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추리소설은 서양의 추리소설과는 또다른 맛이 있다. 그로테스크한 디테일이나 약간의 SF적인 요소가 가미된 요즘의 작품들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지만, 일본의 추리소설하면 역시 조금 지난 예전 작가들의 작품이 역시 깊은 맛을 낸다.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마쓰모토 세이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회파 작가인데, 16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썼으며, 사회적인 의식도 상당한 듯 하다. 일본의 731부대의 만행을 파헤친 소설로 당시 꽤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직접 합창단을 조직하여 공연을 한 적도 있다고 하니,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일본의 작가라고 생각된다.
이번에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증명 3부작'을 구해서 읽었다. 이들 중 한 권은 동서미스터리문고의 역본으로 읽었었는데, 일본판 중역을 잘 하는 출판사라서 그런지 번역은 꽤 매끄러웠던 것 같다. 굳이 한 권을 빼놓고 사는 건 좀 그래서 3부작을 모두 구했고, 번역이가 책 디자인 모두 맘에 들었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각각 '인간', '야성', '청춘'의 증명으로 구성된 이 3부작은 각각의 테제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허무하기도 하고, 권선징악의 요소도 보이며, 비극적인 결말도 사용되는데, 각 테제에 걸맞는 결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보니 그의 작품은 '고층의 사각지대'도 읽었던 것이 기억난다.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듯 '수사는 발로 뛰면서 하는 것'이라던 고참형사의 말도 생각이 나고, 전화번호와 통화기록을 일일이 사람이 대조하던 모습이 새삼 요즘과 다른 모습이라서 기억에 남는다.
시리즈의 첫 번째, '인간의 증명'에서 던지는 질문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정도로 해석된다.
미군정 시절, 여인을 희롱하던 군인들을 말리다가 맞아 죽은 아버지, 그 아버지를 모른체하고 도망친 여자, 그 트라우마를 갖고 자란 아이는 형사가 되어있고. 우발적인 교통사고를 내고, 희생자의 시신을 유기한, 유명한 아동심리작가인 엄마와 정치인의 아들. 죽은 희생자를 찾는 남편과 내연남. 그리고 길거리에서 칼에 찔린 채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던 흑인남자. 미국에서 온 이 흑인남자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는 NYPD 형사.
독자에게 모든 것을 제시하고 함께 사건을 따라가는 형식, 그러니까 전통적인 brain game으로 독자에게 도전하는 방식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흐름을 따라가면서 연결고리에 집중하는 재미가 있다. 모든 것은 여자의 과거를 찾는 것에서 해결되고, 그 아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좀더 곁가지로 제공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루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증명'이 무엇인지...'모정'도 '부성'도 모르겠고, 여기서 가장 인간다워 보이는 건 엄정하던 시절 군인들을 말리다가 죽은 '아버지'정도.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시원한 결말보다는 끝이 찝찝한 느낌이다.
어느날, 한 마을의 사람들이 몰살당하는 사건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몇 년 후, 보험 외판원과 함께 살고 있는 유일한 생존자인 소녀. 여기에는 주변의 마을을 손에 쥐고 있는 집안과 야쿠자의 유착관계, 또다른 살인사건 등 다양한 일들이 어우러져 있다. 결말은 의외의 반전이 있는데, 역시 사건상으로는 쉽게 유추할 수 없고, 독자에게 clue가 주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다. '야성'에 대한 '증명'을 이들 사건으로 설명하는 건 조금 무리.

다 읽고 나면 마치 청춘은 무지와 결벽, 그리고 무모할 만큼 순수한 열정이나 증오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 같다. 적당한 경험과 세월의 연륜이 쌓이지 않은 순백의 모든 것들로 여럿의 삶이 이상하게 꼬이고 뒤틀린 끝에 맺어지는 결말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 청춘의 순수함 그 이면의 열정, 어떤 형태나 방향으로든지, 꼭 긍정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같다.
마중물을 부어가고 있으나 책읽기가 쉽지 않은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출장도 다녀오고, 회사를 경영하면서, 일을 하고, 문제가 생긴 걸 급하게 처리하고, 그러면서 장기적인 계획에 따른 구상을 실행하는 것까지 모두 내가 처리하는 일이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지난 주 부터는 계속 골치아픈 일이 생겨서 맘이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열심히 수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