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나 여기나 연말연시에는 어디를 가도 엄청난 인파로 북적거린다.  이곳의 경우에는 특히 크리스마스를 30일 정도 앞둔 시점부터 쇼핑시즌이 열리는데,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받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크리스마스 쇼핑시즌은 늘 대목이다.  서점도 예외가 아니라서 이 기간동안에는 오프라인 서점이 망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희망을 품게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서점을 점령한다.  카페의 긴 줄은 물론이고, 책도 엄청나게 팔리는 것으로 보면서 내가 뿌듯할 정도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많은 곳을 꺼리는 나 같은 사람은 갈 곳이 없다는 것.  


일을 좀더 몰아서 끝내기 위해서 어제와 그제는 꽤 오래 사무실에 있었다.  밤에 쌉쌀한 공기내음을 맡으며 불이 꺼진 사무실 건물을 나서는데 문득 아주 오래 전에 대학교 신입생 시절이 떠올랐다.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던 그 시절 세상은 내 앞에 활짝 열려 있었고, 모르면 용감한 것처럼 불가능은 없어 보였었다.  첫 학기부터 읽을 것이 많았고, 당시 미국에 온지 3년 남짓의 영어실력의 나는 모자란 공부 때문에 늘 도서관에 늦게까지 남아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캠퍼스는 깊은 산 숲속 한 가운데 있어서 밤의 차가운 공기가 나무숲을 통해 걸러져 나오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밤 10시 정도에 그렇게 도서관을 나서면서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10분 정도 나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혼지 웃으면서 행복해 했었다.  걸어가다가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던 너구리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었고, 밤에 떼로 돌아다니던 사슴가족을 만나면서 더욱 혼자만의 조용한 행복속에 머물 수 있었다.  그건 매우 오래 전의 기억이지만, 지금도 가끔 떠올리는 행복한 순간이다.


인터넷은 텔넷을 통해 학교로 접속해서 무료로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이메일 말고는 달리 용도가 없었기 때문에 집에 들어오면 PC는 주로 게임을 하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그땐 무엇을 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깊이 들어갔던 것 같다.  지금은 책읽기를 빼고는 2-3시간 이상 계속 하는 것이 없지만, Warcraft 2를 늦게 구해서 오후 3시에 play를 시작하고서 한숨을 돌리려고 시계를 보니 밤 11시였을 정도로 하나를 잡으면 굉장히 오래 갖고 놀곤 했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서 고전게임을 돌리는데, 화려한 그래픽의 요즘 게임보다 더 재미있게 느끼는 것은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도 그때는 너무 어렵게 구했기 때문에 그랬는지, 지금의 1/5도 안되는 양이었지만, 늘 읽고 또 읽곤 해서 지금도 그때 읽었던 책들의 경우는 세세한 부분까지 꽤 많이 기억하고 있다.  많은 것들이 넘치는 지금의 시대답게, 그리고 어른이 된 유일한 이점이랄까, 원하는 것은 부모님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사들이게 되었지만, 양에 반비례해서 소중함은 좀 줄어든 것은 아닌가 싶다.


주말부터 일을 해서 그런지 이번 주는 꽤 길게 느끼면서도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다.  


미스 마플의 추억 얽힌 모험담.  예전에 다른 작품에서 한시적으로 협업했던 부유한 노인네가 죽으면서 마플에게 엄청난 유산을 조건부로 남겨 놓았다.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사건을 해결하면 이 유산은 온전히 미스 마플에게 돌아오게 된다.  잠깐 고민하지만, 사건의 밑조사를 하고나서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  추리를 하기 보다는 그저 방관자의 입장으로 스토리를 즐긴 나는 아직 진지한 추리소설의 마니아라고 볼 수는 없을 듯. 


주말에 운동하면서 열심히 읽어냈다.  이제 9권이 남았는데, 다른 것을 다 제껴놓고 이 시리즈만 읽으면 모를까 2016년으로 넘어갈 것 같다.  아니면 정말 이것만 정주행할까?  고민이다.  이미 부족한 사무실 공간을 정리하여 크리스티 전집은 보관모드로 돌려놓았고, 다음 시리즈의 캐드파엘을 앞으로 빼놓았다.  이들과 함께 물만두님의 책을 읽고 자극을 받아 박스에 따로 꺼내놓은 동서미스테리 시리즈, 그리고 주문한 다른 추리소설들과 함께 2016년은 추리소설을 위주로 살아볼까 또한 고민중이다.


다시 일할 시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