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이 깼다가 운동을 가려고 준비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바로 잠이 오지는 않아서 기간 붙잡고 있던 '종이달'을 다 읽었다. 이 책도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소개를 받았는데, 은근히 한 두 권씩 이렇게 구하는 책도 있는 것 같다. 가끔은 조금 나와 맞지 않는 책도 있지만, 대체로 좋은 책들을 재미있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동진 DJ는 여러 모로 방송에 경험이 많아서인지 진행도 매끄럽고, 팟캐스트보다는 라디오를 듣는 느낌이다. 상업성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참 좋은 방송이다. 정치적인 지향점이 뚜렷한 다른 팟캐스트들도 듣고 있는데, 이와는 별개로 아슬아슬하게 민감한 사안들은 흘려보내면서도 아주 무시하고 지나가지는 않는 노련함까지 맘에 든다.
한 사람의 인생이 꼬이는 시점이 어디서부터일까? 대개는 어떤 하나의 큰 사건을 기점으로 생각하게 마련인데, 이 책을 읽다보면 매순간 고비마다 조금씩 더 수렁으로 빠져든 리카는, 그렇게 조금씩 파국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물론 몇 가지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있긴 하다. 연하의 남자를 만났고, 이 남자에게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 지점, 그리고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한 지점, 이 두 개의 큰 시발점이 아니었다면 비록 바람을 피운다던가 다른 말썽을 부렸을지라도 적당한 시점에서 끝이 났을 것이다. '세세한 사건 하나'씩 그렇게 조금씩 만들어진 결과가 거금횡령, 그것도 재투자를 위한 것도 아니고 고작 젊은 애인의 물주노릇을 하면서 향락에 빠진 댓가로 말이다.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기는 했을 것이다. 리카에게 조금만 더 따뜻하게 대해주고, 조금만 더 그녀를 인정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삶의 의지도, 능력도 없지 않았던 리카였으니까, 충분히 이상한 일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돈을 다루는건 늘 유혹과 싸우는 일인데, 요즘같은 디지털시대에도 이런 횡령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90년대 아직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던 무렵, 노인들을 속이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등장인물의 삶은 마치 리카의 다른 면면같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워낙 리카의 전락이 무겁게 다가오는 바람에 그냥 이야기로만 남았다. '종이달.' 의미를 알고 나면 참으로 절묘한 제목이다.
점점 더 기묘한 모험과 추리, 그리고 너무도 야만적이었기에 도리어 가식적이나마 종교적인 가치와 법칙을 내세우던 시대의 이야기에 빠져들어가고 있다. 오비 완 카노비가 light saber를 꺼내들면서 'weapon for a more civilized time'이라는 대사를 읇조리는 것을 듣는 느낌으로 책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두뇌싸움과 반전을 즐길 수 있었다. 추리는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군데군데 뿌려진 단서들을 하나로 모을 수는 없었지만, 논리적으로 큰 무리가 없는 전개라서 속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비워진 왕권을 둘러싼 귀족들간의 싸움에서 발생하는 이 재미있는 추리활극은 역시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밖에 없었는데, 고작 엊그제 시작한 이 시리즈가 벌써 3권째를 향하고 있다. 총 20권이라서 지금부터 슬슬 아쉬워지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쓰레기들에 대한 이야기. 3.1혁명 이후 수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음에 따라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는 대한민국 건국, 그리고 해방 70년을 넘어가는 이 시점에도 대한민국의 요소요소에는 친일파들의 독수가 파고들어 있다. 이들은 자국과 민족의 이익과 부합되기는 커녕, 정 반대로 중국이나 일본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라 꾸준이 대내외적으로 대한민국의 고대사를 축소해나가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교과서 국정화의 숨은 세력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료로 사례로 사실로 논박을 하면서 풀어가는 이들의 범죄행각은 계속 이 책을 읽는 내내 화가 나게 했는데, 안타까움 이상의 증오가 피어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덕일 소장을 비롯한 주체적인 역사연구에 재를 뿌리는 인간들은 비단 이런 세력화된 강단학자무리들 뿐이 아니다. 고대사를 왜곡하여 극우적인 정치를 정당화하려는 세력들은 이런 축소세력에 못지 않은 불한당들인데, 이들 덕분에 정당하게 연구되어야할 한국 고대사가 '솔직'함이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미명하에 교묘하게 친일세력이 만든 축소사학을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뭣도 모르면서 소위 '환빠'와 이덕일 소장 같은 민족사학세력을 싸잡아 비난하는 자들까지 한 숟갈을 얹은 것이 현재의 한국 사학계의 현실이라고 생각된다. 정작 자신은 역사강의 몇 개 들은 것을 갖고 박사를 받은 다른 연구자들을 비난하는 블로거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무지성을 무기로 옥석을 가리지 않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병신년. 박근혜씨의 행보는 점점 더 거침이 없어질 전망이다. 그 애비에 그 딸이이라고 한일협정으로 일제의 모든 범죄와 이에 따른 보상을 퉁쳐버린 자의 딸내미답게 위안부 문제를 한큐에 퉁쳐버리는 닭대가리 같은 정치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2015년을 마무리하고 언론과 관부를 동원한 온갖 수단으로 부정선거를 치루고 총선을 승리로 이끈 후 내각제개헌 같은 것을 통해 장기집권을 노리는 모든 것을 보여줄 병신년이 곧 온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지옥이 시작된다. 그렇게 생각한다. 무서운 일이다. 지리멸렬한 반-보수세력은 이걸 막기는 커녕, 개중에 여기에 편승하여 호의호식하려는 자들이 곧 그 껍질을 벗고 나올 것 같다. 정말이지 지랄맞은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