이 엄마는 뱀파이어, 아빠는 프랑켄슈타인, 딸은 미이라, 그리고 아들은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부분에서 흥미지수가 급상승한 덕분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이들 넷은 보통 서양의 근현대문화의 호러물/괴기물에서 다뤄지는 사대천왕(?)과도 같은데, 여기에 늪지의 괴물과 투명인간을 더하면 한때 헐리우드에서 가장 핫했던 괴기물의 단골들이 모두 갖춰진다고 보겠다.   


다시 한 주를 열심히 달리면 2016년의 반을 채우는 6월이 시작된다.  엘니뇨로 인해 여름날씨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기관지염을 동반한 앨러지와 감기를 달고 사느라 잠이 부족한 것이 힘든 월요일이다.  어쩌면 병원에 가봐야할 지 모르겠다.  이제부턴 관리를 잘해주지 않으면 조금씩 고장이 나는 나이의 시작에 들어선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한 글자라도 더 읽고, 더 움직이고, 사색하고 열심한 삶을 살아야  이 담에 후회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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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독서 2016-05-24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골무사 이성계!
아는 사람만 아는 재밌는 소설책이죠.

transient-guest 2016-05-24 13:19   좋아요 0 | URL
네. 이거 은근히 물건이더라구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살 생각입니다.

cyrus 2016-05-24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새벽에 독서하는 일이 힘들어졌어요. 잠이 옵니다. ㅎㅎㅎ 십년 전에는 밤 새는 일 거뜬했는데, 나이 먹는 일의 허무함을 새삼 느껴봅니다.

transient-guest 2016-05-25 01:32   좋아요 0 | URL
밤새 뭘 하는 건 정말 힘들죠. 2-3시가 넘어가면 머리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아요.ㅎㅎ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떨어지는게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는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은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