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놀 수 있는 여유는 없다. 아직 due가 잡혀있는 케이스를 손도 못대고 있기 때문인데, 집중력도 떨어지고, 간혹 발생하는 행정업무 때문에 이리 저리 오전에 휘둘리다 보면 업무집중도가 높은 아침시간은 다 지나가 버린다. 오후가 되면 정식 케이스, 그것도 4-5시간 정도 꼬박 나의 주의를 요구하는 고급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요즘은 힘이 든다. 확실히 서포트가 필요한 시점이다. 2016-17년도를 분기점으로 천천히 사이즈를 키워볼 생각이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개업 첫 해와 두 번째 해에는 주로 수임된 케이스를 바로 진행하여 결과를 보는 과정만 신경을 쓰면 된다. 그 시점이라면 보통은 관리할 케이스가 많이 쌓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덧 4년을 꽉 채워, 내년이면 5년차로 접어드는 나의 경우에는 그간 진행한 케이스 숫자와 성공에 비례하여 관리할 서류도, 자잘한 행정업무도 늘어났기 때문에 이젠 간혹 작은 일들만 처리하면서도 하루가 꼬박 지나가곤 한다. 지금도 오전의 갑작스런 잡무 때문에 스케줄이 밀렸는데, 오후에는 아무래도 연말 탓인지, 손이 움직이지 않고, 머리도 굳어버리는 덕분에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책은 그럭저럭 꾸준히 조금씩 읽던 녀석들을 한 권씩 마무리하고 있다. 어제 받은 은영전 정식발매세트를 보면서 흐뭇해하고 있지만, 읽지 못한 책들이 계속 늘어나는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음식도 무엇도 그렇듯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조금씩 사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한 권의 책을 한번 읽기도 힘든 지금에도 관심이 가는 책들은 자꾸만 구하게 된다. 2016년에는 뭐가 달라질까? 아니면 나도 언젠가는 이동진 DJ처럼 만 권의 책을 보관하기 위해 책장을 주문제작하게 될까?
개을 키우기 때문에 특히 관심가는 기생충들이 몇 있었는데, 잠깐 걱정을 했지만, 설마 어떻게 되겠어 하는 맘으로 잊어가고 있다. 책을 재미있게 쓰는 분이란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징그러운 책은 무척 이해하기 쉬운 설명으로 다양한 기생충의 세계를 보여준다. 다른 녀석들은 그리 무섭지 않았지만, 피부를 돌아다니면서 코끼리발을 만드는 녀석은 정말 공포 그 자체였다. 회충이나 요충은 이런 녀석들에 비하면 귀엽기까지 하고, 민촌충의 경우 크론병 증상을 고치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어 고맙기까지 한 것이다. 당뇨나 여타한 이런 종류의 병에 딱 들어맞는 기생충을 찾으면 좋겠다. 물론 요즘은 stem cell을 이용한 방법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생충도 좋은 대체요법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서민교수의 책은 다른 책들도 조금씩 사들여 읽을 생각이다. 이런 분의 강의를 듣고 공부하는 의대생들이 새삼 부럽다. 강의를 못한는 교수 때문에 로스쿨때 꽤나 고생을 한 경험이 있는데, 자기가 말하는 것에 대한 주제에 해박한 지식을 갖는 것과는 별도로 이것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분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이분이 유명해진 이유는 확실히 따로 있다.
다 읽어간다. 후반부로 갈수록 추리소설보다는 극화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추리에 필요한 여러 정보들을 정확하게 그리고 공평하게 나눠주지 않았다고 판단하게 되는데, 이런 것들까지 뛰어넘는 연상추리가 가능해야 수사가 가능한 것인지? 속이 확연히 들여다 보이는 사건도 유야무야 처리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요즘 한국경찰에게 추리소설이라도 읽혀서 정치와 공안에 썩은 두뇌를 다시 활성화시켜주면 좋을 듯. 언제나 그랬지만, 용의자를 줄여나갈 수 있는 clue는 무심하게 묘사되는 배경사실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겐 보여주지 않았던 몇 가지 때문에 논리적인 추론, 읽는 사람의 감이 아닌, 그런 추리가 가능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내년이면 빼도박도 못하는 나이. 더 이상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아저씨임을 피할 수가 없는 때가 된다. K저씨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