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을 일단 시작하면 하루에 다 읽게하는 신비한 마법의 추리소설이 아닌가 싶다. 애거서 크리스티도 초기에는 굉장한 속도로 읽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분명히 이 소설이 나를 매혹시키는 남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마도 중세, 수도원, 약간의 낭만, 지금과는 다른 법과 도덕, 그리고 정의의 개념, 이런 것들이 아닐까? 게다가 주인공인 캐드팰 (이건 사실 캐드파엘이라고, 파와 엘을 좀 빠르게 읽으면서 넘어가지만, 그렇게 번역되어야 맞다고 생각한다만) 수사는 무엇인가 신비스러운 구석이 넘치는 장년의 수도사인데, 딱 그 나이 또래의 숀 코너리+brain을 연상시킨다. 정말이지 일단 앉아서 책을 펴고 나면, 계속 그 생각만 나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깊은 추리와 허를 찌르는 결말 덕분에 이 시리즈를 계속 달리고 있다. 같은 정성이었으면 2016년이 오기 전에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완주했을 것인데.
죽을때까지 편하게 수도원에서 머무는 것을 조건으로 전재산을 기부한 사람이 하필이면 캐드팰 수사가 만든 파스(?) 같은 약 - 오직 피부에 바르고 마사지하는 용도의 - 이 들어간 음식 - 이건 또 부수도원장의 특식을 나워준 - 을 먹고 죽는다. 모티브가 분명한 사람이 있고, 용의자로 지목되는데, 무죄추정원칙보다는 일단 잡아놓고 심문하고 고문하여 자백을 받아내던 시절이라서, 캐드팰 수사는 간단하 추리 끝에 일단 용의자를 피신시키고 나름대로의 추리에 들어간다. 살해된 사람이 죽으면 이득을 보는 party가 셋, 이들 중 쉽게 용의선상에서 제외되는 party가 둘이라서 나조차도 꽤 쉽게 범인을 찾아낼 수 있었지만, 이 책의 반전은 그것이 아닌, 캐드팰 수사가 나름대로 행사한 정의에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이 시대의 수도원은 농지와 목초지, 그리고 강이 딸린 장원을 소유하고 여기에 생기는 모든 수입과 함께, 주기적으로 서는 장터에도 이런 저런 삥(?)을 뜯었던 것 같다. 물건을 하역하면서, 선적하면서, 장터를 사용하면서, 등등의 명목인데, 이를 둘러싼 마을과의 갈등에 복잡한 왕국의 정치적인 상황에 따른 상인/세작들의 암약, 그리고 이것을 오로지 사적인 이득을 위해 이용하려는 사람의 음모속에서 두 명이 연달아 살해된다. 이번에도 의혹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이자의 결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사람, 정확하게는 '칼'이 살해된다. 살짝 모호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칼'이 살해될때까지는 범은을 유추해내기 어려웠던 작품이다.
책 표지에 보면 순서와 상관없이 읽어도 좋다고 소개하지만, 정치적인 배경이나 상황을 장치로 사용하기 때문에 순서를 그렇게 무시하면 좋지 않다고 본다.
정민 교수가 쓴 '책벌레와 메모광'도 즐겁게 읽었는데, 조금 생각해보고 글을 남길 예정이다. 여기에 '스토너'는 아직도 글을 쓰기 힘들고, '마션'은...써야하는데, 역시 미루고 있다. 그래도 읽지 않고 미루는 것보다는 후기가 밀리는 편이 훨씬 낫다. 12/31/2015. 이번 해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