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관념을 갖고 일년에 몇 권을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평균적인 수명과, 대략의 책읽는 속도를 계산해보면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비해서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짧다. 비단 나만 그런 생각을 하고 살지는 않을 것이니, 이것은 책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사람, 아니 수명이 정해진 모든 존재의 고민일 것이다. 어쨌든, 책을 덜 읽게 되는 시기에는 아무래도 고민이 생기는데, 어떻게하든 다시 책읽는 재미에 불을 붙이고 활활 태우려는 것. 특별한 방법이라기 보다는 쉬운 책을 여러 권 읽거나 만화를 보면서 시진해진 책읽기에 대한 흥미를 깨우는 것은 늘 반복되는 하나의 패턴에 가깝다.
이래저래 오늘까지 그래도 몇 권 재미있는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말복더위가 갑자기 찾아온 어제, 시원하고 넓은데다가 카페까지 있어 비오는 날이나 더운 날에는 대박이 나는 근처 대형서점에 간신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덕분이다. 어딜 가도 더웠는데, 그나마 에어컨 빵빵한 공간하고도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 앉아서 시원한 모카 frap한 잔을 최대한 아껴먹으면서 몇 시간 동안 읽은 책, 그리고 주말에 운동하면서 읽은 책이랑 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확실히 성공했다. 여기에 있는 나란 사람까지도 이 책을 보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책은 역시 내용이 좋아야 하는데, 굳이 이야기 하자면 내용면에서는 아무래도 조금 약한 느낌을 받았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는 3인의 독서편력을 이야기하는데, 뭔가 진부함도 있고, 뭐랄까, 기획서적의 향취가 폴폴 난다고 해야하나? 이건 물론 내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재미와 참신한 기획의도/제목과는 달리 아무튼 '장정일의 공부'나 내가 읽어온 그간의 다른 후기 모음집과 비교할 때에는 다소 모자란 수준이었다. 그저 이들과 나의 세대가 비슷함을 여러 번 느끼면서, 이에 따른 추억에 잠깐 즐겁기도 했고, 내가 모르는 책과 작가도 몇 소개 받을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젠 읽고 싶지 않는, 책 이야기를 가장한 협박이나 자기계발서적이 아니었으니까, 그리 나쁘지 않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이제 제껴두려고 노력한다. 매사 한 문장마다 심오한 내용이 있는지, 배경이나 행간을 잡으려는 시도도 당분간은 하지 않으련다. 그저 소설로, 이야기로 재미있게, 아니면 감동을 주는지, 거기에 대한 내 느낌은, 반응은 무엇인지를 고민해보기로 했다.
가족을 떠나와 죽음을 맞은 한 사내의 회광반조와도 같은 영혼의 귀환. 이를 통해서 나오는 가족 개개인의 삶의 모습을 절절하게 담았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에서는 유독 그리 꺼리지 않는 근친상간의 모티브, 여동생이 낳은 아기는 누구의 자식인가를 궁금해하다가, 나중에 화자의 것은 아니라는 친절한(?) 안내에 잠깐 맥이 풀리기도 했고, 장남으로 태어나서, 장남을 길러지고, 장남으로 결혼해서, 장남으로 살아온 사람이 인생의 반절 정도는 살아진 듯한 시점에서 남은 삶을 어떤 자세로 살게 될런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물로 시작해서 물로 끝나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기 보다는 향촌의 물, 강은 가족의 시작이자 가족을 살아도 죽어도 하나로 묶어놓는, 그들만이 공유하는 무엇인 듯 싶은데, 그 정도에서 사고는 이미 멈췄다.
집이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난 집이란, 어느 위치에서든, 어떤 곳에서든, 흩어진 가족 구성원을 한데 모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집이 될 수도 있고, 형제의 집이 될 수도 있다. 그저 항상 열려 있다면 그 집은 가족이 모일 수 있는 곳이 되고, 재충전할 수 있는 곳이 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만, 간혹 여러 형제가 필요에 의해 한 집에 모여사는 경우를 보는데, 따뜻하고 멋지다는, 그리고 무엇보다 부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의 옆 건너, 큰 집에 그렇게 세 형제가 각각의 가족과 함께 한데 모여사는 폴란드계 이민자의 집이 그야말로 집 아닌가 싶다.
시작은 좀 지루하였다. 같은 작가의 '발자크...'는 워낙 흥미진진하게 읽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풍의 긴박감있고, 추억담이 넘치는 이야기를 기대했기 때문일까. 이번에도 역시 깊은 의미를 찾을 생각은 애초당시 하지 않고, 그저 이야기를 즐기면서 읽었다. 어떻게 보면 다소 낮은 차원의 읽기가 나의 현 수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조금 우울해지기는 하지만, 어쨌든 책읽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점은 무시할 수가 없다.
프로이드의 수제자를 자처하며, 자신이 중국최고의 심리분석가임을 자부하는 뮈오 박사가 겪는 좌충우돌의 모든 이야기들이 결국에는 감방에 있는 자신의 애인(?)을 석방시키기 위해 실권자인 디 판사에게 바칠 처녀를 구하러 다니면서 일어나는 일이라니! 게다가 겨우 아주 어렵게 손에 넣은 처녀 아줌마에게 자신의 동정을 잃고마는, 그러다가 다시 처녀를 구하고, 이런 저런 일 끝에 잃고, 이제는 모든 희망을 버린 뮈오 박사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외치는 절박한 질문이란!
심볼리즘에 대한 성찰을 모두 포기하면서 얻은 것은 좀더 쉽게 다가가지는 책읽기의 재미. 주변에 좀 진지하게 같이 책을 읽고 즐겁게 이야기할 그룹이 있었으면 좋겠다만, 요즘 미국에서는 이런 book club에 가입하는 남자는 모두 게이 취급을 받을 뿐더러 많이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서.
붉은돼지님의 이스탄불 방문을 보고 나서 문득 priceline으로 찾아보니 12월 초의 이스탄불은 약 일주일 정도를 1000불에 비행기표와 호텔값까지 모두 하여 다녀올 수 있다. 말도 안되는 휴가를 이때 저질러 버릴지 고민이다. 전화는 누가 받을 것이며 그때까지 끝내지 못하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는 것이 내 현실일진데...