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를 영문판으로 구해서 읽어볼 마음이 생겼다. 내가 느꼈던 것을 더 강하게, 그리고 보다 더 원작으로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어제 서점에 갔을때 찾아봤는데, 딱 한 권, 기념판 하드커버가 있었는데, 가격이 세서 쿠폰을 기다렸다가 구할 것이다. 물론 약간의 갬블인데, 그리 자주 찾아지는 책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책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스토너'나 '마션'은 감성이 풍부하게 올라올 때 남겼으면 해서 아껴두고 있다. 그러다가 예전에 '아메리칸 스나이퍼'처럼 구상한 모든 것들이 날아가 버리면 안될텐데.
이러다가 정말 2015년이 4일 남은 이번 주중에 다 읽는 것 아닐까? 잠재의식속에만 남아있는 과거의 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 미스 마플이 나오는 이야기는 가끔 다소 지루하게 전개될 때가 있는데, 이번 이야기는 꽤나 박진감 넘치게 빠른 속도로 펼쳐졌다. 아마도 미스 마플 외의 주요등장인물이 젊은 부부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미스 마플은 살짝 거들면서.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위험에 대한 미스 마플의 경고가 단순히 과거를 파헤치지 말라는 수준의 것이 아님은 생각하지 못했다. 어떤 살인사건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를 추적하게 되면, 추적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범인의 주의선상에 들어올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난 그저 그 과거를 추적하는 것이 부부사이나 삶에 문제를 일으키려나 하는 안일한 정도의 연상만 할 수 있었다. 심령학적인 분위기로 시작되지만, 이는 가볍게 쳐내고, 바로 진지하고 논리적인 접근으로 넘어가는 점이 더욱 돋보이는데, 그 덕분에 좋은 추리소설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범인은 언제나 그들 중에 있다는 사실.
참 다양한 이야기를 매우 정기적으로 뽑아내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그 속도와 패턴을 보면 흡사 대본소 만화계의 공장장인 김성모씨가 생각날 정도다. 하지만, 김성모씨처럼 허술한 물건이 아닌 꽤 좋은 소설이 꾸준히 나오는 것이 그 둘의 차이점인데, 그래도 조금은 히가시노 게이고씨도 supporting crew가 있어 주간 아이디어 헌팅과 토론을 통해 얼개를 잡아가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첫 권의 마지막에서 좀더 교육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사라진 시노부 선생을 3년 후에 만나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본격추리소설처럼 끔찍한 살인이나 교묘한 사건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꽁트처럼 사건집을 구성해서 매우 쉽게 술술 읽힌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중에서 묵직한 질문을 던져주는 것들도 있고, 용의자 X의 헌신처럼 여운이 긴 작품도 있는데, 이 책은 그저 가볍고 유쾌한 사건풀이놀이 같다.
이제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에서 여섯 권을 남겨두고 있다. 하루에 한 권 반의 분량으로 읽어야 2015년 12월 31일까지 모두 읽을 수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이걸 끝내야 하는 특별한 이유도 없고, 밥일도 아니기 때문에 그저 즐길 생각이다. 그게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